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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200

[순국] ‘경술국적 이완용 처단 미수’ 이재명 의사 순국하다 1910년 9월 13일, 이완용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한 이재명(李在明, 1887~1910) 의사가 경성감옥(뒷날의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순국했다. 1년 전(1909) 12월, 그는 이완용을 찔렀지만 실패해 체포되었고 2010년 5월 일제의 법정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칼끝에서 살아남은 이완용은 8월 22일 데라우치 통감 관저에서 매국 문서(한일합병조약안)에 서명했고 합병은 일주일 후 발효되었다. 이재명은 평안북도 선천 사람이다. 어릴 때 평양으로 이주하여 개신교계 사립학교인 일신학교를 졸업했다. 1904년 미국노동이민회사의 이민 모집에 응하여 하와이로 가 농부로 일하다가 1906년 3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한인의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재명, ‘국적 이완용.. 2023. 9. 13.
[오늘] 대종교 개조(開祖) 나철 순교·순국 [역사 공부 ‘오늘’] 1916년 9월 12일, 대종교 개조 나철 자결 순교·순국 1916년 9월 12일은 대종교(大倧敎) 창시자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이 순교, 순국한 날이다. 이틀 전 시봉자(侍奉者) 6명을 대동하고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한 그는 이날,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월 10일, 사당 앞 언덕에 올라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선조의 묘소를 향해 참배한 뒤 그는 “오늘 3시부터 3일 동안 단식 수도하니 누구라도 문을 열지 말라.”고 문 앞에 써 붙인 뒤 수도에 들어갔다. 12일 새벽, 인기척이 없어 제자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니, 그는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힌 유서를 남기고 조식법(調息法)으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나철이 1909년.. 2023. 9. 12.
[오늘] 선출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 칠레 아옌데 정권 붕괴 [역사 공부 ‘오늘’] 1973년 9월 11일, 칠레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 무너지다 1973년 9월 11일, 선거로 선출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피노체트(Pinochet) 등 칠레 군부와 경찰의 쿠데타로 무너졌다. 1970년의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가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와 단일화로 36.3%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지 3년 만이었다. 이날은 아옌데의 신임투표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었다. 오전 7시 30분께 경찰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으로 진격해오고 있었고 이미 쿠데타군은 칠레 내의 방송국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관저에서 아옌데는 아직 점령당하지 않은 유일한 .. 2023. 9. 11.
[오늘] 부관연락선 이키마루[일기환(壹岐丸)], 한국과 일본을 잇다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9월 11일, 부산과 시모노세키, 이키마루 취항 1905년 오늘, 부산과 시모노세키[하관(下關)] 사이의 240km 바다를 잇는 최초의 연락선 이키마루[일기환(壹岐丸)] 호가 시모노세키에서 취항하였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이 연락선은 부산의 앞 글자(‘부’)와 시모노세키의 뒷 글자(‘관’)을 따서 ‘부관연락선’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종종 순서를 바꾸어 ‘관부연락선’ 또는 ‘관부 항로’라고 불렀다. 침략과 조선인 강제동원의 연결창구 두 달 후에 체결된 을사늑약(11. 17.)으로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게 되지만 이미 대한제국은 빈사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같은 해 1월 1일, 경부선 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이날 정기 뱃길을 엶으로써 일본의 식.. 2023. 9. 11.
[오늘] 포의(布衣)의 선비 황현, 망국의 책임을 대신하여 자정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9월 10일, 매천 황현 순국 1910년 오늘,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월곡마을 대월헌(待月軒)에서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열이틀 전(8월 29일)에 한일합병조약이 발효됨으로써 명운을 다한 조선왕조에 대한 한 선비의 마지막 의리였다. 칠언절구의 우국시(憂國詩) 몇 수와 유서로 매천이 스스로 목숨을 마감하기 전에 성찰한 것은 지식인의 삶이었다. 매천, 죽음 앞에서 지식인의 삶을 성찰하다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만 희어졌구나. 몇 번 목숨을 버리려 하였건만 그러질 못하였네. 하지만 오늘만은 진정 어쩔 수가 없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 요사한 기운 뒤덮여 천제성(天.. 2023. 9. 10.
[오늘] 북한, 남한 이어 단독 정권 수립 [역사 공부 ‘오늘’] 1948년 9월 9일 –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 남한 정부 수립 25일 만에 북한도 정권 수립 1948년 9월 9일,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 반쪽, 평양에서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공)이 수립되었다. 38도선 이남의 남쪽 절반, 서울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단독정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8.15.)된 지 25일 만이었다. 같은 해 4월,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반대하고 김규식·조소앙 등과 함께 남북협상을 통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을 모색하고자 한 김구의 평양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구를 비롯한 남한 대표들이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전 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소집하여 28명의 주석단을 선출해 놓고.. 2023. 9. 9.
