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9

[오늘] 두 소녀의 ‘희생’으로 드러난 ‘불평등 한미관계’ [역사 공부 ‘오늘’] 2002년 6월 13일, 두 여중생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다 두 소녀의 비극, 혹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민낯6월 13일은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소녀 신효순·심미선(1988∼2002)의 17주기다. 두 소녀의 비극은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이상 장기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존재를 새삼스럽게 환기해 주었다. 이 사건이 드러내 준 것은 ‘한미동맹에 의한 굴욕적이고 불평등한 한미관계’였기 때문이다.사고 이후 유족들은 “당시 사고 차량의 너비가 도로 폭보다 넓은 데다 마주 오던 차량과 무리하게 교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이미 예견된 살인행위였다”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차량 운전병과 관제병, 미2사단장 등 책임자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의정부지청에 고소하고, 미군 측의 .. 2024. 6. 13.
[오늘] 국민의 민주화 열망, 6·10 민주항쟁으로 꽃피우다 1987년 1월 14일부터 6월 29일까지 이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여러 현안으로 말미암은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6·10 민주항쟁 36돌을 맞는다. 6·10민주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6월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정의된다. 이 6월항쟁은 격동의 우리 현대사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전개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즉 ‘촛불항쟁(혁명)’과 함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로 일컬어진다.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 6월 민주항쟁 6월항쟁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월)에서 비롯하여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4월)로 상승되었고, 시위.. 2024. 6. 10.
[오늘] 6·10, 순종의 장례일에 터진 ‘조선독립 만세!’ [역사 공부 ‘오늘’] 1926년 6월 10일에 불타오른, 학생 중심의 민족 독립운동순종 장례일(인산일)에 터진 ‘조선 독립만세!’ 1926년 6월 10일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1874~1926)의 인산(因山, 임금의 장례)일이었다. 헤이그 밀사 사건(1907) 이래 일제와 친일파의 압력으로 퇴위하게 된 고종을 이어 대한제국 제2대 황제가 된 순종은 명목상 재위 18년 만인 1926년 4월 25일 심장마비로 승하했고, 이날 인산이 거행된 것이었다. 순종은 황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뒤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1910년 강제합병으로 대한제국의 멸망을 지켜보아야 했던 비운의 황제였다. 이후 그는 모든 권한을 잃고 이왕(李王)이라 불리며 창덕궁에서 허수아비 군주로 살아야 했.. 2024. 6. 10.
[오늘] 조세희,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쏘아올리다 [역사 공부 ‘오늘’] 1978년 6월 5일, 조세희 연작소설집 『난쏘공』 초판 제1쇄 발간작가 조세희(1942~ )는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으로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공장 노동자이면서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도시 빈민을 상징하는 보통명사 ‘난쟁이 일가’를 창조해냈다.그는 당시 제한되었던 표현의 자유 때문에 상징적인 형식으로 이들 난쟁이 일가의 삶을 서술했는데, 정작 독자들은 그러한 표현의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에 정서적으로 다가가고 그것을 내면화할 수 있었던 듯하다.이 책이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면서 의식화 교재 역할까지 한 것은 서정적 문체로 형상화된 난쟁이 일가의 삶을 통하여 ‘시대의 아픔’을 추체험할 수 있.. 2024. 6. 6.
[오늘] 김일성과 조선인민혁명군, 함남 갑산 보천보(普天堡) 습격 [역사 공부 ‘오늘’] 1937년 6월 5일, 김일성 함남 갑산 보천보를 습격하다1937년 6월 4일 밤 10시, 김일성(金日成, 1912~1994)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連軍) 2군 6사 소속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150명은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 보천보(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상 양강도 보천군 보천읍)를 습격했다.  김일성 부대는 2개 습격조와 2개 차단조, 1개 정치공작조로 나누어 제1습격조는 일제 경찰관 주재소·면사무소·소방서를 공격하고, 제2습격조는 우편국·농사시험장·산림보호구를 습격하여 기관 건물들을 전소시키고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 전투는 1937년 3월 조선인민혁명군(동북항일연군)이 국내 진공 작전을 펴기로 함에 따라 수행되었다. 작전은 최현(1907~1982, 해방 후 북한 부총.. 2024. 6. 4.
[오늘]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68년 6월 1일, 헬렌 켈러 돌아가다1968년 6월 1일 토요일 낮, 코네티컷주 웨스트포드의 자택에서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가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평생을 잿빛 고요 속에서 살았고, 후각, 미각, 촉각, 그리고 수화, 점자 입술 읽기로 세상을 배웠다.”() 그의 유해는 영원한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앤 설리번과 폴리 톰슨의 옆에 묻혔다. [관련 글 :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고요한 밤의 빛의 된 여인 ]헬렌 켈러는 인문계 학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이었다. 그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였고, 여성참정권과 여성 피임을 지원한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또 우드로 윌슨의 도덕주의(Moralism)에 반대한.. 2024. 6. 2.
