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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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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건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진실’이다 정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내치겠다고? 보훈처, 새 ‘오월의 노래’를 제정한다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진보진영의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민중 의례’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것은 그 노래의 역사성과 노랫말에 어린 격정과 비장미가 참가자들의 마음을 격동케 해 주기 때문이다. 이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은 5·18 민중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으면서 개인적 자아를 역사적 자아로 상승시키는 심리적 체험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공식 추모곡’의 지위를 잃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보도(경향신문 12월 1일 자)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5·18 기념식장에서 부를 ‘5월의 노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는 가.. 2020. 5. 17.
‘역사’를 거부하는가 - 5·18의 수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뺀 정부 서른세 돌을 맞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수난을 겪고 있다. 반역사, 몰역사적 극우세력의 준동이 일상화된 가운데 수구 종합편성채널조차 비열한 방식으로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에 가담했다. 끝내는 정부에서도 행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빼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 공식 기념곡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그 이유가 거의 만화 수준이다.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 의례 시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이며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2020. 5. 16.
선택, ‘노년의 거취’를 생각한다 노년, ‘요양원’ 과 극단적 선택 일곱 해 전,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실 때다.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거기서 세상을 떠나셨다. 칠팔 명의,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는 중증의 노인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병실이었는데, 그나마 가족들이 찾아와서 환자를 살펴보고 가는 가족은 몇 되지 않았다. 아내는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한숨과 함께 눈물짓곤 했다. “거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소예요. 살아 있기만 하지, 그게 산목숨이야. 송장들이지…….” 그 송장과 다름없는 산목숨 가운데 자신을 낳은 육친이 누워 있고, 그것이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이라는 사실을 아내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장인어른은 거기서 고단한 당신의 삶의 마감하셨고, 우리는 고향 선영에서 한 줌의 재로 당신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노인병원.. 2020. 5. 15.
『청구영언』의 ‘능청능청 부르는 노래’들 한글박물관 전시회 도상(圖上) 관람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여유로워지자 유독 전시회 소식에 눈길이 자주 머문다. 얼마 전 대구박물관의 특별전시회에 다녀온 것도 그래서다. [관련 글 : ‘고대마을 시지(時至)’, 수천 년 잠에서 깨어나다] 그러나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이 인근 지역이 아니라 서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까운 데는 가볍게 다녀올 수 있겠지만 서울까지는 아무래도 ‘천릿길’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근 김천구미역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면 1시간 반 뒤에 서울역에 닿는다. 그러나 이 예사롭지 않은 나들이는 그리 간단치 않다. 오가는 찻삯만 십만 원 가까이 드는 이 나들이를 쉽사리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신에 나는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나 누리집을 드나들며 전시회 ‘맛보기’로 만족한다. 서.. 2020. 5. 14.
이팝나무, ‘가로수’의 진화 구미시의 이팝나무 가로수 ‘가로수’라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건 어린 시절 고향의 신작로 길 양옆에 나란히 서 있던 버드나무다. 그것은 황석영의 단편 ‘삼포 가는 길’에 나오는 ‘차도 양쪽에 대빗자루를 거꾸로 박아 놓은 듯한 앙상한 포플러’였다. 여름이면 이 버드나무는 무성해진 가지에 매미의 합창을 끼고 살았다. 일제 강점기 때 심은 게 분명한 버드나무 가로수는 지금은 흔적도 없다. 길은 더 넓어졌고, 단단하게 포장되었으며 선명한 교통표지판과 가로등 따위가 가로수를 대신하고 있다. 시골길에서 가로수가 사라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가로수, 연봉 6천 원으로 세운 ‘도심의 녹색 댐’ 농작물에 그늘을 지운다, 가로수 때문에 교통사고의 피해가 치명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미운털이.. 2020. 5. 13.
팔공산 자락의 숲길 팔공산 자락의 숲길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블로그의 바지런한 이웃, 의 주인장 초석 님이 팔공산 자락을 한 바퀴 돌고 그 답사기를 쓴 게 얼마 전 일이다. 정작 은해사조차 가보지 못한 나는 그 부속 암자인 거조암의 영산전을 마음에 담아 두었고, 5월 초순에 거기를 다녀왔다. 그러나 석탄일 준비로 거조암은 연등 천지였다. 영산전 앞에 철 구조물을 앉히고 연등을 빽빽하게 달아놓았다. 당연히 사진은커녕 정면에서든 측면에서든 영산전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친김에 은해사와 운부암, 백흥암을 돌아왔는데 팔공산 자락은 넓기도 하지, 빽빽한 숲 사이로 난 길이 매우 아름다웠다. 곧거나 완만하게 휜 늙은 소나무, 길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교목들, 끊임없이 구부러지고 휘어 돌아가는 숲길은 찬연한 신록, 그 푸른빛의 행.. 2020. 5. 12.
