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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8

[오늘] 일제, 동화정책의 최종판 ‘창씨개명’을 명령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39년 11월 10일, 일제 ‘조선민사령’ 개정 창씨개명 강제 1939년 11월 10일, 조선총독부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 중 개정의 건’(제령 제19호)과 ‘조선인의 씨명에 관한 건’(제령 제20호)을 공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씨(氏)’를 정해서[창씨(創氏)]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다. 일본식 성씨를 만드는 ‘창씨(創氏)’가 핵심이었던 이 제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조선식 성명제(姓名制)를 폐지하고, 이 영(令) 시행 후 6개월 이내에 호주가 새로운 일본식 성씨(姓氏)를 정하여 신고할 것. 2. 조선에서도 서양자(壻養子,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를 인정하며, 서양자는 처가.. 2023. 11. 10.
[오늘]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義烈團)’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919년 11월 9일-김원봉, 항일비밀결사 ‘의열단’ 조직 1919년 11월 9일 밤, 만주 길림성 파호문 밖 한 중국인의 집에 모인 독립지사들은 밤새워 논의한 끝에 이튿날인 급진적 민족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항일비밀결사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했다. 결사의 성격은 조직 후 만든 공약 10조의 첫 조항인 ‘정의(正義)의 사(事)를 맹렬(猛烈)히 실행한다.’에서 유래한 단체명[의열(義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의열단의 단원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중심으로 고문에 김대지와 황상규, 단원은 김원봉·윤세주(1900~1942)·이성우·곽경·강세우·이종암·한봉근·한봉인·김상윤·신철휴·배동선·서상락·권준 등 13명이었다. 단장에는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이 선출되었다. 의열.. 2023. 11. 9.
[오늘] 수잔 앤서니, ‘역사적 투표’에 성공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72년 11월 5일, 수잔 앤서니 자매들, 대통령선거 투표를 하다 1872년 오늘은 미합중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수잔 B. 앤서니(Susan Brownell Anthony, 1820~1906)는 세 명의 여동생과 함께 투표소로 가서 역사적인 투표를 했다. 때는 여성참정권이 없던 시대, 어렵사리 유권자 등록을 할 수 있었던 그녀는 이날 투표에 성공(!)한 뒤 동지이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Elizabeth Cady Stanton, 1815~1902)에게 승전보를 보냈다. “이 문제 때문에 올해 겨우내 골치가 아프게 되더라도 옳은 일을 해야지.” 수잔의 투표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것은 여성참정권[관련 기사 : 사우디 여성들의 첫 투표, 그리고 여성참정권]을 .. 2023. 11. 4.
[오늘] 광주에서 학생들의 항일 투쟁 불타오르다 [역사 공부 ‘오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되다 1929년 오늘,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 간의 충돌로 촉발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주 시내에서 빚어진 2차 충돌은 11월 12일 광주 지역 학생 대 시위를 거쳐, 이듬해 3월까지 호남지역은 물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항일 운동으로 발전했다. 닷새 전인 10월 30일, 광주발 통학 열차가 나주역에 도착한 뒤 벌어진 한일 중학생들 간의 난투극이 몇 개월 동안 이어진 광범위한 항일 독립운동으로 전개되리라고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이 운동이 한일 학생들 간의 사소한 다툼 때문에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국권을 빼앗긴 지 20여 년, 식민.. 2023. 11. 2.
[오늘] 조선어학회,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역사 공부 ‘오늘’] 1933년 10월 29일, 첫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 1933년 오늘(10월 29일)은 당시의 한글날이었다. 이날, 조선어학회(지금의 한글학회)는 한글 반포 487돌을 기념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조선어의 정확한 법리를 연구’할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어연구회가 1930년 12월 13일 총회를 열어 대한제국기의 한글 연구를 기초로 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아래 ‘통일안’)을 제정할 것을 결의한 지 3년 만이었다. 통일안 제정을 결의한 조선어연구회는 적극적인 사전 편찬 작업을 위해 1931년 1월 조선어연구회를 ‘조선어문의 연구와 통일’을 위한 기관인 ‘조선어학회’로 개편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932년 12월에 통일안의 원안을 발표하였다. 원안 작성에는 권덕.. 2023. 10. 28.
[오늘] 1979년 오늘-중앙정보부장은 절대권력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박정희 시해 개인의 체험과 역사 사이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는 그 외연이 워낙 크고 넓어서 그것을 겪은 이들의 공동의 기억으로 환기되곤 한다. 어떤 이에게 죽음의 공포로, 또 어떤 이에게는 굶주림의 고통이나 절망 따위로 전쟁이 떠오르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극적으로 전개된 우리 현대사에서 6월항쟁 같은 기억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추체험할 수 없다. 이런 경우 현장에서의 체험은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시대를 살았으나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 비겨 그는 날것의 역사를 겪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2023. 10. 26.
