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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8

[오늘] 귀순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 ‘위장 간첩’으로 처형 [역사 공부 ‘오늘’] 1969년 7월 3일, 귀순 이수근, 위장 귀순 간첩 혐의로 처형1969년 7월 3일, 이태 전에 판문점 북측 지역을 극적으로 탈출해 귀순했던 북한 중앙통신 부사장 이수근(1924~1969)이 ‘위장 귀순 간첩’ 혐의로 선고받은 사형이 집행되어 마흔다섯의 나이로 곡절 많은 삶을 마감했다.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40여 발에 이르는 북한 경비병의 총탄을 피해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영웅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동토의 공화국을 탈출하여 마침내 자유를 쟁취한 영웅의 앞길은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불과 이태 만인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캄보디아로 향하다가 베트남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체포되어 한국으로 강제 압송되었다. 그해 .. 2024. 7. 3.
[오늘]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완성 30돌 [역사 공부 ‘오늘’] 1989년 7월 1일,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완성올로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완성 30주년이 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가장 단기간에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한 사례라고 한다. 1966년 의료보험법 제정을 기준으로 하면 26년, 1977년 직장의료보험 실시를 기준으로 할 땐 불과 12년 만에 우리는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한 것이다.두 세기에 걸친 예이긴 하지만 1883년 세계 최초로 국가 주도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 독일이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하는 데는 무려 100여 년(1883~1988)이 소요되었다. 일본만 해도 36년(1922~1958)이 걸렸다.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는 충분히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다.2017년 8월 9일, 정부.. 2024. 6. 30.
[오늘] 승려·시인·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대선사 열반 [역사 공부 ‘오늘’] 1944년 6월 29일, 만해 한용운 해방 보지 못하고 떠나다1944년 6월 29일, 성북동의 우거 심우장(尋牛莊)에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1879~1944) 큰 스님이 오래 앓던 중풍으로 별세하였다.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반대편 산비탈에 북향으로 집을 지었던 이 강골의 독립운동가는 열네 달 후에 올 해방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향년 65세.  만해는 기미년 독립선언을 계획하고 선언서 작성에 참여하여 공약 3장을 추가하는 등 3·1운동을 주도했고 국내 독립운동세력의 역량을 결집하고자 신간회(1927)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3·1 운동 뒤 3년간 복역했고 이후 죽을 때까지 일제에 대한 저항.. 2024. 6. 29.
[오늘] 6월항쟁이 끌어낸 ‘6·29선언’, 신군부 국민에게 백기 들다 [역사 공부 ‘오늘’] 1987년 6월 29일-신군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항복하다1987년 6월 29일,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야당 지도자 김대중의 사면복권을 건의하는 등 획기적인 시국수습 8개 항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열린 민정당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발표한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을 통해서 여야 합의로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을 개정하여 새 헌법으로 선거를 치러 88년 2월에 평화적 정부 이양을 실현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불과 두 달 전에 나온, 대통령 전두환의 ‘4·13 호헌선언’을 완전히 뒤집고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에 맞서 온 야당과 재야 시민사회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 2024. 6. 29.
[오늘] 휴전 30돌에야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시작 [역사 공부 ‘오늘’] 1983년 6월 30일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1983년 오늘(6월 30일), 한국방송공사(KBS)는 1TV를 통해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이 특별생방송은 한국전쟁 33주년과 휴전협정(1953.7.27.) 30주년을 즈음하여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1950)으로 인한 남북분단이 낳은, 약 1천만 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기획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KBS는 본래 라디오에서 10여 년 동안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해왔기 때문에 하루 동안 10가족 정도가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시민들이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뜻밖의 열기에 KBS는 닷새간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이산가족 찾기 릴레이 생방송을 이어갔다. 상봉률 .. 2024. 6. 29.
[오늘] 한강 다리 폭파 - 전날 이미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을 탈출했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6월 28일, 새벽 한강대교 폭파1950년 6월 28일 새벽 2시 28분, 국군은 한강대교(인도교)를 폭파하였다. 사흘 전인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된 한국전쟁 70시간 30여 분 만이었다. 폭파 장면을 목격한 미 군사고문단은 50여 대의 차량이 파괴되고, 500~800명의 인명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도 서울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이 다리가 끊어지면서 무고한 인명의 희생에 이어 서울시민 100만 명의 발이 묶였다. 병력과 물자 수송이 막히면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다가 한강 이남으로 후퇴하지 못한 국군 6개 사단이 치명적 타격을 입었고 중화기와 차량 등 다량의 군수품을 적에게 내줘야 했다.  전쟁 발발 뒤 정부의 공식 발표는 6차례에 걸쳐 있었다. 6.. 2024. 6. 28.
