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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

[오늘] 작가 이균영, 불의의 사고로 지다

by 낮달2018 202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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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 ‘오늘’] 1996년 11월 21일, 작가 이균영 교통사고로 스러지다

▲ 작가 이균영의 작품집. 그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면서 단재학술상을 받은 역사가였다.

1996년 오늘, 소설가 이균영(李均永, 1951~1996)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84년 ‘이상문학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작가이면서 단독 연구서 <신간회(新幹會) 연구>(역사비평사, 1993)로 단재학술상을 받기도 한 역사가는 그렇게 마흔다섯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이균영은 전남 광양 출신으로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바람과 도시’)로 등단하였지만, 한양대 역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역사학도였다. 그는 동덕여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에서도 활동하였다.

 

작가 이균영, 마흔다섯에 가다

 

1984년 중편소설 ‘어두운 기억의 저편’으로 제8회 이상문학상 본상을 받았을 때 그는 서른셋의 청년이었다. 이듬해 소설집 <바람과 도시>(문학사상사)를, 1987년에는 <멀리 있는 빛>(고려원)을 펴냈다. 1997년에는 유고집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가, 2001년엔 연변 지역과 백두산 기행 체험이 우러난 장편소설 <떠도는 것들의 영원>이 발간되었다.

 

20년 가까운 문단 경력에 두 차례의 공백이 끼어 있는 것은 그의 역사 공부 때문이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일제 강점기의 신간회를 연구하여 단독 연구서를 펴내기까지 그는 오롯이 역사 연구에 매달려 있었다.

 

<신간회 연구>를 펴낸 후 그는 ‘빙곡(氷谷)’이란 제목의 근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을 구상하고 집필에 들어갔다. 1996년, 그는 안식년을 맞아 집필을 계속하면서 휴식도 취할 겸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자정이 넘어 서울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가 탄 택시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반대편 택시와 정면에서 충돌했다.

 

내가 처음 만난 이균영의 소설이 이상문학상 수상작 ‘어두운 기억의 저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는 그의 단편 한 편을 읽고 나서 나는 그의 ‘정서적 지향’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게 되면서 그것을 거듭 확인했다는 것이다. (지금 확인해 보니 예의 작품은 ‘저 언덕’이다.)

 

이상문학상 수상 이듬해에 그의 첫 소설집 <바람과 도시>(문학사상사, 1985)가 나왔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책을 샀다. (지금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이 책은 2007년 판이다.) 때로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느껴지는 그의 소설에 끌리는 것은, 순전히 그러한 문학적 취향 때문이다.

 

작가와 역사가로서의 성취

 

전쟁의 비극적 기억을 가진 인간의 심리적 고통을 다루고 있는 ‘어두운 기억의 저편’도 마찬가지다. 고아 출신의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상을 통해 분단에 접근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이산(離散)의 상처다.

▲ 내 서가에 있는 이균영의 소설들.

전쟁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고아원에서 자랐고, 여동생이라고 믿었던 혜수와도 헤어졌다. 20여 년 동안 망각에 묻혀 있던 그 상처는 필름이 끊긴 지난밤의 술자리 여정을 역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은 그의 무의식을 확인해 준 술집 여자의 연민과 그들의 동질성을 통해서 그 위무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마무리된다. 자신의 나이를 모른다고 절규했던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전쟁고아 출신이었다.

 

비판하면서도 끌리게 되는 그의 감수성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은 중편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이다. 이 작품은 30년 넘게 열차를 운행한 기관사 박석우의 기구한 사랑과 운명을 다룬 이야기이다. [관련 글 : 어차피 삶은 신파]

 

어느 기자의 평가대로 이 작품은 ‘신파에 가깝다.’ 그러나 인생은 기실, 신파극보다 훨씬 더 신파적이지 않은가. 다만 그런 신파 같은 삶은 소설이 다루지 않을 뿐이다. 삶과 인간, 그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복잡다기한 얼개에 합목적성이나 합리성, 논리적 일관성 따위는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 소설은 조곤조곤 뇌어주는 것이다.

▲ 신간회 연구(1993)

소설집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에는 유작 장편 ‘빙곡’도 실려 있다. 단편 ‘자유의 먼 길’은 학연과 파벌에 따라 운영되는 교수사회의 보수성과 그에 따른 소외를 극복해 가는 한 교수의 여정을 다룬 작품인데 거기 담긴 것은 오롯이 그의 실제 체험이다. 그는 그 소외를 극복하고 역작 <신간회 연구>를 썼으니, 작가로서만 아니라 역사가로서의 성취도 이룬 셈이다.

 

작가들의 이른 죽음, 우리 문학의 불운

 

작가 이균영은 일반에 얼마나 알려졌을까. 그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은 창비에서 낸 20세기 한국소설 40권에 박영한, 현길언, 최인석 작가의 작품과 함께 실렸다. 이는 구색이 아니라,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가 인정되었다는 뜻이겠다.

 

젊은 작가들의 이른 죽음은 그 자신과 가족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한국문학의 불운이기도하다. 작가 김소진(1963~1997)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가 숨진 이듬해인 1997년이다. 김소진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집도 세 권이나 내 서가에 꽂혀 있으니 말이다. [관련 글 : 차칸남자고아떤 뺑덕어멈]

 

오늘은 이균영의 20주기다. 서가를 뒤져 그의 소설집 두 권과 198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꺼내놓고 이리저리 뒤적이면서 쓸쓸하지만 한 작가의 삶과 문학을 기리고자 한다.

 

 

2016. 11.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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