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139 사진과 역사, 영월로의 짧은 여행 2009 동강국제사진제를 찾아서 월요일 오후에 가족이 영월을 행해 떠난 것은 순전히 거기서 베풀어진다는 ‘동강국제사진제’ 때문이었다. 이틀간 말미를 얻은 딸애가 제 동생과 함께 영월 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런가 하기만 했다. 남은 어른들에게 별로 할 일이 없다는 걸 안 아이들은 곧 가족여행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사진기를 메고 다니긴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자신을 사진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정작 그런 전시회 따위는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사진을 찍는 것과는 무관하게 사진전을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 나는 정작 엄두도 내지 못했건만, 아이들은 서울에서 열린 ‘로버트 카파 전’과 ‘매그넘 전’도 다녀온 것이다. 예정에 없었던 영월 여행은 그러나 시간이 너무.. 2019. 8. 21. [세계유산–한국의 서원] ① 소수서원, 서원도 사액도 최초였던 백운동서원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의 결정으로 한국의 서원 9개소가 우리나라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미 다녀온 데는 써 놓은 글로 대신하고 뒤늦게 다녀온 서원 이야기는 새로 쓰는 등, 틈나는 대로 서원 순례기를 펼쳐갈까 한다. [관련 글 : ‘한국의 서원(書院)’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다] ① 경북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서원(書院)은 ‘조선 중기 이후 전국 곳곳에 세워진 사설 교육기관’이다. 이른바 선현의 제사를 모시는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의 기능을 고루 갖춘 이 사학은 초기에는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림의 공론을 형성하는 등 긍정적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서원은 혈연과 지연, 학벌·사제·당파 관계 등과 연결되어 지방 양반층의 이익집단화 경향을.. 2019. 7. 10. 남명 조식, 경상우도의 ‘의(義)’가 그에서 비롯하였다 [지각답사기 ②]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유적지함양과 산청 일대를 다녀온 것은 2008년 벽두다. 1월의 두 번째 주말, 나는 두 친구와 함께 지리산 자락의 화림동 계곡 주변과 단속사, 덕천서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두 편의 글로 갈무리했다. 한 편은 기사로 쓴 ‘화림동 계곡의 정자 이야기’였고 다른 한 편은 블로그에 올린 ‘단속사 옛터’를 다룬 글이었다.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우리는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있는 덕천서원을 비롯하여 산천재와 세심정, 그리고 선생의 묘소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랐다. 나는 남명 유적을 다녀온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남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어떤 밑천도 내겐 없었던 까닭이다. 나는 80년대 중반부터 학교에.. 2019. 6. 18. 원주, 허물어진 절터를 찾아서 [지각답사기 ①] 원주 흥법사(興法寺)터와 법천사(法泉寺)터, 거돈사(居頓寺)터 애당초 길을 떠날 때의 목적이야 뻔하다. 답사다운 제대로 된 답사를 하겠다는 다짐도 다짐이거니와 미리 목적지 정보를 간추려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이나마 챙길 것과 버릴 것을 가늠해 놓는다. 그러나 막상 길을 떠나 목적지에 닿으면 이런 다짐과 계획은 어긋날 수밖에 없다. 답사하고자 한 유적지가 언제나 내 뜻대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리 파악한 정보가 유적의 변화를 담고 있지 않을 때도 있고, 작정하고 수십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지만, 촬영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다. 무엇보다 돌아와서야 빠뜨린 풍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실망은 오래 마음에 앙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각답사기’를 쓰게 하는 .. 2019. 6. 18. 경상도 사람의 전라 나들이 ① 전주 한옥마을 전북 전주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 그동안 나는 한 번도 전주(全州)에 가보지 못했다. 웬만한 도시나 유적지는 빼놓지 않고 다녔던 편인데, 어쩐 일인지 전주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 전주를 잘 알지 못하니 전주라 하면 떠올리는 게 고작 ‘경기전’이나 ‘비빔밥’ 정도다. 영호남, 서로 ‘나들이가 쉽지 않다’ 사실, 아주 유명한 관광 유적지가 아닌 이상 영남에서 호남 쪽으로 넘어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거꾸로 호남에서 영남으로 넘어오는 일도 어렵기는 매일반이다. 무엇보다도 일단 동서로 나뉜 영호남을 잇는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다. 전두환의 신군부 시절에 개통한 88올림픽고속도로가 유일하게 영남 내륙과 호남을 잇는 고속도론데, 사실 이 길은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짝퉁’ 고속도로다. 고속도로인데도 좁.. 2019. 6. 17. [청송 기행] 송소고택(松韶故宅) - 청송 심부자 댁 왕버들과 물안개의 호수 주산지 옆 청송 심부자댁 ‘청송’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주왕산’이나 ‘주산지’ 따위의 명승지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청송교도소’나 지금은 청송제3교도소가 된 ‘청송보호감호소’를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경북 북부의 궁벽한 산골인 청송이 사람들에게 ‘교도소’나 ‘감호소’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상황은 아무래도 찜찜할 수밖에 없겠다. ‘교도소’와 ‘보호감호소’의 청송 지난 3월에 법무부 장관이 청송제2교도소에 사형집행시설 설치를 지시한 것에 대해 청송 지역이 크게 반발한 것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1983년 보호감호소가 설치되면서 악명 높은 교도소 소재지로 알려진 데 이어 청송에 사형집행 시설이 들어서면 청송의 ‘청정 지역 이미지’가 훼손.. 2019. 