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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04

어떤 ‘측은지심(惻隱之心)’ 전직 대통령의 딸에게 보내는 민초들의 ‘연민’ 맹자가 말한 사단(四端)의 하나로 인(仁)의 본질이라고 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불쌍히 여겨서 언짢아하는 마음’이다. 물에 빠진 아이의 예로 제시한 측은지심은 이성적 판단 이전에 인간이 본능으로 가진 어진 마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상대를 불쌍하게 여길 때 말하곤 하는 ‘안됐다’라고 하는 감정과 상통한다. 따라서 ‘측은하다’거나 ‘안됐다’고 하는 감정은 타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에 대한 일종의 공감인 것이다. 그 공감이 상대에 대한 이해의 기반이 됨은 말할 것도 없다. ‘참 안됐고 측은하다’ 뜬금없이 ‘측은’을 이야기하는 것은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아내가 만난 60대 이웃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대통령을 보고 ‘측.. 2020. 1. 8.
2019년 불발 군대 ‘영창’ 폐지, 올해는 시행된다 헌법상 영장주의와 평등주의에 반하는 영창제도 2019년부터 폐지한다던 영창, 올해는 폐지될 듯 군 영창(營倉)이 사라진단다. 20일, 국회 국방위가 사병에 대한 영창제도를 폐지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2019년 1월부터 사병의 징계 중 영창이 폐지되는 것이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낯선 감옥인 ‘영창’이 일반의 화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5년 7월 방송인 김제동 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단기사병(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장성 행사에서 사회를 보던 중 군사령관의 배우자를 아주머니라고 호칭했다가 13일간 영창에 수감됐다”고 말하면서다. 이때, 군대를 다녀온 지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군대에서 못할 일이 뭐가 있나. 그러고도 남았지’였다. 대체.. 2020. 1. 7.
‘전주완판본체’와 옛 글자 닮은 공개 글꼴들 전주시가 공개한 ‘전주완판본체’, 그리고 옛글자 공개글꼴 옛 글자를 닮은 공개글꼴들 꽤 열심히 신문을 읽는 편인데도 놓쳤던가 보았다. 어저께 우연히 옛 글자를 닮은 공개글꼴이 있는가 싶어 검색했더니 지난해 7월에 전북 전주시가 ‘전주완판본체’를 공개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름 그대로 이 글꼴은 ‘완판본(完板本)’ 방각본 소설에서 집자(集字)해 만든 것이다. 17세기 이후 상업적 동기로 서울과 전주 등에서 출간된 목판본, 즉 방각본(坊刻本) 소설에 쓰인 글자는 사람 손으로 새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형미가 남다르다. 비록 현대물에 쓰이는 글꼴의 세련미와는 비길 수 없지만 투박한 모습은 사람들의 의고적(擬古的) 취향을 자극하는 것이다. 필사로 쓰인 고문서에서도 느낌은 비슷하다. 글꼴 디자인을 통해 이 .. 2020. 1. 5.
[사진 한 장] 소녀, ‘희망’을 말하다 고3 여학생의 발언 ‘안전한 대한민국’ ‘엄지 뉴스’에 예쁜 여고생 사진 하나가 떴다. [기사 ☞ 바로 가기] 누군가가 찍은 ‘폰 사진’이다. 제목은 ‘고3 수험생, 보약 아닌 단식 택하다’. 칠판을 배경으로 여학생 하나가 서 있다. 춘추복인지 하얀 블라우스 위에 입은 조끼에 꽂힌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오는데, 소녀는 노란 바탕에 검고 굵직한 글씨가 쓰인 종이 한 장을 들고 있다. 종이에는 굵직한 글씨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쓰여 있다. 칠판에는 이 여학생이 썼음 직한 단정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고3 수험생, 보약 아닌 단식 택하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원합니다. 2014. 9. 27 세월호 참사 165일째 ○○여고 박○○ (*실제 사진에는 실명이 드러나 있지만, 본인의 허락 없이 쓰므로 이를.. 2020. 1. 1.
한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들을 남기고 떠난 젊은 어머니 한글날 아침 식탁에서 나는 그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두 자녀를 기르며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젊은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였다. 입안에 밥을 떠 넣다 말고 나는 잠깐 숨을 죽였다. 눈시울만큼이나 뜨겁게 가슴 한편이 서늘해져 왔다. 이게, 무슨……. 나는 간신히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먼저 가서 미안해.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 데도 사주지 못해 미안해.” 그게 스물일곱 살, 젊은 엄마가 7살, 5살배기 철부지 아들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이는 8일 오전 자신의 원룸 창고의 가스 배관에 목을 매었다. 그녀는 사업에 실패한 남편과 이혼한 후,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서 일하면서 원룸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철부지 아들 신발 사주지.. 2019. 12. 20.
