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가 공개한 ‘전주완판본체’, 그리고 옛글자 공개글꼴
옛 글자를 닮은 공개글꼴들
꽤 열심히 신문을 읽는 편인데도 놓쳤던가 보았다. 어저께 우연히 옛 글자를 닮은 공개글꼴이 있는가 싶어 검색했더니 지난해 7월에 전북 전주시가 ‘전주완판본체’를 공개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름 그대로 이 글꼴은 ‘완판본(完板本)’ 방각본 소설에서 집자(集字)해 만든 것이다.
17세기 이후 상업적 동기로 서울과 전주 등에서 출간된 목판본, 즉 방각본(坊刻本) 소설에 쓰인 글자는 사람 손으로 새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형미가 남다르다. 비록 현대물에 쓰이는 글꼴의 세련미와는 비길 수 없지만 투박한 모습은 사람들의 의고적(擬古的) 취향을 자극하는 것이다.
필사로 쓰인 고문서에서도 느낌은 비슷하다. 글꼴 디자인을 통해 이 고문서에 쓰이는 옛 글자를 닮은 글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취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옛 글자 모양의 글꼴로는 아래아 한글 초기의 ‘궁서체’가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조선 시대 중기 이후에 궁녀들이 한글을 빠르고 유연하게 쓰기 위해 사용한 한글 서체인 궁서(宮書)는 그 선이 맑고 곧으며 단정하고 아담하다. 그래서 지금도 중고등학교에서 상장이나 표창장과 같은 서식에 단골로 쓰인다.
그 이후에 나온 비슷한 글꼴로는 ‘목각’이라는 이름이 두루 쓰인 ‘양재본목각’, ‘목각파임’ 같은 글꼴이 있다. ‘휴먼옛체’나 ‘양재참숯’과 같은 글꼴도 비슷하게 응용한 글꼴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글꼴은 ‘아래아 한글’에 기본으로 들어 있어서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아쉬웠던 나는 1990년대에 산돌커뮤니케이션에서 만들어 출시한 글꼴을 사서 이를 이용하여 학급문집 따위를 만들었다. 그때 내가 구매한 글꼴 가운데 ‘산돌방각본’과 ‘산돌여사서’, ‘산돌화룡도’ 같은 글꼴이 고문서에 쓰인 글꼴을 바탕으로 만든 서체였다. [관련 글 : 공개글꼴과 ‘한글’, 그리고 ‘탁상출판’]
‘방각본체’는 말 그대로 ‘방각본 소설’에 쓰인 서체다. ‘여사서’는 영조 때 간행한 <여사서(女四書)>, ‘화룡도’는 중국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을 다룬 한글 소설 <화용도(華容道)>에 각각 쓰인 글씨를 기초로 만든 글꼴이다.
그림에서 보듯 내가 구매한 방각본과 여사서는 지금도 ‘한글 2018’에서 쓸 수 있으나 어찌 된 일인지 화룡도는 한글 2018에서 구현되지 않는다.(한글 2014에선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아마 운영체제 윈도95에서 구현되게 설계된 것이어서 호환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받아놓은 옛 글자 닮은 글꼴로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만든 ‘제주 한라산체’와 ‘교육방송(EBS)’에서 공개한 ‘EBS 훈민정음’과 ‘EBS 새론체’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 써온 글꼴로는 판화가 이철수 화백이 공개한 ‘이철수 목판글꼴’이 있다.
제주 한라산체는 1종에 그치지만 <교육방송> 글꼴은 각각 3종씩, 이철수 목판 글꼴은 모두 15종이다. 글꼴 간 차이가 크지는 않지만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은 강점이다. 개인이 비상업적으로 쓰는 조건으로 무료로 공개하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한동안 꽤 생광스럽게 사용한 글꼴이지만 어느 날부터 쓰임이 뜸해진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글꼴에 대한 선호가 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눈에 익숙해지면서 초기의 신선한 느낌이나 조형미가 예전 같지 않아지는 것이다.
‘전주완판본체’는 고어 구현도 완벽
어저께 글꼴을 검색해 본 것은 그래서였다. 혹시 알지 못하는 공개글꼴이 있는가 싶어서 검색해 보았는데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에 쓰인 글꼴이 고스란히 공개되고 있었던 게다. 보도에 따르면 ‘전주완판본체’는 원래 ‘완판본 마당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유료로 보급해 온 것인데 지난해 다시 6종의 세분화된 서체로 확대·개발하고 5560자의 고어를 추가해 공개하면서 ‘전주완판본체’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한글 고어는 다른 옛 글자 닮은 공개글꼴에서도 구현되긴 한다. 그러나 보기 그림에서 보듯 고어를 구현하기는 하지만 일반 글자와 고어 글자가 잘 어우러지지는 않는다. 이는 해당 고어를 따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집을 해 보면 옛 글자 닮은 글꼴의 쓰임새는 그리 크지 않다. 예사롭지 않은 이 글꼴은 본문 서체로 사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문(古文)을 시각적으로 꾸미고자 하는 일을 빼면 이들 글꼴은 주로 제목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쓸 수 있는 글꼴이 여럿 있다고 해도 백화점 전시처럼 이것저것 다 쓸 수는 없다. 튀는 글꼴을 지나치게 쓰는 것은 편집의 격조는 물론 일관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으로 쓰면서도 최대한의 효과를 내려면 절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글꼴 선택의 ‘의미’
전주완판본체를 보는 순간 대학 시절의 ‘중세국어 강독’ 시간이 떠올랐다. 영인(影印)한 ‘열녀춘향수절가’ 완판본 복사본을 받았을 때 느꼈던 흥미와 감동이 고스란히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완판본체 6종은 ‘완판본에 충실한 글자의 조형’인 ‘각체’와 활용도에 중점을 둔 글자의 조형인 ‘순체’를 각각 굵음(B), 보통(R), 얇음(L) 글씨로 세분화했다.
예전부터 써 왔던 글꼴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나는 이 글꼴을 당분간 꽤 자주 쓰게 될 것이다. ‘김백선 의병장 처형’을 다룬 글의 그림에 처음으로 전주완판본체를 썼는데 썩 만족스러웠다. 목각 글씨는 19세기 의병들의 ‘우국충정’ 등 당대의 삶과 공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듯했기 때문이다.
글꼴의 선택은 단순한 ‘의장(意匠)’의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택한 글꼴이 주는 느낌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글의 의미를 훨씬 더 깊고 풍부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모양만을 내기 위해서라면 거기 그만큼의 수고를 베풀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2018. 3.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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