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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5

[역사 공부 ‘오늘’] 24년 전 오늘, 첫 ‘수요시위’ 열리다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 열리다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지금껏 무심히 잊고만 있다가 어이쿠, 이게 그럴 일이 아니로군, 그래서는 안 되지, 하고 안타까움과 노여움으로 우리가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게 된 것은. 물론 그걸 아무도 나무랄 수 없다. 저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가 ‘헬조선’을 사느라고 힘겨웠으니 왜 지금껏 무심했냐고 타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8일 첫 시위에서 2016년 1212차 시위까지 지난 12월 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일본군 ‘위안부’합의 이후 전개되어 온 국민적 분노와 규탄 분위기 얘기다. 그러나 이번 정부간 합의를 계기로 사람들은 이 해묵은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가 정당한 요구인 만큼 그것을 짓밟은 이 합의의 부당성을.. 2024. 1. 8.
[오늘] 태평양전쟁 ‘전범’ 일왕 히로히토(裕仁) 사망 [역사 공부 ‘오늘’] 1989년 1월 7일, 1급 전범 일본인의 ‘덴노헤이카(天皇陛下)’ 사망 1989년 1월 7일 오전 6시 33분, 태평양전쟁의 1급 전범, 1억2천만 일본인의 ‘덴노헤이카(天皇陛下)’ 쇼와 ‘천황’ 히로히토(裕仁, 1901~1989)가 숙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8세. 히로히토는 근대 세계사를 전쟁의 시대로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일본 국민으로부터는 ‘살아있는 신’[현인신(現人神)]으로 추앙받았던 세계 최장수 국가원수였다. 히로히토는 1901년 다이쇼(大正) ‘천황’ 요시히토(嘉仁)의 아들로 태어나, 25살(1926) 때 124번째 ‘천황’의 자리에 올라 64년의 쇼와(昭和) 시대를 열었다. 1921년에 부황(父皇)을 대신해 정사를 돌보았으며, 즉위한 뒤 죽을 때까지 재위했다. 히로히.. 2024. 1. 7.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일본 궁성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니주바시(二重橋) 의거 1924년 1월 5일 오후 7시, 김지섭(金祉燮, 1884~1928)은 일본 궁성(宮城)의 다리인 니주바시(二重橋) 부근에서 궁성의 문인 사쿠라다몬(櫻田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폭탄의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자신의 동선을 계산해 보았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1924년 초 도쿄에서 제국의회가 열려 일본 수상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조선 총독이 참가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1923년 12월이었다. 의열단은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구들을 처단하고 일제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했다. 김지섭, 폭탄을 품고 석탄선을 타다 결사 대원으로 선발된 김지섭은 12월 20일, 상하이 푸둥에 정박 중인 미쓰이(三井) 화물 소속의 .. 2024. 1. 5.
[오늘] 36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 제도 폐지 [역사 공부 ‘오늘’] 1982년 1월 5일 야간 통행금지 해제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전년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통금해제안’에 따라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되었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미군정청이 공포한 ‘미군정 포고 1호’에 따라 1945년 9월 8일부터 시행되었던 이 제도는 36년 4개월 만에 그 명운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6년 동안 존속되었던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81년 바덴바덴에서 결정된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야간 통행금지 제도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치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2024. 1. 5.
[오늘] 압록강 진격 국군과 유엔군, 1·4후퇴로 서울을 다시 내어주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공세로 1·4후퇴 시작되다 1951년 1월 4일, 전년도 12월께부터 시작된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세로 전선에서 밀리던 국군과 유엔군은 마침내 서울을 내주고 남쪽으로 퇴각했다.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옮겨갔고 1월 14일, 유엔군은 북위 37도 선의 중서부 전선에서 30만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른바 ‘1·4후퇴’가 시작된 것이었다. 일방적인 패퇴 끝에 전세를 뒤집고 압록강까지 진격할 때만 해도 승리는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중공군(관례대로 표기함)의 등장과 함께 승리는 신기루처럼 스러졌고 전황은 불과 서너 달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1·4후퇴, 중공군의 참전으로 뒤집힌 전세 그것은 이 전쟁의 승패가 단순한 전력의 차이나 명분 따위에 .. 2024. 1. 3.
[오늘] 미 육군, 운디드니에서 북미 원주민 300여 명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90년 12월 29일-미 육군, 운디드니에서 북미 인디언 300여 명 학살 1890년 12월 29일, 미 육군 제7기병연대 병사 500여 명은 운디드니(Wounded Knee: 상처 입은 무릎) 내와 그 주변 언덕에서 북아메리카 수족(Sioux) 원주민 300여 명을 학살했다. 기관총까지 동원한 이 학살로 인디언 전사, 노인,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포함된 350명의 수족 가운데 300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북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멸망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끔찍한 비극이었다. 미합중국의 ‘서부 개척사’는 백인들에겐 ‘프런티어(Forontior)’ 정신의 발현으로 이룬 위대한 성취였지만, 인디언에게는 ‘땅과 목숨을 빼앗아가는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정신’( 옮긴 이 후기)이었.. 2023. 12. 29.