[오늘] 신군부, 정권 사유화 기구 ‘국보위’ 설치 [역사 공부 ‘오늘’]1980년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신군부, 정권 사유화 기구 국보위 설치하다 1980년 5월 31일, 광주항쟁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의 신군부는 12·12와 5·17 쿠데타로 탈취한 정치 권력을 사유화하기 위한 대통령 자문·보좌 기관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를 설치했다. 내각을 장악하기 위한 임시 행정기구 국보위는 80년 10월 29일 폐지될 때까지 약 5개월간 정권의 정통성과 도덕성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최상위 권력 기구’로 존재하면서 초법적 지위를 누렸다. 이는 1980년 5월 초 전두환의 보안사령부가 시국 수습을 명분으로 기획한 ‘비상계엄 전국확대’·‘국회 해산’·‘국가 보위 비상기구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집권시나리오의 하나였다. 신군부.. 2024. 5. 31.
[오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해산 [역사 공부 ‘오늘’]1935년 5월 20일, 카프 해산1935년 5월 20일, 뚜렷한 목적의식을 강조하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표방하며 활동해 오다가 일제의 탄압, 자체 내의 내분과 전향 등으로 휘청이던 사회주의 문학단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 자진 해산했다. 이날, 서기장 임화(1908~1953)가 동대문경찰서 고등계에 카프 해산을 신고함으로써 1925년 8월 결성되었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카프의 활동은 1931년과 1934년에 이어진 일제의 1·2차 검거를 통한 극심한 탄압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이어진 일제의 탄압과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조직원들의 전향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해체에 이른 것이었다.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로 결성된 조선.. 2024. 5. 20.
[오늘] 신군부, 광주 재진입 작전으로 항쟁 진압 [역사 공부 ‘오늘’]1980년 5월 27일, 신군부 광주항쟁 강제 진압1980년 5월 27일, 신군부 수뇌부가 투입한 계엄군은 광주 재진입 작전을 펼쳐 시민들의 항전을 제압하고 전남도청을 점령했다. 47개 대대 2만 317명으로 편성한 계엄군이 5개 방면을 통해 광주로 일제히 진입한 이 작전의 계엄군 측 공식 작전명은 상무충정작전이었다. 일요일인 5월 18일, 학생 시위대와 7공수 부대의 충돌로 시작된 시위는 군인들의 무자비한 진압과 비무장 시민을 향한 발포로 다수의 시민이 사망하면서 자위를 위한 항쟁으로 이어졌다. 무장한 시민들이 항전을 시작하자 광주 시내 주요 시설에 배치된 계엄군은 5월 21일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계엄군이 물러나자 시민수습위원회가 구성되어 22일, 정부에 사태 수습을 위한 .. 2024. 5. 18.
[오늘] 5·18, 무도한 군부의 ‘학살’에 맞선 ‘시민들의 응전’ 5월항쟁 뒤 43년, 여전히 ‘항쟁의 폄훼와 왜곡’은 끝나지 않았다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5·18’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당시 광주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운동”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되기에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에게 총격을 가한 5·18은 너무 ‘끔찍한 사건’이었다. ‘5·18 민주화운동’과 ‘광주 민중항쟁’ 사이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이 정치적 비극의 본질은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정치군인들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무고한 시민’에게 총을 쏜 사건이다. 그리고 이에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키고자 분연히 봉.. 2024. 5. 17.
[오늘] 일제, 국가보안법의 뿌리인 ‘치안유지법’ 시행 [역사 공부 ‘오늘’] 1925년 5월 12일, 일제, 독립운동 탄압 치안유지법 시행1925년 5월 12일, 일본제국은 한 달 전인 4월 12일 법률 제46호로 공포되었던 치안유지법의 시행에 들어갔다. 1923년 간토 대지진 직후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공포된 긴급칙령이 전신인 이 법률은 천황제나 사유재산제를 부정하는 운동을 단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되었고 칙령에 따라 조선, 타이완, 사할린에서도 시행되었다. 치안유지법은 조선에서 독립운동을 처벌하는 전가의 보도 거의 동시에 제정되었던 보통선거법이 민심을 달래기 위한 당근이었다면 치안유지법은 보통선거법 시행으로 활성화될 정치 운동을 막으려는 의도를 숨긴 채찍이었다. 러시아 혁명(1917)의 영향으로 활발해진 일본 내 공산주의운동을 억압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 2024. 5. 11.
[오늘] 동학농민군,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하다 [역사 공부 ‘오늘’] 1894년 5월 11일 - 동학농민군, 전라 감영군과 싸워 대승하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황토현(黃土峴)은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에 있는 개항기 동학농민군 관련 전적지이다. ‘고개 현(峴)’ 자를 쓰지만, ‘영(嶺)’이나 ‘치(峙)’를 쓰는 고개보다 낮은 구릉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황토현은 해발 35m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와 도계리 사이에 있다.  황토현에서는 1894년(고종 31) 5월 11일(음 4.7.) 새벽에, 동학농민군과 감영군(監營軍)의 전투가 전개되었다. 이 전투는 1894년 2월 15일(음 1.10.) 전봉준 등이 고부 관아를 습격하면서 일어난 고부 농민 봉기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 2024.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