[오늘] 첫 동시 지방선거, 지역 분할 구도 완성 [역사 공부 ‘오늘’] 1995년 첫 전국동시지방선거 3당 합당 이전의 지역 분할 구도 회귀1995년 6월 27일, 처음으로 전국에서 동시 지방선거가 시행되었다. 투표율은 68.4%. 이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지방자치 단체장(기초와 광역)과 지방의회(기초와 광역) 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었으나,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2년마다 걸러 치르려고 이 첫 번째 지방선거 당선자의 임기는 3년으로 한정되었다.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1996년에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1995년 동시선거를 통과한 단체장과 지방의원은 3년 후인 1998년에 2회 동시선거를 치르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의 임기는 1998년 제2회 동시 지방선거부터는 원래대로 4년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 2024. 6. 27.
[오늘] 백범 김구, 육군 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스러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백범 피살1949년 6월 26일은 일요일이었다. 백범 김구(1876~1949)는 경교장 집무실에서 창암학원 여교사와 담소 중이었다. 비서실에서는 경교장에 여러 차례 다녀간 바 있는 육군 소위 안두희가 비서들을 상대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안두희는 광복군 출신의 김학규(1900~1967) 장군의 소개로 백범을 만났던 인물이었다. [관련 기사 : “탕! 탕! 탕! 탕!…내레 금방 선생님을 쏴시오” 참조] 창암학원 여교사가 떠난 후 선우진 비서는 안두희를 백범의 집무실로 안내해 주고 지하 부엌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 백범의 집무실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렸고 경교장 정문 경호실의 경호 순경들이 카빈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황급히 본관으로 뛰어 올라왔다... 2024. 6. 26.
[오늘] 70년 전 우리가 치른 전쟁이 가르쳐 준 것들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남침으로 6.25전쟁 발발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북한의 조선인민군이 소련에서 지원한 최신형 전차 T-34/85를 앞세우고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함으로써 ‘6.25전쟁’이 시작됐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돼 맞닥뜨린 혼란의 해방공간을 일거에 무력화하면서 한반도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데올로기 대립’의 현장이 되리라는 끔찍한 예고였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전쟁 앞에 허둥대기는 정부도 국민과 다르지 않았다. 개전 사흘 만에 대통령과 정부 수뇌부는 시민들에게 서울 사수를 공언해 놓고도 한강 다리를 끊고 남몰래 피난길에 올랐고 140만 명의 서울 시민은 ‘인공 치하’의 수도에 남겨졌다.  해방과 함께 온 ‘분단.. 2024. 6. 25.
[오늘] 식민지사회 비판적 공론장의 구심 월간 <개벽> 창간 [역사 공부 ‘오늘’] 1920년 6월 25일, 월간종합지 창간1920년 6월 25일, 천도교단에서 민족문화 실현 운동을 위해 세운 출판사 개벽사에서 A4판, 160쪽 내외의 월간종합지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천도교(동학의 후신)의 ‘후천개벽 사상’에서 이름을 딴 이 잡지는 일제의 정책에 항거하여 정간·발행 금지·벌금, 그리고 발행정지 등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민족의식 고취에 역점을 두어 곧 식민지사회 비판적 공론장의 구심체가 되었다. 의 창간은 천도교 청년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돈화(1884~?)를 비롯한 청년들은 잡지 창간을 위해 먼저 출판사 개벽사(開闢社)를 설립하였다.(개벽사는 외에도 , , , , , , 등의 잡지를 발행하며 1920년대 잡지계를 이끌었다) 창간호를 발간할 .. 2024. 6. 24.
[오늘] 한일기본조약 조인, 국교 재개되었으나 ‘문제’는 남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 4개 협정과 25개 문서로 된 ‘대한민국과 일본 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한일기본조약)이 정식으로 조인되었다. 1951년 첫 한일회담이 열린 지 14년 만에, 1945년 해방된 후 독립 국가로서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과 체결한 첫 조약이었다. [관련 글 :  경술국치 - 대한제국, 일본에 강제 편입되다] 6월 22일, 일본 수상관저에서 기본조약 조인 8월 14일에는 여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이 조약을 비준하였고 12월 18일에는 중앙청에서 두 나라의 국교 정상화를 최종적으로 매듭짓는 기본조약 및 협정에 대한 비준서를 교환했다. 36년여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을 넘어 새로운 양국 관계를 재개하는.. 2024. 6. 21.
[오늘] 비운의 명장 임경업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646년 6월 20일, 임경업 장군 분사하다1646년 6월 20일(음력, 양력으로는 8월 1일) 조선 중기의 무장 임경업(林慶業, 1594~1646)이 파란 많은 삶을 억울하게 마감했다. 용맹하고 강직했으되 시대를 읽지 못한 완고함 때문이었던가, 그는 때를 잘못 만나 국제 미아가 된 비극적 운명을 비켜 가지 못한 불운한 장수였다. 국제 미아가 되었던 비운의 명장 임경업은 충청도 충주 달천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택(平澤)이며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시호가 충민(忠愍)이다. 스물넷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괄의 난(1624) 때 정충신 장군의 선봉장으로 큰 공을 세우면서 1등 공신이 되었다. 1633년 청북(淸北, 청천강 이북) 방어사 겸 영변 부사에 등용되어 북방 .. 2024. 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