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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7

[오늘] 이승만 정권, 사사오입 개헌으로 중임제한 폐지 [역사 공부 ‘오늘’]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 이승만, 사사오입 개헌으로 헌법을 짓밟다 1954년 11월 29일,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사사오입(四捨五入, 반올림)이라며 당시 정족수 미달로 부결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헌안의 골자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없앤다”라는 것이었고 그것은 이승만의 종신 집권을 노린 것이었다. 1954년 5월 총선거에서 원내 다수를 차지한 자유당은 9월 8일, 초대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당시 자유당 소속 의원은 137명이었으나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어 가결을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27일 국회 표결 결과, 이 개헌안은 아슬아슬하게 부결되었다. 당시 개헌안의 가결정족.. 2023. 11. 29.
[오늘] 파시스트 작가 미시마 유키오 할복하다 [역사 공부 ] 1970년 11월 25일, 작가 미시마 유키오 할복 자살 1970년 11월 25일, 자위대 이치가야 주둔소(지금의 일본 방위성 본성)에서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가 할복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질극 끝에 총감의 방 앞 발코니에서 기자들을 향해 미일안보조약과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자위대 쿠데타를 촉구하는 이른바 ‘이치가야 연설’ 5분 뒤였다. 그의 요구에 따라 자위대원 1천여 명이 집결한 가운데 미시마는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전후 헌법의 개정을 촉구하고 ‘자위대가 무사도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라는 등 격정적인 연설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위대원들 가운데 그의 연설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고 돌아온 것은 야유뿐이었다. 미시마 유키오, 명예롭게 죽지 못했다 .. 2023. 11. 25.
[오늘] 작가 이균영, 불의의 사고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96년 11월 21일, 작가 이균영 교통사고로 스러지다 1996년 오늘, 소설가 이균영(李均永, 1951~1996)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84년 ‘이상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작가이면서 단독 연구서 (역사비평사, 1993)로 단재학술상을 받기도 한 역사가는 그렇게 마흔다섯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이균영은 전남 광양 출신으로 1977년 신춘문예(단편소설 ‘바람과 도시’)로 등단하였지만, 한양대 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역사학도였다. 그는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에서도 활동하였다. 작가 이균영, 마흔다섯에 가다 1984년 중편소설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제8회 이상문학상 본상을 받았을 때 그는 서른셋의 청년이었다.. 2023. 11. 21.
[오늘] 1998년 오늘-금강산 유람선 ‘현대 금강호’ 첫 출항 [역사 공부 ‘오늘’] 1998. 11. 18. 동해항에서 ‘현대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 1998년 11월 18일 오후 5시 44분, 동해항에서 실향민과 관광객, 승무원 등 1400여 명을 실은 2만8천 톤의 대형 유람선 ‘현대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했다. 분단 반세기, 금단의 땅을 향하여 돛을 올린 금강호는 2시 50분에 북방한계선을 넘었고, 19일 오전 6시 금강산의 관문인 장전항에 닿았다.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게 된 관광객들은 사흘 동안 구룡폭포와 만물상, 해금강 등을 돌아보고22일 오전 6시25분 동해항으로 귀환했다. 이후 금강산 유람선 관광은 2003년 9월 육로관광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졌다. 분단에 이어 전쟁까지 치른 남북한이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매개.. 2023. 11. 18.
[오늘] 우당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2년 11월 17일 –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 1932년 11월 17일, 예순여섯의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이 중국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 36호 감방에서 눈을 감았다. 11월 5일, 상하이에서 영국 선적의 남창호(南昌號)로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된 지 12일 만이었다. 다롄경찰서에서 열흘 넘게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그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고 본적지 조회조차 거부했다. 그의 유해를 모시러 간 딸 규숙에 따르면 그의 안면을 확인하니 ‘선혈이 낭자하였고 타파오(大袍, 중국 의복)에도 선혈이 많이 묻어 있었다’. 우당이 상하이를 떠나 다롄으로 향한 것은 만주의 연락 근거지 확보와 지하공작 망 조직, 주만(駐滿) 일본군 .. 2023. 11. 17.
[오늘] 일본의 강압으로 불평등 을사늑약(한일협상조약) 체결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1월 17일,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가 골자인 조약 1905년 오늘,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를 주요 골자로 하는 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첫 단계였던 이 조약의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었다. 을사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 ‘을사5조약’으로 불리는데 우리 세대는 6, 70년대 국사 교과서에서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우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일한협약’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조약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 부른다. 강압에 의한 불평등조약 체결 일본이 .. 2023. 11. 16.