대구·경북 대선,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19대 대통령 선거, 대구와 경북 대구·경북의 대선, 촛불도 소용없다?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2, 3위 후보가 바뀐 것 빼고는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대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투표일 밤 8시, 투표가 완료되고 출구조사가 발표될 때는 저도 몰래 잠깐 긴장하기도 했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자정을 넘길 때까지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선이 가시화하였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적지 않게 쏠쏠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첫 기자회견을 여는 것까지 우리는 놓치지 않았다. 문재인은 전국 14개 시도에서 1위를 지켰지만, 대구·경북과 경남은 홍준표에게 밀렸다. 경남은 소수점 차이에 그쳤.. 2020. 5. 11.
참 스승 윤영규, ‘교육 민주화 선언’ 스물세 돌 윤영규 선생과 교육민주화 선언오늘은 5월 10일, ‘교육 민주화 선언’ 스물세 돌을 맞는 날이다. 서울·부산·광주·춘천 등 4개 지역의 교사들이 YMCA 중등교육자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1회 ‘교사의 날’ 집회에서 ‘교육 민주화 선언’을 발표한 1986년 5월 10일로부터 스물세 해가 지났다는 뜻이다. [관련 글 : 5·10 ‘교육 민주화 선언’ 22돌, 역사의 퇴행 앞에서] 교육민주화선언과 윤영규 선생우리 집에 걸린 달력 중에 유일하게 전교조에서 낸 달력에만 이날이 기록되어 있다. 교회에서 발행한 달력엔 ‘어버이 주일’로, 인터넷 서점과 교과서·참고서를 펴내는 굴지의 출판회사에서 낸 탁상달력에도 오늘은 ‘기념’되고 있지 않다. 그게 2009년 현재, 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 관심의 표지.. 2020. 5. 10.
친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에 친 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을 맞으며 내일은 어버이날이다. 공연히 오지랖이 넓어지는 증세가 도진다. 수업을 마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잠깐…, 내일 이야기를 좀 하자. ……무슨 날인지 알지?” “? ……, !” “체육대회요!” “어버이날요!” “준비들은 하고 있겠지?” “…….” “문자나 보내죠, 뭐.” “꽃이나 달아드려야죠.” 아이들은 좀 풀이 죽은 듯 침묵하거나 다소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아이들에게 내일 치르는 체육대회는 가깝고, 어버이날은 멀다. 열여덟 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나이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우치기에는 어린 나이고,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한 자의식을 갖기에는 넘치는 나이다. 뜻밖의 답도 있다. “부끄러워서요…….” 나는 아이가 말한 부끄러움의 의미를 이해한다. 18.. 2020. 5. 10.
대통령의 비문(非文) 이명박 대통령의 비문법적 문장 이 대통령의 맞춤법은 이미 온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한두 개 맞춤법이 어긋나는 것쯤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번 타계한 박경리 선생을 조문하면서 방명록에 남긴 말씀은 단순히 표기에 어긋난 맞춤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이나라 강산을 사랑하시는 문학의 큰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썼다. 이 문장에서 띄어쓰기가 바르지 않다든가, ‘고이’를 ‘고히’로 쓴 것쯤은 애교로 넘길 수도 있겠다. 문제는 고인이 된 사람의 행위를 현재 시제인 ‘사랑하시는’으로 쓴 것을 포함, 이 문장이 문법에 어긋난, 이른바 ‘비문(非文)’이라는 데 있다. 이 문장이 비문이 되는 이유는 주어인 ‘큰 별께서’와 서술어인 ‘잠드소서’가 서로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 쓰.. 2020. 5. 9.
세상의 모든 ‘자식들’, 모든 ‘어버이’ 찾아뵐 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에 낫는가 싶던 기침이 어제부터 다시 슬슬 잦아지기 시작했다. 간밤에 깰 때마다 소리 죽이고 기침하느라 힘이 들었다. 5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다시 병원엘 가야 하나 어쩌나 하고 궁싯거려야 한다는 사실이 좀 짜증스럽다. 지난 어린이날은 방송고의 중간고사 시험날이었다. 더는 어린이가 없는 집에서는 ‘어린이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일 뿐이다. 우리 집뿐 아니라, 주변에 어린이가 있는 친지도 거의 없다. 장성한 아이가 혼인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이상 당분간 어린이날을 챙길 일은 없을 터이다. 어버이날도 다르진 않다. 어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다. 친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처가에도 장모님 한 분만 살아계시니 ‘어버이날’을 챙기는 게 훨씬 ‘수월.. 2020. 5. 9.
‘짐 되기 싫다’ 목숨 끊는 부모의 길 자식에게 짐이 되길 거부하며 목숨을 거두는 어버이들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되어 세상을 뜨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자식이나 부모는 인간의 삶에서 대부분 거치게 되는 사회적 지위니 그게 대수로울 일은 없다. 그러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그런 지위로 사는 일도 예사롭지 않아졌다. “자식들 짐 되기 싫다”고 하며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부부가 음독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암에 걸려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60을 갓 넘긴 아버지와 50대 중반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가 앓고 있는 병도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여기는 이 오래된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어쩐지 스산해지는 기분을 가눌 수 없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헌신해 온 어버이들이 졸지에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경우는.. 2020.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