[오늘]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 카자흐스탄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3년 10월 25일- 홍범도 장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떠나다 1943년 오늘,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크즐오르다 시 쓰체브나야 거리 제2번지 자택에서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洪範圖, 1868~1943)가 파란 많은 삶을 마감했다. 함경도 주민으로부터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으로 알려진 ‘산 포수’ 출신이었지만 기민한 유격 전술로 일본군을 연파하면서 일본군에게서는 ‘나는 장군[비장군(飛將軍)]’으로 불리었던 항일 무장투쟁사의 전설적 영웅의 임종은, 그러나 쓸쓸했다. 봉오동(1920)과 청산리(1920) 전투의 대승을 이끌었지만, 나라 잃은 독립투사에게는 승리를 즐길 여가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독립군에게 대패한 일제는 간도 일대의 조선인 마을을 초토화하여 1만 명이 넘는 .. 2023. 10. 25.
[오늘] 레이테만 전투와 마쓰이(松井) 오장의 행방 [역사 공부 ‘오늘’] 1944년 10월 23일, 레이테만 전투 시작 1944년 오늘(10월 23일), 필리핀 주변 해역에서 제2차 필리핀해전으로 알려진 레이테(Leyte)만 전투가 막을 올렸다. 필리핀의 레이테섬, 사마르(Samar)섬, 루손(Luzon)섬에서 10월 26일까지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연합과 일본제국 해군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 전투는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해전이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군은 중앙 태평양 지역에서부터 남태평양 지역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하나씩 잃기 시작했고 솔로몬·비스마르크·애드미럴티 제도(諸島), 뉴기니섬, 마셜군도, 웨이크섬과 같은 지역의 기지는 고립되고 있었다. 2차대전 중 가장 큰 해전, 레이테만 전투 1944년 6월에는 미 해군.. 2023. 10. 23.
[오늘] 국민총력전을 위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 [역사 공부 ‘오늘’] 1941년 10월 22일,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 1941년 오늘(10월 22일), 경성부민관 대강당에서 국민 총력전을 위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이 결성되었다. 대회는 일본인 요인과 윤치호, 최린 등 준비위원과 각도 발기인 대표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조선임전보국단(아래 보국단)은 같은 해 8월에 결성된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임전대책협의회가 ‘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자’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통합한 것이었다. 보국단의 강령은 황도(皇道) 정신 선양과 사상 통일, 전시체제에서 국민 생활 쇄신 등 다섯 가지였는데 ‘김동환(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과 이광수(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려 했건만)의 대역작’이라는.. 2023. 10. 22.
[오늘] 청산리 전투, 큰 승리로 막을 올리다 [역사 공부 ‘오늘’]1920년 10월 21일,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본군 200여 명 전멸시키다 1920년 오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에서 이범석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총사령관 김좌진) 제2제대가 일본군 보병 19사단 야스카와 지로(安川二郞)의 전위부대 200여 명을 교전 20여 분만에 전멸시켰다. 첫 전투의 승리로 청산리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청산리 전투는 좁게는 이 백운평 전투를 이르지만 이후 전개된 김좌진(1889~1930)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 부대가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교전 끝에 일본군을 대파한 전투를 포괄한다. 백운평 전투의 승리로 시작된 청산리 대첩 뒷사람들이야 전설처럼 전승되는 이 독립전쟁.. 2023. 10. 21.
[오늘] ‘유신독재’의 시작(10월유신)과 붕괴(부마항쟁) [역사 공부 ‘오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영구집권 쿠데타 ‘10월유신’ 선언 1972년 오늘(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과 헌법 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삼선개헌에 이어 국회해산과 헌법 일부 조항의 정지, 헌법개정안과 국민투표 계획 등을 내용으로 하는 4가지 비상조치를 통해 그는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것이었다. 10월유신, 박정희의 영구집권 쿠데타 박정희의 특별선언은 10월 17일 발표 당시에는 특별선언, 특별조치, 비상선언, 비상조치, 유신적 조치 등으로 불리다가 10월 27일에 ‘10월 유신(維新)’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이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원용한 것이었다. 특별선언 발표 뒤,.. 2023. 10. 17.
[오늘] 프랑스 비시 정부 총리 라발 총살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45년 10월 15일, 비시 프랑스 라발 총리 총살형 집행 1945년 10월 15일,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 점령 하의 남부 프랑스를 통치(1940~1944)한 괴뢰정권 비시 정부(Vichy France)의 총리 피에르 라발(Pierre Laval, 1883~1945)이 국가반역죄로 총살되었다. 그것은 비시 정부의 국가수반 페탱(Pétain, 1856~1951)과 함께 나치 협력자에 대한 숙청의 하이라이트였다.[관련 글 : 1951년 오늘 - 페탱 원수 사망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비시 체제 2인자, 반역죄로 총살되다 1940년 페탱에 전권을 위임하는 상·하원의원 투표를 성사시킴으로써 비시 체제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고 그해 12월까지는 ‘부총리’를 역임했던 라발은 비시.. 2023.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