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202 [오늘] 90년 전 오늘, 식민지 시기 최대규모 ‘원산총파업’ 돌입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월 13일, 원산노동연합회 총파업 선언1929년 1월 13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산하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이 참여한, 일제 식민지기 최대 규모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장 노동자의 파업에서 비롯된 이 대규모 연대 파업은 8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지역의 모든 부문 노동자와 총자본이 맞붙은 유례없는 이 파업 투쟁은 일제의 노동정책은 물론 이후 노동운동의 활동 방식과 노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인 감독의 노동자 구타로 촉발 원산총파업은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製油)공장 노동자의 파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함경남도 덕원군 문평리 소재,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 라이징 선(Rising Sun) 석유회.. 2019. 1. 12. [오늘] 김산 자서전 <아리랑>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1997년 1월 11일, 작가 헬렌 포스터 스노 떠나다 1997년 1월 11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헬렌 포스터 스노(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미국 코네티컷주 길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그는 남편 에드거 스노와 함께 1930년대 격동기의 중국 혁명가들을 취재하여 〈붉은 중국의 내부(Inside Red China)〉 등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여인은 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 대신 ‘님 웨일스(Nym Wales)’라는 필명으로 더 친숙하다. 왜냐하면, 그는 1930년대에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인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의 고통스러운 삶을 기록한 자서전 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타주에서 변호.. 2019. 1. 9. [오늘] 97년 전 오늘, ‘낭만주의의 화원’인 <백조> 창간 [역사 공부 ‘오늘’] 1922년 1월 9일, 문예 동인지 '백조(白潮)' 창간호 발행 1922년 1월 9일, 홍사용(1900~1947), 박종화(1901~1981), 나도향(1902~1927), 박영희(1901~?) 등의 동인들이 참여한 순수 문예 동인지 백조(白潮)>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편집인은 홍사용, 발행인은 일제 검열을 피해 미국인 선교사인 배재학당 교장 아펜젤러(H. D. Appenzeller, 1889~1953)가 맡았다. 백조>는 휘문의숙 출신의 박종화·홍사용과 배재학당 출신의 나도향·박영희 등 문학청년들의 교제에서 비롯되었다. 3·1운동의 실패로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은 젊은이들이 모여 문예와 사상을 펼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자 하였다. 마침 김덕기·홍사중(홍사용의 육촌 형)과 같.. 2019. 1. 9. [오늘] ‘관제 뉴스 공급’ 시대, 퇴장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2월 31일, 종영1994년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 정부가 1963년부터 제작하여 영화관에 보급, 상영했던 대한뉴스>가 종영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대중매체에 소외되어 있었던 국민에게 뒤늦게나마 뉴스를 공급함으로써 소임을 다했던 이 ‘관제’ 뉴스는 2040호를 끝으로 종영했다. 종영, 관제 뉴스의 종말 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집집이 텔레비전 등의 매체가 보급되고 인터넷 시대가 가까워졌는데 이미 보고들은 뉴스를 강제로 다시 보게 한다는 지적이 뒤따르면서였다. 1994년 8월 와 문화영화를 폐지하는 영화진흥법안이 최종 확정된 데 이어 이날, 는 마침내 종영된 것이었다. 는 TV 보급이 보편화 되기 전, 국민에게 나라 소.. 2019. 1. 1. [오늘] 장태수, ‘원수의 돈’ 일제 은사금 거부하고 목숨을 거두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12월 28일, 장태수 24일 단식으로 순국하다1910년 12월 28일(음력 11월 27일) 수요일, 전북 김제 금구의 남강정사(南崗精舍)에서 일유재(一逌齋) 장태수(張泰秀, 1841∼1910) 선생이 예순아홉 살을 일기로 순국하였다. ‘불충과 불효한 죄를 죽음으로 씻는다’고 하며 단식에 든 지 24일 만이었다. 장태수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내부협판 장한두의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 1861년 약관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이래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이르렀다. 