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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02

산수유와 생강나무 산수유 닮은 생강나무, 무엇이 다른가 짧은 밑천은 어디서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주머니 속 송곳(낭중지추)’이 드러나는 것과 다른 내용이면서 같은 이치이다. 오래전에 쓴 글에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그 출전이 라고 주절대었다가 이내 “논어에는 그런 글귀는 없다”는 지적을 받고야 말았다. 황급히 찾아보니 이 맞다. 대체로 이런 경우, 교훈은 두 가지다. 내 게 아닌 걸 내 것인 것처럼 꾸미는 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게 하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 나부랭이도 별로 믿을 건 못 된다는 것이 나머지다. 이번에 또 실수했다. ‘봄날, 어떤 하루’에서 학교 뒷산에서 핀 산수유 얘기를 했었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데, .. 2020. 3. 23.
블로그 10년, 다시 새 10년으로 10년을 맞은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 에 블로그를 열고 첫 글을 올린 게 2006년 12월 15일이었다. 애당초 첫 글을 쓰면서도 이 새집을 얼마 동안이나 꾸려갈 수 있을지는 별 자신이 없었다. '다음'과 '천리안'에 각각 블로그를 열었다가 이내 그걸 허물어 버린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블로그 10년(2006~2017) 그러나 햇수로 치면 11년째, 용케도 나는 오늘까지 이 둥지를 꾸려왔다. 전적으로 이는 그만그만한 삶의 장면들을 되새기며 주절댄 내 푸념과 넋두리를 읽고 격려해 준 이웃들 덕분이다. 신통찮은 글을 기사로 만들어 준 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2013년 10월 15일에 나는 “블로그 글 1000편에 부쳐”를 썼다. 블로그를 연 지 일곱 해 만이었다... 2020. 3. 18.
박정희 ‘신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민의 탄생’ 나이 든 지지자들조차 탄식… ‘묻지 마 지지’ 위험성 잘 보여줘 대통령의 유고(有故)다. 마침내 대통령 박근혜는 ‘전임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지난 10일 11시 21분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 사건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주문을 선고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네 어절로 된 문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어 온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건을 간단히 매듭지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재에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1일 만이었다. 헌재 선고 이후의 변화를 다투어 전하는 뉴스 가운데는 ‘군부대 대통령 사진 철거’ 소식도 끼어 있다. 국방부에서 .. 2020. 3. 16.
몸, 삶, 세월 삶과 세월 속에 쇠락하는 몸 언제부터인가 옷을 벗으면 편해졌다. 겉옷이 아니라 속옷까지 죄다 벗고 알몸이 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세상, 선택은 자유롭지 않다. 옷을 벗고 있어도 가능한 공간이란 고작 욕실 정도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아도 침실을 넘지 못한다. 알몸이 될 수 있는 상황이란 거기가 거기다. 욕실에서 몸을 씻거나 침실에서 속옷을 갈아입을 때다. 몸을 씻고 나서 속옷을 꿰는 일이 번거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집안에 아내만 있을 때는 맨몸으로 욕실을 나선다. 그리고 이 방 저 방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며 볼일을 본다. 처음에는 민망해하던 아내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알몸, ‘옷’으로부터의 해방 옷으로부터의 해방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2020. 3. 13.
한 청년의 죽음에 부쳐 그 죽음에 우리 사회가 답하여야 한다 오늘 자 사회면의 한 기사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제목은 “죽음으로 내려놓은 ‘등록금·취업 짐’”이다. 무슨 기사인지는 안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등록금 문제와 취업 문제로 고민하던 한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하다는 내용이다. 1998년 고려대 정경대에 입학했던 청년은 가난(등록금) 때문에 휴학과 복학, 자퇴를 거듭했다. 2000년 자퇴, 다른 사립대 입학, 자퇴, 고려대 재입학, 휴학과 입대……. 그러다가 그는 결국 2006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전역 후에도 학비 마련이 여의치 않았던 까닭이다. 지난해 8월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고시원에 머물던 그는 고시원 월세를 체납한 상태에서 1월 중순께 소식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는 가출 신고 40일 만인 지난 9일.. 2020. 3. 11.
‘법의 지배’를 다시 생각한다 ‘법의 지배’, 정말 그게 민주주의의 요체일까 한진중공업의 극적 노사 합의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청구한 김진숙 지도위원 등 노조 간부 5명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것은 지난달 27일이다. 법원은 “최강서 씨 장례 뒤 피의자들이 수사기관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노사가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회사 쪽)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김진숙에 대한 검찰의 영장 재청구 그런데 정확히 9일이 지나 이달 8일 검찰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은 “김씨는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불법 농성에 가담해 재범의 우려가 있고 무거운 처벌이 예상돼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영장 재청구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검찰과 법원의 시선이 자못 엇갈리.. 2020. 3. 10.
