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9 [오늘] 1998년 오늘-금강산 유람선 ‘현대 금강호’ 첫 출항 [역사 공부 ‘오늘’] 1998. 11. 18. 동해항에서 ‘현대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1998년 11월 18일 오후 5시 44분, 동해항에서 실향민과 관광객, 승무원 등 1400여 명을 실은 2만8천 톤의 대형 유람선 ‘현대 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으로 출항했다. 분단 반세기, 금단의 땅을 향하여 돛을 올린 금강호는 2시 50분에 북방한계선을 넘었고, 19일 오전 6시 금강산의 관문인 장전항에 닿았다. 분단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게 된 관광객들은 사흘 동안 구룡폭포와 만물상, 해금강 등을 돌아보고22일 오전 6시25분 동해항으로 귀환했다. 이후 금강산 유람선 관광은 2003년 9월 육로관광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졌다. 분단에 이어 전쟁까지 치른 남북한이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 2024. 11. 18. [오늘] 우당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2년 11월 17일 – 이회영 뤼순 감옥에서 순국1932년 11월 17일, 예순여섯의 독립운동가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선생이 중국 다롄(大連)의 뤼순(旅順) 감옥 36호 감방에서 눈을 감았다. 11월 5일, 상하이에서 영국 선적의 남창호(南昌號)로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된 지 12일 만이었다. 다롄경찰서에서 열흘 넘게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그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고 본적지 조회조차 거부했다. 그의 유해를 모시러 간 딸 규숙에 따르면 그의 안면을 확인하니 ‘선혈이 낭자하였고 타파오(大袍, 중국 의복)에도 선혈이 많이 묻어 있었다’. 우당이 상하이를 떠나 다롄으로 향한 것은 만주의 연락 근거지 확보와 지하공작 망 조직, 주만(駐滿) 일본군 사.. 2024. 11. 17. [오늘] 일본의 강압으로 불평등 을사늑약(한일협상조약) 체결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1월 17일,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 가 골자인 조약1905년 오늘,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 설치’를 주요 골자로 하는 제2차 한일협약을 체결하였다.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첫 단계였던 이 조약의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협상조약’이었다. 을사년에 체결되었기 때문에 ‘을사협약’, ‘을사5조약’으로 불리는데 우리 세대는 6, 70년대 국사 교과서에서 ‘을사보호조약’이라 배우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제2차 일한협약’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2000년대 이후, 일본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조약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 부른다. 강압에 의한 불평등조약 체결 일본이 .. 2024. 11. 16. 청년 노동자 전태일, 스스로 자신을 불살라 ‘인간 선언’을 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11월 13일 - 전태일 열사, 근로기준법 준수 요구 분신“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은 금요일이었다. 오후 1시 40분께,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한 청년이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화염에 휩싸여 몇 마디의 구호를 절규하듯 외쳤고, 이내 자리에 쓰러졌다. 청년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받았으나 14일 오전 1시 30분에 숨졌다.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1948~1970). 대구에서 태어나 상경, 1965년 ‘시다’(견습공)로 평화시장 ‘삼일사’에 입사해, 1966년 ‘통일사’에 미싱사(재봉공)로 들어갔고 1967년에는 재단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열.. 2024. 11. 12. [오늘] 1948년 오늘-도쿄재판, 일본전범 7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다 극동국제 군사재판, 일본 전범들에게 사형 선고1948년 오늘,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재판장 윌리엄 웹 경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11월 4일부터 시작된 판결에서 재판부는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 등 16명에게는 종신형,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등 2명에게는 각각 20년, 7년의 유기금고형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자에 대한 심판은 마무리되었다. 60여 명 이상의 전쟁 범죄 용의자로 지명된 자 중 28명이 기소되어, 판결 전 병사자 2명과 소추 면제자 1명을 제외한 25명이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었다. 동경재판, A급 전범 25명 실형 선고 극동국제군사재판을 설치한 법적 근거는 직접적으로는 일본이 1945년 9.. 2024. 11. 11. [오늘] 일제, 동화정책의 최종판 ‘창씨개명’을 명령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9년 11월 10일, 일제 ‘조선민사령’ 개정 창씨개명 강제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중 개정의 건’(제령 제19호)과 ‘조선인의 씨명에 관한 건’(제령 제20호)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씨(氏)’를 정해서[창씨(創氏)]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다. 일본식 성씨를 만드는 ‘창씨(創氏)’가 핵심이었던 이 제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조선식 성명제(姓名制)를 폐지하고, 이 영(令)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호주가 새로운 일본식 성씨(姓氏)를 정하여 신고할 것.2. 조선에서도 서양자(壻養子,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를 인정하며, 서양자는 처가의 .. 2024. 11. 