[오늘] 의열단원 최수봉,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20년 12월 27일, 최수봉 의사, 밀양경찰서 폭탄투척 의거 1920년 12월 27일 오전 9시 30분께 밀양경찰서장 와타나베 스에지로(渡邊末次郞)는 직원 19명을 서내 사무실에 모아놓고 훈시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 남쪽 유리창이 깨어지면서 폭탄 하나가 날아와 조선인 순사부장 쿠스노키 게이고(楠慶吾)의 오른쪽 팔에 맞아 굴러떨어졌다. 폭탄은 터지지 않았지만,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또 한 발의 폭탄이 경찰서 현관에서 터지면서 현관문과 마루, 벽 일부와 서류함이 파손되었다. 일경들은 폭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청년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밀양경찰서를 폭탄 공격한 청년 최수봉 청년은 추격하는 일경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인근의 민가로 들어가 품속의 단도로 복부를 그었다. 칼은.. 2023. 12. 27.
[오늘] 하바롭스크 재판 시작, 그러나 미국은 731부대 전범을 면책했다 [역사 공부 ‘오늘’] 1949년 12월 25일, 하바롭스크 재판 731부대 전범 단죄 1949년 오늘,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하바롭스크(Khabarovsk)의 장교회관에서 일본군 전범에 대한 군사재판이 시작되었다. 30일까지 엿새 동안 열린 재판을 통해 소련군에게 포로가 된 관동군 지도부와 생체실험 및 세균전 관계자들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졌다. 일본군 12명, 2~25년 강제노동형 선고 재판 결과 관동군의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山田乙三)를 비롯하여 세균 무기 제조와 생체실험을 한 가지츠카 류지(梶塚隆二) 군의(軍醫) 부장, 다카하시 다카아쓰(高橋隆篤) 수의(獸醫) 부장이 25년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가와시마 기요시(川島清) 세균제조부장 등 8명의 731부대 장교와 위생병 등은 2년에서 20년까지의 .. 2023. 12. 25.
[오늘] 국군, 문경에서 양민 86명 학살 [역사 공부 ‘오늘’] 1949년 12월 24일, 국군 문경 석달마을에서 양민 86명 학살 1949년 오늘(12월 24일), 정오께 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 마을에서 국군 병사들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이 발생했다. 군인들은 카빈총과 수류탄, 바주카포 등으로 마을 주민 136명 가운데 어린이 9명과 여성 44명을 포함해 모두 86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날, 경북과 태백산 지역 일대에서 공비 토벌 작전을 벌이던 국군 제2사단 25연대 2대대 7중대 2소대 및 3소대원 70여 명은 석달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들을 모은 뒤 주민들이 공비들에게 부역했는지를 추궁했다. 주민들이 이를 부인하자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부 공비에 의한 학살로 조작 희생된 사.. 2023. 12. 24.
[오늘] 국민시인 김소월 서른둘에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34년 12월 24일, 시인 김소월 스스로 목숨을 끊다 1934년 12월 24일 아침 8시, 평안북도 곽산(郭山)의 집에서 소월(素月) 김정식(金廷湜, 1902~1934)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전날, 곽산 장(場)에서 사 온 아편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그의 돌연한 죽음을 짤막하게 전한 매체는 였다. “한가히 향촌 생활을 하는 소월 김정식이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평지동 자택에서 24일 오전 8시에 돌연 별세하였는데 그가 최근까지 무슨 저술에 착수 중이었다 한다.” 당시 신문 기사는 그가 임종한 곳이 평북 구성이라고 알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관련 정보는 그 장소가 평북 곽산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곽산 장에서 사 온 아편’을 먹었다는 정보까지 .. 2023. 12. 24.
[오늘] 돌격소총 AK-47을 만든 마하일 칼라시니코프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2013년 12월 23일, 칼라시니코프 94세 일기로 사망 지난 반세기 동안 AK47 돌격소총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진 살상 도구로 자리를 잡았다. 내구성, 저렴한 가격, 조작 편리성, 살상력 등에서 다른 어떤 총도 범접하지 못한다. AK47은 군대와 테러 집단 모두에서 사용하는 주력 무기이지 혁명적 소요의 보편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맥스 부트(Max Boot), 저자, ‘추천사’ 중에서 어젯밤(12. 22) 뉴스룸의 ‘내일’[바로 가기 ☞]에서는 에이케이(AK)소총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를 불러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 기계공은 2년 전인 2013년 12월 23일에 사망했다. 연 25만 명 살상하는 치명적 무기 AK-47 소련이 만든 치명.. 2023. 12. 23.
드레퓌스와 강기훈, 혹은 진실의 전진 19세기 프랑스의 ‘드레퓌스’, 그리고 20세기 한국의 ‘강기훈’ “진실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늪지대를 지나가야 하는 것일까.” 와 의 프랑스 작가 에밀 프랑수아 졸라(Émile François Zola, 1840~1902)가 생전에 내뱉은 한탄이다. 그는 드레퓌스(Dreyfus) 사건 때 드레퓌스를 옹호하여 죽는 날까지 프랑스 군부와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고 야유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후반의 여러 해 동안 프랑스를 휩쓸었던 반유대주의와 이로 말미암아 희생된 드레퓌스의 무죄 여부를 놓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군부 등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이 격돌했던 사건이다.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 발표 나는 1984년 초임 시절에 한길사에서 발행한 N.할라.. 2023.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