118돌, 노동절(메이데이)을 맞으며 118돌 노동절(2008) 5월 1일은 ‘메이데이(May Day)’다.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내걸고 미국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는 총파업 집회가 시작되었다. 5월 3일, 경찰과 군대가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 파업·농성 중이던 어린 소녀를 포함한 모두 여섯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경찰의 노동자 살해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평온하게 진행되었으나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자 누군가가 폭탄을 던져 난투가 벌어지면서 쌍방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 사건은 조작으로 의심됐다. 지배자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국가의 물리력을 동원해 시위를 금하고 시위자 수백 명을 체포했다. 이 사건이 바로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이다. .. 2020. 3. 9.
죽음……, 그 어머니와 남매의 선택 가난에 내몰린 세 가족, 극단적 선택 대구에서 가난에 내몰린 일가족 셋이 자살했다. 남편 부도로 이혼한 뒤 어렵게 두 자녀와 함께 살아온 어머니(41)가 가스가 끊기고 집세를 마련하지 못하자 딸(18), 아들(16)과 함께 방안에 번개탄을 피워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다. [관련 기사] 포털마다 양념인 듯 떠 있던 그 기사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제목만 읽었다가 뒤에 그 기사를 정독했다. 기사 앞에서 우리는 망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다다.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가슴이 아려와 울컥했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들 일가의 죽음과 그것이 환기하는 이 비정한 사회의 야만성 앞에서. 이 나라는 가난에 지친 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이른바 ‘동반 자살’을 감행하는 곳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 2020. 3. 8.
자그마치 34년, 쓸모를 다한 너를 보내며 34년을 같이한 책상과 책꽂이를 떠나보내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사들인 가구가 목제 책상이었는데 10년쯤 쓰고 딸애에게 물려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쓰기 시작해 손때가 결은 나무 책상은 아이가 삼십 대 중반을 넘겨 성장한 세월을 우리 가족과 같이했다. 2018년 11월, 어느 저녁 식탁에선가 딸아이가 책상을 버릴까 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그래라, 그만하면 오래 썼다, 하고 무심히 대답했는데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초임 시절에 마련한 목제 책상 그 나무 책상은 1984년 초임 교사 시절 단칸방 살림 시절에 산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놈은 내가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겨오고, 거기서 쫓겨난 뒤 해마다 이사를 하고, 5년 후 경북 북부지방의 시골 학교로 복직하고, 다시 몇.. 2020. 3. 5.
수훈(受勳)의 자격, 또는 훈장의 ‘품격’ 누가 훈장을 받는가, 그는 ‘받을 자격’이 있는가 ‘상(賞)’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하 같음.)을 뜻하는 일반 명사다. 비슷한 뜻이지만 ‘훈장(勳章)’은 “대한민국을 위하여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 공로를 기리고자 나라에서 주는 휘장”이라는 뜻의 법률용어로도 쓰이는 명사다. 상이 개인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라면 훈장이 가문의 명예로 이어지는 것은 그것이 ‘나라에서 주는 포상 가운데 으뜸가는 훈격(勳格)’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는 상’이 아니며, 서훈의 대상이 되는 ‘공적’이 자연인 사이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이바지’라는 특수성을 갖는 것이다. 논란이 된 MB의 ‘임기 말 서훈’ 따라서 훈장이 ‘.. 2020. 3. 3.
“맙소사, 이건 우리 집 내력이네요.” 버릴까 말까, 21년 된 선풍기 한낮 날씨가 더워지면서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냈다. 선풍기는 모두 세 대다. 둘은 이태 전과 오륙 년 전에 각각 산 놈이니 아직 생생한 편이지만, 나머지 하나는 연륜이 만만찮다. 그게 언제쯤 산 건가, 가만있자, 산 시기가 너무 까마득하다. 초임 학교인 경주 인근의 여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였다. 전세 120만 원, 단칸방에서 3년을 살다 방 두 개에 입식 부엌이 있던 양옥으로 옮기고 산 놈이니, 정확히 1987년에 산 것이다. “맙소사, 아빠 21년이에요.” 저녁을 먹으면서 고물 선풍기가 시원찮은데 버리나 마느냐며, 내외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얼마나 묵었냐’고 물어 대답했더니 딸애가 입을 딱 벌리고 보인 반응이다. 아내는 우리 집을 ‘골동품 공화국’이라 이른다. 그 수명이 .. 2020. 2. 27.
안경, 안경을 쓴다는 것 마흔 무렵에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무렵부터 눈이 조금 나빠졌는데, 굳이 안경을 끼지 않았다. 어쩐지 ‘안경쟁이’가 되는 게 마뜩잖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만 해도 안경을 끼는 건 일종의 ‘결함’으로 인식되었던 듯하다. 그 무렵 우리가 안경 쓴 아이를 가리켜 굳이 ‘눈이 넷’이라는 뜻의 ‘목사(目四)’라고 불렀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안경쟁이’를 바라보는 ‘눈길’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과 엘리트의 표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안경은 공부를 많이 한 모모한 학자들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부유한 유한계급들이 몸에 두르는 일종의 장신구처럼 생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러 ‘도수 없는 안경’을 끼고 모양을 내는 것은 말하자면 그들 시늉을 한 것이었다.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시골에는 안경 낀 .. 2020.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