10. [오늘]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義烈團)’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11월 9일-김원봉, 항일비밀결사 ‘의열단’ 조직1919년 11월 9일 밤, 만주 길림성 파호문 밖 한 중국인의 집에 모인 독립지사들은 밤새워 논의한 끝에 이튿날인 급진적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했다. 결사의 성격은 조직 후 만든 공약 10조의 첫 조항인 ‘정의(正義)의 사(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에서 유래한 단체명[의열(義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의열단의 단원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으로 고문에 김대지와 황상규, 단원은 김원봉·윤세주(1900~1942)·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락·권준 등 13명이었다. 단장에는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이 선출되었다. 의열,.. 2024. 11. 8. [오늘] 수잔 앤서니, ‘역사적 투표’에 성공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72년 11월 5일, 수잔 앤서니 자매들, 대통령선거 투표를 하다1872년 오늘은 미합중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수잔 B. 앤서니(Susan Brownell Anthony, 1820~1906)는 세 명의 여동생과 함께 투표소로 가서 역사적인 투표를 했다. 때는 여성참정권이 없던 시대, 어렵사리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이날 투표에 성공(!)한 뒤 동지이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 1815~1902)에게 승전보를 보냈다. “이 문제 때문에 올해 겨우내 골치가 아프게 되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지.” 수잔의 투표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것은 여성참정권을 환기하면서 이를 법정에 가져갈 수 있는 방도이기도 했다. 미국 .. 2024. 11. 5. [오늘] 광주에서 학생들의 항일 투쟁 불타오르다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되다1929년 오늘,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 간의 충돌로 촉발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주 시내에서 빚어진 2차 충돌은 11월 12일 광주 지역 학생 대 시위를 거쳐, 이듬해 3월까지 호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항일 운동으로 발전했다. 닷새 전인 10월 30일, 광주발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한 뒤 벌어진 한일 중학생들 간의 난투극이 몇 개월 동안 이어진 광범위한 항일 독립운동으로 전개되리라고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이 운동이 한일 학생들 간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국권을 빼앗긴 지 20여 년, 식민지.. 2024. 11. 2. [오늘]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역사 공부 ‘오늘’] 1933년 10월 29일, 첫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1933년 오늘(10월 29일)은 당시의 한글날이었다. 이날,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학회)는 한글 반포 487돌을 기념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조선어의 정확한 법리를 연구’할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어연구회가 1930년 12월 13일 총회를 열어 대한제국기의 한글 연구를 기초로 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아래 ‘통일안’)을 제정할 것을 결의한 지 3년 만이었다. 통일안 제정을 결의한 조선어연구회는 적극적인 사전 편찬 작업을 위해 1931년 1월 조선어연구회를 ‘조선어문의 연구와 통일’을 위한 기관인 ‘조선어학회’로 개편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932년 12월에 통일안의 원안을 발표하였다. 원안 작성에는 권덕규.. 2024. 10. 29. [오늘] 1979년 오늘-중앙정보부장은 절대권력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박정희 시해개인의 체험과 역사 사이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는 그 외연이 워낙 크고 넓어서 그것을 겪은 이들의 공동의 기억으로 환기되곤 한다. 어떤 이에게 죽음의 공포로, 또 어떤 이에게는 굶주림의 고통이나 절망 따위로 전쟁이 떠오르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극적으로 전개된 우리 현대사에서 6월항쟁 같은 기억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추체험할 수 없다. 이런 경우 현장에서의 체험은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시대를 살았으나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 비겨 그는 날것의 역사를 겪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 2024. 10. 25. [오늘]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 카자흐스탄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3년 10월 25일- 홍범도 장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떠나다1943년 오늘,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크즐오르다 시 쓰체브나야 거리 제2번지 자택에서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洪範圖, 1868~1943)가 파란 많은 삶을 마감했다. 함경도 주민으로부터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으로 알려진 ‘산 포수’ 출신이었지만 기민한 유격 전술로 일본군을 연파하면서 일본군에게서는 ‘나는 장군[비장군(飛將軍)]’으로 불리었던 항일 무장투쟁사의 전설적 영웅의 임종은, 그러나 쓸쓸했다. 봉오동(1920)과 청산리(1920) 전투의 대승을 이끌었지만, 나라 잃은 독립투사에게는 승리를 즐길 여가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독립군에게 대패한 일제는 간도 일대의 조선인 마을을 초토화하여 1만 명이 넘는 조.. 2024. 10. 25. 이전 1 ··· 3 4 5 6 7 8 9 ···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