[오늘]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 북으로 송환하다 [역사 공부 ‘오늘’] 2000년 9월 2일, 김대중 정부, 비전향 장기수들 북 송환 2000년 9월 2일에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녘으로 송환됐다. 이들은 1993년 송환된 이인모와 마찬가지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거쳐 북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등 인권, 종교, 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의 노력과 함께 석 달 전에 남북 정상이 공표한 ‘6·15 공동선언’의 합의를 충실한 이행한 것이었다. 6·15 공동선언의 합의의 3항에 명시된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합의는 다음과 같았다. 3. 비전향 장기수 송환 ① 남측은 북으로 갈 것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전원을 2000년 9월 초에 송환한다. ② 남측은 북으로 갈 것을 희망하는 비전향 .. 2023. 9. 2.
[오늘] 베트남 인민의 ‘호 아저씨’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69년 9월 2일, 베트남 지도자 호찌민 서거 1969년 오늘(9월 2일), 9시 47분께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 호찌민(胡志明, 1890~1969)은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은 그가 베트남민주공화국 정부 주석으로 선출되고,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1945. 9. 2.)한 지 정확히 24년 만이었다. 향년 79세. 당시 미군과 협상을 시작하면서 베트남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었다. 지난 40여 년간 아시아의 반식민지운동을 이끌었던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공산주의 지도자 호찌민은 매우 간명하고 소박한 유언을 남겼다. “장례식에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것은 장례식에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고.. 2023. 9. 2.
[오늘] 관동대지진 - 유언비어와 위기의 희생양, 조선인 학살 [역사 공부 ‘오늘’] 1923년 9월 1일, 대지진 일본 중심부 강타, 조선인 2만여 명 학살되다 1923년 오늘, 11시 58분(일본 표준시)에 리히터 규모 7.9의 강진이 일본의 중심지 도쿄와 간토(관동關東) 일대를 강타하였다. 환태평양지진대의 일본 열도는 크고 작은 지진이 빈발하였지만, 이 지진은 일본이 메이지유신 후 근대사회로 진입하여 맞이한 최대의 재난이었다. 대지진은 도쿄를 비롯한 관동 일대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지만, 계엄령이 선포된 가운데 현지의 조선인들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보다 더 끔찍한 만행의 표적이 되었다. 지진 발생 다음 날(9.2.)부터 일본의 군경과 민간인들이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규모 7.9의 강진, 사상 최대의 피해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 2023. 8. 31.
[오늘] 경술국치 - 대한제국, 일본에 강제 편입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 공포 1910년 오늘,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되었다. 이 조약은 이미 지난 8월 22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인한 것이었다. 이미 조인된 조약이었지만 일본은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일주일 만인 이날, 순종황제의 조칙 형태로 발표했다. 이 조약이 공포됨에 따라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강제 편입되면서 국가의 지위를 잃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일제는 ‘일한병합(日韓倂合)’이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술년의 국가적 치욕(경술국치)’이라 기록하는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합병 이후, 한반도는 일본제국 영토의 일부가 되어 ‘일본 제국령 조선(Kore.. 2023. 8. 29.
[오늘] 킹 목사, ‘자유와 민주주의의 꿈’을 이야기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3년 8월 28일-마틴 루서 킹,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 1963년 8월 28일 수요일, 햇살은 뜨거웠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일자리와 자유’를 요구하며 링컨 기념관까지 행진해 온 25만 시민의 환호 속에 기념관 난간(발코니)에 서른네 살의 지도자,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유대인이든,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모두 손을 잡고, ‘자유가 왔다’는 흑인영가를 부를 수 있는 날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흑백 평등과 공존 요구한 명연설, “나에.. 2023. 8. 28.
그 새벽의 노래, ‘아침이슬’ 세상에 나오다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8월 28일, 김민기 쓴 노래 ‘아침이슬’ 세상에 나오다 1970년 오늘(8월 28일), 서울대 미대 재학생 김민기(1951~ )가 쓴 ‘아침이슬’이 세상을 첫선을 보였다. 이 노래는 다음 해 과 양희은(1952~ )의 첫 음반 에 수록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이슬’은 같은 음반에 실린 ‘세노야’와 함께 무명의 대학생 양희은을 가수의 반열에 세워준 대표곡이 되었다. 대중들은 가요를 즐기면서 그것을 작곡자가 아니라 가수의 것으로 기억하니 말이다. 뒷날, 양희은이 ‘아침 이슬’이 없었다면 자신이 가수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 작곡가와 가수라는 관계를 떠나 김민기와 양희은의 만남을 그.. 2023.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