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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20 텃밭 농사 시종기(2) 고추 농사 ①

by 낮달2018 202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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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짓는(!) 고추 농사

▲ 아파트 앞 공터 텃밭. 임자의 허락을 받아 농사를 짓는 이들이 아마 열가구가 넘을 것이다. 덕분에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는 텃밭이다.
▲ 4월 1일, 멀칭 작업을 해 놓은 처가 텃밭. 왼쪽의 짧은 이랑 앞쪽은 남은 감자를 심었다.
▲ 4월 18일, 집 앞 텃밭에 멀칭 작업을 했다. 퇴비를 두 포 넘게 뿌려 둔 자리인데, 땅이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새로 얻은 집 앞 텃밭을 두고 우리가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러나 덥석 받아놓고 못 하겠다고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3월 초순께 농협에서 산 퇴비 2포를 시비(施肥)했다. 농사짓던 땅이라 할 만한 이력도 없는 메마른 땅이라 그거로 해갈이 될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4월 1일에 처가의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18일에 집 앞 텃밭에도 비닐을 깔면서 이랑을 만들었다. 내외가 작업하고 있는데 이웃 농사꾼 둘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역시 공터에 땅을 부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농사 경험은 텃밭 가꾼 게 전부라고 했다.

 

멀칭을 마치고 그날, 김천 아포에 있는 육묘장에 가서 포기에 500원씩을 주고 고추 모종 150여 포기를 사 와서 앞 밭에 120포기 정도, 이틀 뒤에는 처가 텃밭에 30포기를 심었다. 처가 밭뙈기의 자투리땅에는 고구마와 곰취와 곤달비 등 나물, 그리고 호박과 박을 심고, 상추와 쑥갓 씨도 뿌렸다.

▲ 5월 21일의 처가 텃밭. 고추가 제대로 자라서 키가 성큼 커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왼쪽의 감자도 잘 자랐다.
▲ 5월 25일의 집 앞 텃밭. 포기마다 지지대를 세워주는 대신 양쪽에 두 개씩 지지대를 세우고 끈으로 고추 양옆을 지지하게 해 주었다.

닷새 뒤에는 고추에 지지대를 세워주었다. 알루미늄으로 된 지지대는 그동안 쓰던 거로는 모자라서 인터넷에서 40여 개를 더 샀다. 5월 중순께가 되자 고추는 키가 크면서 가지도 튼실해졌다. 그런데 역시 때가 때여서 초대하지 않은 손님, 병충해가 꾀기 시작했다.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진딧물과 나방 벌레 같은 것들이 고춧잎 뒤에 다닥다닥 붙으면서 우리는 다시 곤혹스러워졌다.

 

2007년께부터 텃밭 농사를 시작했지만, 한 번도 농약을 쓰지 않았던 우리가 처음으로 농약을 친 게 2016년이었다. 때 이른 ‘진딧물’의 습격 앞에 우리는 고민하다 결국 농약을 샀고 장모님의 분무기로 방제(防除)한 것이다. 그게 얼마쯤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최소한의 방제만 했다고 생각했지만, 유기농 쪽에서 보면 너무 쉽게 농약을 받아들인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관련 글 : 기어코 농약을 치고 말았다]

▲ 중국산 압축 분무기. 5리터짜리라 작지만 이러구러 쓰고 있다.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굳이 독한 농약 방제로 갈 이유는 없다. 유기농에 대한 태도가 어떠하든, 농약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농약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일반 농민들을 비난하는 근거로도 쓰일 수 없다.

 

유기농과 무기농을 가르는 기준은 농약 사용 여부이지만, 그게 일방적인 찬양과 비난의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은 모두에게 농약 없이 농사를 지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농약이 문제라면 그걸 생산하는 걸 막아야 할 일이지, 그걸 써서 생산량을 늘리려 했다고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곤혹스러웠던 것은 우리가 먹으려고 짓는 농사에 농약을 쓰자고 결정하는 게 너무 안이하고 성급한 것일 수 있다는 거였다. 반대로 먹으려고 짓는 농사를 농약을 쓰지 않아서 수확물이 형편없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어차피 우리는 시장에 나온 농산물, 즉 농약으로 병충해를 막은 농작물을 사 먹을 거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얼마간의 농약을 써서 성한 채소를 얻겠다는 게 무어 문제일까.

 

“어차피 사 먹는 농산물은 농약 쳐서 기른 채소들일 거 아니우? 우리가 팔 것도 아니고 우리 먹을 거 농사지으며 농약을 굳이 피해야 할 이유가 어딨우?”