청년 노동자 전태일, 스스로 자신을 불살라 ‘인간 선언’을 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11월 13일 - 전태일 열사, 근로기준법 준수 요구 분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은 금요일이었다. 오후 1시 40분께,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한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화염에 휩싸여 몇 마디의 구호를 절규하듯 외쳤고, 이내 자리에 쓰러졌다. 청년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받았으나 14일 오전 1시 30분에 숨졌다.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1948~1970). 대구에서 태어나 상경, 1965년 ‘시다’(견습공)로 평화시장 ‘삼일사’에 입사해, 1966년 ‘통일사’에 미싱사(재봉공)로 들어갔고 1967년에는 재단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2023. 11. 13.
[오늘] 1948년 오늘-도쿄재판, 일본전범 7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다 극동국제 군사재판, 일본 전범들에게 사형 선고 1948년 오늘,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재판장 윌리엄 웹 경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11월 4일부터 시작된 판결에서 재판부는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등 16명에게는 종신형,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등 2명에게는 각각 20년, 7년의 유기금고형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자에 대한 심판은 마무리되었다. 60여 명 이상의 전쟁 범죄 용의자로 지명된 자 중 28명이 기소되어, 판결 전 병사자 2명과 소추 면제자 1명을 제외한 25명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동경재판, A급 전범 25명 실형 선고 극동국제군사재판을 설치한 법적 근거는 직접적으로는 일본이 1945년 .. 2023. 11. 11.
[오늘] 일제, 동화정책의 최종판 ‘창씨개명’을 명령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9년 11월 10일, 일제 ‘조선민사령’ 개정 창씨개명 강제 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중 개정의 건’(제령 제19호)과 ‘조선인의 씨명에 관한 건’(제령 제20호)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씨(氏)’를 정해서[창씨(創氏)]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다. 일본식 성씨를 만드는 ‘창씨(創氏)’가 핵심이었던 이 제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조선식 성명제(姓名制)를 폐지하고, 이 영(令)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호주가 새로운 일본식 성씨(姓氏)를 정하여 신고할 것. 2. 조선에서도 서양자(壻養子,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를 인정하며, 서양자는 처가.. 2023. 11. 10.
[오늘]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義烈團)’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11월 9일-김원봉, 항일비밀결사 ‘의열단’ 조직 1919년 11월 9일 밤, 만주 길림성 파호문 밖 한 중국인의 집에 모인 독립지사들은 밤새워 논의한 끝에 이튿날인 급진적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했다. 결사의 성격은 조직 후 만든 공약 10조의 첫 조항인 ‘정의(正義)의 사(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에서 유래한 단체명[의열(義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의열단의 단원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으로 고문에 김대지와 황상규, 단원은 김원봉·윤세주(1900~1942)·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락·권준 등 13명이었다. 단장에는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이 선출되었다. 의열.. 2023. 11. 9.
[오늘] 수잔 앤서니, ‘역사적 투표’에 성공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72년 11월 5일, 수잔 앤서니 자매들, 대통령선거 투표를 하다 1872년 오늘은 미합중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수잔 B. 앤서니(Susan Brownell Anthony, 1820~1906)는 세 명의 여동생과 함께 투표소로 가서 역사적인 투표를 했다. 때는 여성참정권이 없던 시대, 어렵사리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이날 투표에 성공(!)한 뒤 동지이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 1815~1902)에게 승전보를 보냈다. “이 문제 때문에 올해 겨우내 골치가 아프게 되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지.” 수잔의 투표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것은 여성참정권[관련 기사 : 사우디 여성들의 첫 투표, 그리고 여성참정권]을 .. 2023. 11. 4.
[오늘] 광주에서 학생들의 항일 투쟁 불타오르다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되다 1929년 오늘,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 간의 충돌로 촉발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주 시내에서 빚어진 2차 충돌은 11월 12일 광주 지역 학생 대 시위를 거쳐, 이듬해 3월까지 호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항일 운동으로 발전했다. 닷새 전인 10월 30일, 광주발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한 뒤 벌어진 한일 중학생들 간의 난투극이 몇 개월 동안 이어진 광범위한 항일 독립운동으로 전개되리라고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이 운동이 한일 학생들 간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국권을 빼앗긴 지 20여 년, 식민.. 2023.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