6. 12. 화림동 계곡에 으뜸 정자 ‘농월정(弄月亭)은 없다’ 국내 최고의 정자 답사 코스, 화림동 계곡1월의 두 번째 주말, ‘안동’에서 ‘함양’으로 길을 떠났다. 예부터 큰 인물을 낳은 땅으로 경상좌도에선 안동을, 경상우도에선 함양(咸陽)을 꼽으니 우리의 여정은 ‘좌 안동’에서 ‘우 안동’으로 가는 길이다. 영남 유림의 본산으로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1450~1504)이 있었다. 조선조 5현, 동국 18현 중의 한 분으로 기려지는 이 영남 거유가 태어난 곳이 함양군 지곡면인 것이다. 함양에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이 안의(安義)다. 1914년 안의군이 폐지될 때까지 함양의 중심이던 고을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현감으로 다섯 해 동안 이 고을을 다스렸다. 그는 이때, 나라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쓰게.. 2019. 5. 29. 불국사의 발견, 또는 재발견 길라잡이 따라 불국사 답사, 불국사의 ‘발견’ 5월 첫날에 불국사(佛國寺)를 다녀왔다. 지난 3월 첫날의 ‘대구 근대 투어’에 이은 두 번째 답삿길이었다. 훌륭한 길라잡이는 답사객의 눈을 뜨게 해 주는 법, 나는 이웃 블로거 초석이 들려주는 불국사를 기대했고 그것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불국사, 첫 아이가 말문을 튼 곳 불국사는 아마 내가 난생처음 찾은 절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향 주변엔 절이 드물었고, 부모님은 불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거쳐 부산을 다녀왔으니 그때 불국사를 빼먹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어릴 적 여행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나는 초등학교 때에 들렀던 이 절집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 다시 나는 불국사를 찾았던 것일까. 글쎄,.. 2019. 5. 20. [유럽여행-바티칸]초보 여행자, 바티칸에서 길을 잃다 [처음 만난 유럽 ⑥]초보 여행자, 바티칸에서 길을 잃다 *사진은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음. 여행기를 이어 쓰면서 퇴직을 즈음하여 아내와 같이 유럽을 여행한 것은 지난해 4월이었다. 15일부터 22일까지 이어진 8박 9일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한숨 돌린 뒤 바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 미리 여행지 공부를 하긴 했는데 정작 돌아와 사진을 뒤적이며 복기한 여행의 기억은 뒤죽박죽이었다. 당연히 찍힌 사진은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었는데도 그 기억의 앞뒤가 헛갈렸다. 그게 로마였는지 피렌체였는지가 헛갈리는가 하면 찍은 사진의 유적이 무엇이었는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기억조차 헛갈리는 사진만으로 여행을 그대로 복기하라고 했다면 나는 나자빠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인터넷 시대.. 2019. 5. 3. [유럽여행-로마]로마, ‘드라마틱’과 ‘로맨틱’ 그 사이 어디쯤 [처음 만난 유럽⑤] 로마 ② 고대에서 근대로의 여정 *사진은 클릭하면 큰 사이즈(1280×848)로 볼 수 있음. 우리는 가끔 연극처럼 그 전개가 역동적이고 경이로운 상황을 일러 ‘드라마틱(dramatic)하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고여 있는 일상을 일거에 깨뜨리는 파한과 파격의 시간이다. 드라마틱한 시간의 전개 가운데 으뜸은 역사다. 때로 역사는 드라마의 그것을 뛰어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라의 크기와 무관하게 역사는 극적으로 전개되지만, 단일 국가가 아니라 세계적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의 경우 그 극적 성격은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으로 전개된 2천 년의 역사에 아롱진 숱한 정복 전쟁과 권력 투쟁에서 흘린 피의 성찬(盛饌)이야말로 ‘드라마틱 로마’의 진면목이 아니던가 말.. 2019. 5. 2. [유럽여행-로마]‘빵과 서커스’, 로마 말기엔 한 해의 반이 축제였다 [처음 만난 유럽④] 로마 ① 제국의 영광, 고대 로마 유적들 *사진은 클릭하면 큰 규격(1280×848)으로 볼 수 있음. 넷째 날 밤, 우리는 로마 외곽의 낡은 호텔에서 묵었다. 유럽에 머무는 동안 아내는 늘 어두운 실내를 못 견뎌 했다. 대낮에도 들어가는 방마다 등부터 켜고 보는 사람이니 침침한 조명은 곤욕 자체였던 것이다. 게다가 욕실의 거울은 또 왜 그렇게 높게 달려 있었는지……. 로마, 제국의 영광과 쇠락 이튿날 아침, 우리는 로마(Roma)로 향했다. 로마는 현시점에선 이탈리아의 수도에 지나지 않지만,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그 의미는 매우 중층적이다. 로마는 로마제국의 수도이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로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럽에서 로마를 ‘세계의 머리’, ‘영.. 2019. 5. 2. [유럽여행-피렌체]미켈란젤로를 키운 가문, 실로 대단했다 [처음 만난 유럽③] 르네상스 발원지, 꽃의 도시 피렌체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1280×848) 볼 수 있음. 나흘째 일정은 피렌체(Firenze)에서 시작되었다. 아르노강가에 닿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나는 무심하게 강 저쪽의 이어진 버드나무 숲과 야트막한 언덕 주변 마을의 붉은 지붕을 건너다보았다. 여기가 플로렌스란 말이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한 바퀴 둘러 보았지만,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피렌체에 닿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은 내게 낯설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래 이 도시를 ‘플로렌스’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수익 시인의 연작시 한 편 때문이었다. ‘우울한 샹송’의 서정시인은 이탈리아 북부의 오래된 도시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여, 잃어버린다는 일은 / 결코 슬픈.. 2019. 4. 29. 이전 1 ··· 8 9 10 11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