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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08] 고추밭, 그 후

by 낮달2018 2020.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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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께 가본 우리 텃밭. 고랑마다 바랭이가 번지고 있었다.

얼마 만인가, 그저께 아내와 함께 고추밭을 다녀왔다. 그러려니 하긴 했지만 고추밭은 좀 그랬다. 동료가 심은 두 이랑은 반 넘게 시들었는데, 그나마 우리가 가꾼 이랑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밭에 대왕참나무를 심은 동료에게서 얻은 모종이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나중에 우리가 시장에서 사다 심은 고추 모종은 키는 작지만 비교적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먼저 심었던 고추 모종은 웃자라 줄기도 잎도 부실한 상태에서 꽃이 피면서 자기 성장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서도 몇몇 포기는 고추 열매를 맺었다.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상태에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은 마치 어린 나이에 배가 부른 소녀를 보는 것처럼 안쓰러웠다.

 

고추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인데도 고랑마다 이어지고 있는 바랭이의 기습은 섬뜩하다. 밭이나 빈터에서 흔히 자라는 한해살이풀, 바랭이를 보는 순간, 몇 해 전 첫 농사 때 그것과 끈질기게 승부를 다투었던 걸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랭이와의 지루한 전쟁, 나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다고 제초제를 뿌릴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게다.

 

세 번째 이랑의 고추 모종에는 진딧물이 새까맣게 붙어 있다. 저놈들은 어디서부터 오고 어디로 가는가. 아내는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방법은 없어 보인다. 민간처방인 담배 푼 물로는 그걸 방제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진딧물 약을 쳐야 하나, 어쩌나 …….

 

돌아와서 농약방에 전화를 걸었더니 한 말에 3천 원이라 한다. 그보다 적은 양은 없다고 한다. 무슨 유기농을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 텃밭 농사에 농약이라니……. 기분이 씁쓸하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망설이고만 있다.

 

▲  바랭이의 기습
▲ 줄기나 잎의 부실에도 불구하고 고추가 달렸다.
▲ 밭고랑에 큼직한 명아주 한 송이가 자리를 잡았다.
▲ 고춧대에 새카맣게 붙은 것은 진딧물이다. 이놈들을 어째야 하나.

 

2008. 6.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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