좁지만 편안했던 ‘내 인생의 첫 집’을 떠나며 복직하여 마련한 24평 작은 집을 떠나며 내일모레면 이 도시를 떠난다. 2월 중순쯤에 나올 전보 명령에 앞서 서둘러 이사를 하는 것은 집을 산 이가 하루라도 빨리 집을 비워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1월 말까지 수업이 남아 있고 2월 초에도 며칠 간 근무를 해야 하지만 부득이한 일이다. 아침에 아파트 앞 이발소에 가서 마지막 머리를 깎았다. “여기 한 십 년쯤 다녔지요?” 하고 물었더니 늙수그레한 이발사는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고 되묻는다. 예천에서 여기로 옮아온 게 1997년이다. 그해 7월에 준공검사를 앞두고 시공업체의 부도로 어수선한 가운데 우리는 예천 서본리의 오래된 국민주택을 떠나 난생처음 내 명의의 아파트에 들었다. 좁지만 편안했던 ‘내 인생의 첫 집’ 식구들 모두 행복하게 새집에 입주했다.. 2019. 12. 17.
카메라, 카메라 GX-10으로 ‘D-SLR 세계’에 입문하다 그저께, 그러니까 12월 8일, 금요일에야 내 오랜 기다림이 마침표를 찍었다. 그날 오전에 무려 20여 일 만에 내 첫 D-SLR 카메라 GX-10이 도착한 것이다. 연애하던 때를 빼면 기다림 따위에 이만큼 목을 늘어뜨린 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렌즈를 장착한 바디를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사진가들의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묵직한 ‘그립감’!),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손에 든 대포(‘똑딱이’라 부르는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 대응하는, SLR 디카를 가리키는 변말이다.)는 똑딱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의 인도자에 걸맞은 크기와 묵직한 중량감으로 다가왔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인터넷을 뒤져 최저가로 사 놓은 UV필터, 2G짜리 SD카드까지 끼.. 2019. 12. 9.
글쓰기, ‘종이 위에서 생각하기(think on paper)’ 글쓰기, 성장과 성찰의 과정 좀 민망하긴 하다. 블로그를 열고 ‘나의 블로그 편력기’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절댄 게 2007년 2월 2일이다. 그때 난 뒤 늦게 인터넷에다 ‘생각의 거처’를 마련한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싶었을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심상한 어떤 장면들도 그것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듯하다. 그것은 작게는 기억과 시간의 결과물이거나 오롯한 원인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대와 상황의 연속선 위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었다. 나는 내 무심한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내 삶에 대한 소박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이 무심한 얼굴 뒤에 감추고 있는 진실의 편린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글에 무어 대단한 메시지 따위가 들어 있다고 믿는 것은 결코.. 2019. 12. 5.
소금 이야기 - 천일염, 혹은 ‘태양의 부스러기’ 식탁의 빛과 소금, 천일염 이야기 소금은 ‘염화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짠맛의 조미료’다. 소금은 사람의 체액에 존재하며, 삼투압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하므로 사람이나 짐승에게 필요한 성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금은 너무 많이 섭취하면 여러 가지 심각한 질병을 일으켜 흔히 설탕 등과 함께 ‘백색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소금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체액의 균형을 이루며, 소화를 돕는다. 소금은 또 해독과 살균작용으로 인체의 저항력을 높여주고 죽거나 파괴된 세포를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통해 인간의 건강을 지켜왔다. 그러나 소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고혈압, 신장병, 심장병을 일으킬 수 있으니 소금은 양날을 가진 셈이라 하겠다. 뜬금없이 소금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하면서 처음으.. 2019. 12. 3.
‘엽서와 편지의 시대’는 가도 어느새 손 편지의 시대는 지나갔는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 +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2019. 11. 27.
다시 만년필을 쓰고 싶다 나의 손글씨 쓰기 ‘연필깎이’ 세대는 지금 몇 살쯤 되었을까. 학교 교무실에도 연필깎이 하나가 비치되어 있다. 저걸 누가 쓰나 싶었는데 3, 40대 교사들이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쓰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연필깎이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자라서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가끔 연필을 깎아 준 게 연필깎이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니 말이다. 우린 초등학교 때 늘 문구용 칼로 연필을 깎았다. 연필 깎는 데도 타고난 재주 같은 게 있다. 어떤 친구들은 몸통을 길쭉하고 미끈하게 깎아내고 심도 적당히 쓸어 연필이 아주 모양이 났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시작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깎다 보면 어느새 몸통은 물론이거니와 심도 못난이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며 .. 2019. 11. 24.
‘골목길 구제금융’, 전당포는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전당포, 그 성쇠와 부침의 연대기 ‘전당포(典當鋪)’는 그 이름도 고색창연하다. ‘이발소’가 ‘바버샵(barber shop)’이 되고, ‘미장원’이 ‘헤어·뷰티 살롱(hair·beauty salon)’ 따위로 진화하는 이 시대에도 전당포는 여전히 전당포다. ‘가게 포(鋪)’ 자가 붙은 이름으로 가끔 ‘지물포(紙物鋪)·시계포·자전거포’ 따위가 쓰이긴 하지만, 이는 케케묵은 ‘부름말’일 뿐 그걸 상호로 쓰는 데는 없다. 오래된 가게라는 뜻으로 쓰이는 ‘노포(老鋪)’도 마찬가지다. 지물포는 ‘지업사’로, 시계포나 자전거포는 ‘포’ 자를 떼어낸 상호를 쓰고, 손님들도 ‘포’ 대신 ‘시계방’과 ‘자전거방’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전당포는 예나 지금이나 전당포다. 사양길로 떨어지던 전당포가 새로이 성업 중이라 해도.. 2019.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