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라잡이 따라 불국사 답사, 불국사의 ‘발견’
5월 첫날에 불국사(佛國寺)를 다녀왔다. 지난 3월 첫날의 ‘대구 근대 투어’에 이은 두 번째 답삿길이었다. 훌륭한 길라잡이는 답사객의 눈을 뜨게 해 주는 법, 나는 이웃 블로거 초석이 들려주는 불국사를 기대했고 그것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불국사, 첫 아이가 말문을 튼 곳
불국사는 아마 내가 난생처음 찾은 절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향 주변엔 절이 드물었고, 부모님은 불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거쳐 부산을 다녀왔으니 그때 불국사를 빼먹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어릴 적 여행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다. 나는 초등학교 때에 들렀던 이 절집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 다시 나는 불국사를 찾았던 것일까. 글쎄,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시기는 스무 살이 넘어서였을 것이다.
불국사와 관련한 기억 중에서 분명한 것은 첫 아이가 거기서 말문을 텄다는 것이다. 초임 발령을 받아 경주 인근에 살 때였다. 작은누나 내외와 함께 불국사에 들렀는데 글쎄, 어디쯤이었을까, 제 엄마 뒤를 따르던 아이가 마치 오래전에 익힌 것처럼 발음도 명료하게 “손잡고 가자!”를 외친 것이었다.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아내와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때인 528년에 창건되었지만, 현재와 같은 모습을 이룬 것은 재상 김대성(?~774)이 중창한 이후다. 김대성은 자기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짓고,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 중창을 시작했지만, 절집은 그가 죽고 난 뒤에 완공되었다.
불국사, 피안의 세계를 옮겨 놓은 절집
불국(佛國)은 말 그대로 ‘부처님의 나라’, 극락정토를 이른다. 불국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彼岸)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절집이다. 불국사는 화엄 사상에 입각한 불국정토를 표현했는데 이는 독특한 가람 배치를 통해 실현된다. 불국사는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을 중심으로 세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이 영역들은 곧 사바세계와 극락세계, 그리고 연화장세계를 각각 형상화한 것이다.
대웅전 영역은 법화경을 바탕으로 한 석가여래의 사바(娑婆)세계를, 극락전 영역은 아미타경에 근거해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를, 비로전 영역은 화엄경에 바탕을 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진리의 빛을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장(蓮華藏)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들 각 영역은 각각 계단과 회랑, 문, 중심 건물 등 4개의 기본요소로 이루어진다.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 자하문(紫霞門)을 지나면 석가탑과 다보탑을 거느린 대웅전으로 들어가고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안양문(安養門)으로 들면 아미타불의 극락전에 이른다. 사바세계에서 이 다리를 건너야만 부처님의 나라로 드는 것이다.
불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석가여래의 대웅전이 아미타여래의 극락전보다 높은 위치에 있고 그 규모도 훨씬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신라인이 내세보다 현실 세계를 더 중시했고 현실 세계를 부처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곤 한다.
자하문 오른쪽 길로 우회하여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문득 처음으로 이 영역이 크고 넓다는 생각을 했다. 경내에 어린이 대상의 글쓰기, 그리기 대회가 열려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바글바글해서였을까. 석가탑과 대웅전 앞 석등이 보수 공사 중이어서 굴착기와 각종 공사 장비들이 어지러웠는데도 나는 처음으로 대웅전 영역의 규모를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느끼자, 1970년대에 복원된 회랑의 존재가 한눈에 들어왔다. 회랑은 부처에 대한 존경의 뜻에서 설치한 시설이다. 불상이 봉안된 대웅전을 정문에서 출입하는 것은 무례하므로 회랑을 따라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대웅전 영역에서 극락전 영역으로 내려간다. 극락전 앞마당엔 탑은 없고 석등 하나만이 서 있다. 여기가 삶과 죽음을 넘어선 극락세계인 까닭이다. 극락전에 모신 부처는 아미타여래, 누구나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만 외기만 하면 아미타불이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한다는 아미타 신앙은 민간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정작 극락전을 찾은 대중들은 석등 배례석 앞 ‘극락전 복돼지 상’ 주변에 꾀여 있다. 2007년에 한 관광객이 극락전 현판 뒤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을 발견한 이래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황동으로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중들은 복돼지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줄을 서는데 복돼지는 사람들의 손길로 매끈하게 닳았다. 불국사에선 ‘세상의 모든 행복과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극락정토의 복돼지는 부와 귀의 상징인 동시에 지혜로움으로 그 부귀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일 거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글쎄다, 우리는 입맛을 다셨다.
극락전 복돼지, 들켜버린 욕망의 민낯
‘깨끗한 세계’ 극락정토(淨土)에 황금 돼지 상을 세우는 것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일 뿐이다. 편액 뒤에 돼지 상을 조각한 목수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되 그것을 보이지 않게 갈무리했다. 그러나 이 21세기, 벌거벗은 대중들의 욕망은 그걸 배례석 앞으로 끌어낸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대중의 기복신앙과 만난 우리 불교의 민낯일지도 모른다.
다시 대웅전 뒤편 강당 무설전을 거쳐 가장 낮은 백성, 가장 고통받는 자를 돌보는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관음전으로 오른다. 사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 통례인 관음전은 불국사에도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관음전을 높은 곳에 짓는 것은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자 머물렀던 곳이 남쪽 바다에 솟아 있는 바위 절벽으로 된 높은 산,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 범어 포탈라카 potalaka의 음역)이었기 때문이다. 관음전으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계단을 ‘낙가교(洛迦橋)’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관음전 왼편에 있는 전각이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이다.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를 설법하는 법신불이자 화엄 불국(佛國)의 주인이 되는 부처다. 화엄 사상에서 연화장세계는 중생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상징한다. 불국사에서 비로전이 대웅전보다 높게 배치된 것은 석가모니불조차 비로자나의 현신으로 인식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전각을 세운 곳의 높낮이가 다르다 해서 부처의 품격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부처는 거룩한 존재이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일 뿐이다. 이 절집에는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대일(大日)여래(비로자나) 등의 부처들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하나로 어우러져 ‘불국’을 구현하고 있다.
절집이 베푸는 치유의 시간
비로전 옆 사리탑(승탑)을 일별하고 나한전을 거쳐 언덕을 내려오면서 새삼, 이 절집이 품고 있는 것이 전각만이 아니라 나무와 숲이라는 걸, 또 그것이 사부대중에게 고적(孤寂)과 성찰을, 그리고 치유의 시간을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자 천년 고찰 불국사를 구성하고 있는 돌과 나무, 어느 하나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도 불국사에 있는 성보 문화재, 여섯 점의 국보와 다섯 점의 보물만큼이나 소중해 보였다. 경주시민들뿐 아니라,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 절집은 가장 넉넉한 쉼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얘기다.
아무리 훌륭한 길라잡이를 앞세운다고 할지라도 절집 한 곳을 두어 시간 만에 보는 것은 어렵다. 부모의 손을 잡고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로 가득한 절집을 빠져나오며 나는 뒷날, 다시 날을 받아 불국사를 찾으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그게 쉬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2016. 5.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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