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공룡 둘리’ 30주년
오늘 아침 컴퓨터를 켜고 구글(www.google.co.kr)에 접속했더니 대문 로고에 낯익은 얼굴들이 떠 있다. 확인해 보니 ‘아기공룡 둘리 탄생 30주년’이다. 아, 이럴 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윤동주와 박완서의 탄생을 기렸던 구글이다. [관련 기사 보기 : 윤동주에서 박완서까지 - 구글 로고의 진화]
구글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문 로고를 통해서 그 나라의 중요한 기념일이나 인물을 꼼꼼히 챙기는, 이른바 열린 ‘마인드’를 보여 왔다. 구글은 설날과 한가위 같은 명절은 물론이고 한글날도 빼놓지 않고 기린다. 비록 그날의 로고를 바꾸는 일시적 형식에 불과하지만, 국가별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구글이 지향하는 개방성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기공룡 둘리’가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10년 연재를 시작한 것은 1983년 4월 22일이다. 빙하에서 깨어난, 초능력을 지닌 ‘아기 공룡’이 한 가정으로 들어와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이 만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만화라고 할 만하다.
<위키백과>에서 기술하고 있는 ‘탄생 배경’도 흥미롭다. 김수정은 1981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오달자의 봄’으로 이름을 알린 뒤 ‘말썽꾸러기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차기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아동관을 반영하고 싶었지만, 그가 그리려고 했던 어린이는 어른에게 반항적이고 버릇없는 모습이었던 탓에, 만화 속의 어린이가 오직 교과서적인 행동만 할 것을 강요하던 당시의 사전심의를 통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김수정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의인화시켜 주인공으로 하면 심의를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특이한 대상을 찾다가 마침내 공룡을 주인공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수정은 둘리를 수천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으로 설정했다. 당연히 외계인이 부여한 초능력을 이용하여 현대로 넘어온 둘리의 나이는 이미 1억 살에 가깝다. 이는 둘리의 행동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회피하기 위함이었다.
‘아기공룡 둘리’가 연재되던 1980년대 초반이라면 내가 병역을 마치고 돌아와 복학해 졸업을 앞두고 있던 때다. 만화잡지에 연재되고 있었던 ‘둘리’의 존재를 당연히 나는 몰랐을 것이다. 아마 둘리를 알게 된 것은 1987년에 텔레비전을 통해 둘리가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방송되고 나서였을 게 틀림없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둘리를 만났던 게 틀림없다. 둘리는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1995년에는 영어 교육용 비디오(<둘리의 배낭여행>), 1996년에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2004년에는 입체 영상(<둘리의 나무 속 환상 여행>) 등으로 개봉된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정작 나는 둘리를 잘 모른다. 그의 존재를 모르면 간첩이긴 하지만 우리 연배에게 둘리의 내용을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둘리는 독일과 아랍권에도 수출되었다니 만화로서는 드문 성공을 거둔 게 틀림없다.
둘리의 캐릭터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애니메이션화와 함께 여러 관련 상품이 팔리기 시작했다. 둘리는 산업 캐릭터로서 장난감, 게임, 학습만화, 옷이나 학용품, 식품에 연이어 등장하였으며, 특히 자동차 광고(기아자동차 카니발 II)에도 등장하면서 사상 최초로 만화 캐릭터가 자동차 광고에 등장한 사례로 기록되었단다.
둘리 캐릭터는 현재의 어린이들에게도 친숙한 데다가, 1980년대에 이 작품을 접했던 어린이들이 현재는 부모가 된 경우가 많은데, 대한민국에서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친숙한 캐릭터로도 유일하다고. 둘리는 뒤이은 만화 캐릭터로서 ‘뽀로로’나 ‘방귀대장 뿡뿡이’ 등의 원조였던 셈이다.
공전의 인기를 누리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도 다양하다. 둘리가 항상 혀를 내밀고 있는 것이 대해 작가 김수정은 귀여움을 강조하기 위해 그려 넣은 것이라고 밝혔다고. 둘리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도 모르겠다며 ‘출생의 비밀’로 설명하기도 했다.
둘리의 명예시민 문제로 서울시 도봉구와 부천시가 대립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둘리는 육식공룡인 케라토사우루스, 둘리의 엄마는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루스인데, 이는 작가 김수정이 몇 년 걸려 연재를 하다 보니 둘리가 육식공룡임을 잊어버림으로써 빚어진 실수라고 한다.
‘아기공룡 둘리’의 나이가 서른 살이 되었다는 것에 주목한 구글의 눈길은 매섭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우리 만화 주인공의 성장을 대문 로고를 통해 알린 이 업체의 관점은 신선하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둘리의 모습을 일별하면서 새로 한 주를 시작한다.
2013. 4. 22.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길 위에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축] 노동절(메이데이) 126돌 (0) | 2020.04.28 |
---|---|
재보궐선거와 아내의 ‘비관주의’ (0) | 2020.04.28 |
TK(대구경북)는 언제쯤 ‘김부겸’들을 받아들일까 (4) | 2020.04.21 |
‘고대 마을 시지(時至)’, 수천 년 잠에서 깨어나다 (0) | 2020.04.16 |
이발소와 종편 채널, 그리고 ‘박근혜’ (2) | 2020.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