▲ 해마다 잘 되지 않아 애를 태우게 하는 호박. 올해도 처가 텃밭에 심은 호박이 가끔 익어 그간 몇 차례 따 먹었다.
▲ 처가 텃밭 가장자리 담밑으로 호박과 박을 심었다. 하얀 건 박꽃이고, 오른쪽 감나무 아래는 고구마다.
▲ 위 밭에서 첫 수확으로 딴 박. 사랑스럽게 여물었다.
▲ 처가 텃밭에 심은 세 포기 가지는 여름내 우리 집 식탁에 오르는 가지를 책임져 준다.
▲ 6월 19일의 처가 텃밭. 고추가 엄청 달렸다.
▲ 6월 22일의 처가 고추밭. 집 앞 텃밭과 달리 이랑 사이 간격이 좁아서 풀매기도 쉽지 않은데 고추가 풍성하게 달렸다.
▲ 7월 6일, 자주 들여다보지 못해서 피가 무성한 처가 텃밭(위). 한 시간쯤 풀을 맸더니 이내 깨끗해졌다.

이미 2016년과 지난해 두어 차례씩 농약을 쓴 이력도 있겠다.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농약상에서 진딧물 등 여러 종류의 병충해에 쓰는 농약 두 종류를 샀다. 그런데 요즘 농약은 저독성이라 한번 방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웠다. 특히 진딧물은 끈질겨서 우리는 세 번, 네 번인가 방제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그놈을 잡을 수 있었다.

 

엔간히 병충해를 다스렸다고 생각한 순간, 고추가 익을 때 발생하는 탄저(炭疽)가 오는 듯했다. 기겁해서 농약상에 갔더니, 아직 때가 이르다면서, 혹시 고추가 말라 흐물흐물해지지 않더냐면서 칼슘 부족이니까 칼슘제를 다른 약과 섞어 치라고 말해 주었다. 긴가민가 망설이다 결국 칼슘제를 사서 방제했더니 탄저라고 여겼던 현상은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고추밭에 방제한 횟수는 모두 네 번이다. 지난해까지 쓰던 장모님의 분무기는 플라스틱 약통이 깨져 물이 새면서 더는 쓸 수 없어서 고민하다 5ℓ짜리 중국산 압축 분무기를 만몇천 원에 샀다. 약통에 물을 붓고 약을 탄 다음에 밀폐한 다음, 위에 있는 손잡이로 압축하여 분무하는 방식이다.

 

처음엔 괜찮다 싶더니 어느 날부턴가 개폐 스위치가 별로 말을 안 듣거나 노즐이 막혀서 쓰다가 손을 봐야 하곤 하는 데다가 워낙 용량이 작아서 조그만 밭에다 방제하면서 한 차례 약을 새로 타야 하는 수고를 줄일 길이 없다. 아내는 벌써, 돈을 더 줘도 등에 지는, 좀 큰 물건을 장만하자고 성화다. 글쎄, 어쩌나 장마가 끝나면 새로 약을 쳐야 할 텐데, 그때쯤에는 새 분무기를 장만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 7월 11일의 집 앞 텃밭. 가지가 주렁주렁 달리고, 고추도 실하다. 오른쪽 들깨 너머 파가 보인다.
▲ 7월 11일에 찍은 집 앞 고추밭. 고추가 군데군데 익었는데, 굵고 기다란 놈들이 자랑스럽다.

집 앞 텃밭에 아내는 꽤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아침마다 가서 들여다보고, 고추 지지대를 새로 매어준다, 소나기 오는 날은 물꼬를 터주는 등 종종걸음을 치면서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는 날 흘겨보곤 해서 영 불편했다. 속으로 내가, 내년에는 아예 농사를 시작하지도 말까 보다, 하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어쨌든 여러 차례 약을 치고, 적당히 비도 와 주고 해선지, 우리 고추는 유난히 잘 자라서 눈에 띈다. 검푸른 잎사귀가 무성하고 키도 제법 컸으며, 열매도 굵고 기다란 놈을 다닥다닥 달고 있어서 바라보는 눈길에 은근히 힘이 들어갈 정도다.

 

한 일주일 전부터는 집 앞 텃밭의 고추가 익은 놈을 먼저 따서 아내가 광주리에 담아 말리려고 베란다에 내놨다. 그런데 이 고추가 예전에 장모님이 하우스에서 지은 고추와 같은 품종인지 옛날 풍모를 보이니 내외는 마주 보고 미소를 짓곤 한다.

▲ 집 앞 텃밭에서 따서 말리고 있는 첫물 홍고추. 고추가 크고 굵다.

“이거 잘하면 올해, 한 서른 근 따는 거 아닌가.”

“그러면 좀 좋겠우. 서른 근만 따면 우린 따로 고추를 안 사도 되우.”

 

그동안 10여 년 가까이 고추 농사를 지으며 우리가 올린 최고의 수확은 10근이다. 집에서 건조기와 햇볕에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찧었더니 그 빛깔이 방앗간 주인을 놀라게 하였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전문 농사꾼은 포기당 한 근이 나온다고 하니, 150포기를 심었으니, 150근은 고사하고 그 5분의 1인 30근은 따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저께부터 새로 장마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산행을 다녀오면서 확인하니, 군데군데 익은 놈이 한눈에 들어오고 줄기 위쪽까지 열매가 굵어지고 있다. 서른 근을 꿈꾸어도 좋지 않겠나 싶으면서도 해마다 수확 철에 기습한 탄저에 나머지 농사를 내어준 걸 떠올리며, 올해는 밭을 걷을 때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2020. 7.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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