일유재, 24일 단식 끝에 순국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장태수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2018. 12. 29. [오늘] “우리는 우리 장단에 춤추자” 남북 모두가 존경한 독립운동가 별세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12월 10일, 납북된 우사 김규식 만포진에서 별세 1950년 12월 10일,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오래 앓아온 심장병과 천식 등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69세. 그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 자주 국가를 지향했고 중도 노선을 추구한 정치가였다. 남북협상의 실패로 꿈을 접어야 했지만, 그는 남북 모두에서 존경받은 민족지도자였다. 1950년 12월 10일, 우사(尤史) 김규식(金奎植, 1881~1950)이 평안북도 만포진 근처에서 오래 앓아온 심장병과 천식 등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파란 많은 생애를 마감했다. 향년 69세. 그는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주도하며 통일 자주 국가를 지향.. 2018. 12. 10. [오늘] 77년 전 오늘 일본의 결정은 결국 오판이었다 [역사 공부 ‘오늘’]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진주만 공격일요일 아침의 기습 공격1941년 12월 7일(도쿄시각으로는 12월 8일)은 일요일이었다. 날씨는 맑았고, 하와이 오아후섬의 진주만(Pearl Harbor)에 있던 미국 해군기지는 평화로운 휴일 아침을 맞고 있었다. 7시 30분에 일본 함대를 이륙한 일본군 비행기 360대는 아무 제지 없이 섬에 접근했고 7시 49분에 비행 총대장은 전군 돌격을 명령했다. 태평양전쟁의 시작이었다.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배는 일본 폭격기의 완벽한 목표가 되었고 휴일 아침이어서 미군의 대비는 거의 없었다. 최대의 기습 효과를 노린 일본의 선택이 성공한 것이었다. 비행기도 비행장에 정렬해 단지 몇 대만이 비행 중이었다. 미국 전함은 일본기에 치명타를 입었다. 애.. 2018. 12. 7. [오늘] 이토 히로부미에게 끌려간 ‘마지막 황태자’의 삶 [역사 공부 ‘오늘’] 1963년 11월 22일, 영친왕 이은의 56년 만의 환국 망국의 황태자에겐 자기 삶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1907년 형인 순종이 즉위한 뒤에 황태자가 되었고, 1926년 순종이 죽은 뒤에는 이왕의 지위를 계승했던 영친왕(英親王) 이은(李垠, 1897~1970) 이야기다. 1907년, 통감(統監)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후견인으로 삼아 일본으로 건너갔던 이은은 일본인으로 살았다. 일본의 육군유년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 장교로 임관한 그는 1940년 육군 중장이 되었다. 그는 1943년 일본의 제1항공군(第1航空軍) 사령관으로 복무하다가 일본 패전 뒤에 예편되었다. 1947년 일본의 헌법이 시행되면서 이은은 일본 왕족의 지위와 국적.. 2018. 11. 23. [오늘] 10년을 가지 못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1월 20일 장지연, 에 논설 ‘시일야방송대곡’ 게재 1905년 11월 20일, 사설란에 한 언론인이 쓴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실렸다. '이 날,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뜻의 이 논설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11월 17일 대신들을 압박해 강제로 체결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조약 체결에 찬성하거나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대신들을 '개돼지'로 비유하며 격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지난번 이등(伊藤) 후작(이토 히로부미-인용자)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 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 2018. 11. 20. [오늘] 복서 김득구, ‘헝그리 스포츠’의 마지막 세대가 될 뻔했다 [역사 공부 ‘오늘’] 1982년 11월 18일, WBA 타이틀전에서 KO패 뒤 사망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미국의 레이 맨시니에게 도전하여 14회에 KO패하고 나서 의식을 잃었던 김득구(1955~1982)가 나흘 뒤에 사망했다. 챔피언이 되어 가난을 벗어나 펴려던 그의 꿈도 같이 스러졌다. 향년 27세. 강원도 고성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득구는 2살 때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가 개가하면서 의부의 성을 따라 김득구가 되었다. 가난하게 자라다 1972년 이복형제들과의 갈등으로 가출하여 상경하였을 때 그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는 신문 배달,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천호상고에 진학.. 2018. 11. 18. 이전 1 ···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