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글씨 쓰기
‘연필깎이’ 세대는 지금 몇 살쯤 되었을까. 학교 교무실에도 연필깎이 하나가 비치되어 있다. 저걸 누가 쓰나 싶었는데 3, 40대 교사들이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쓰는 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는 연필깎이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자라서 우리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가끔 연필을 깎아 준 게 연필깎이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니 말이다.
우린 초등학교 때 늘 문구용 칼로 연필을 깎았다. 연필 깎는 데도 타고난 재주 같은 게 있다. 어떤 친구들은 몸통을 길쭉하고 미끈하게 깎아내고 심도 적당히 쓸어 연필이 아주 모양이 났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시작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깎다 보면 어느새 몸통은 물론이거니와 심도 못난이 모양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며 집안일을 돕던 친척 누나가 연필을 아주 잘 깎았었다. 그녀는 내 연필 여러 자루를 알맞게 깎아서 가지런히 내 필통 속에 넣어주곤 했다. 학교에 가서 필통을 열어 가지런히 이마를 맞대고 누워 있는 연필을 보면 기분조차 새뜻해지곤 했다.
‘펜(pen)’과의 첫 만남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연필과 작별했다. 도회의 중학생이 되어 우리가 선택한 첫 필기구는 펜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펜이 필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쯤이지만 그 시기의 펜은 길쭉한 나무나 플라스틱 펜대에 철제의 촉을 끼워서 쓰는 것이었다.
펜을 쓰게 되면서 아이들은 초등학교 교과서나 동화책에서 만났던 삽화 속 장발의 백인이 쓰고 있던 ‘깃털 펜’을 떠올렸으리라. 펜의 역사는 잉크가 발명되자 갈대의 줄기나 조류의 깃털을 이용하여 펜을 만들어 쓰면서 시작되었다. 펜(pen)의 어원이 ‘깃털’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Penna’라고 하니 얼추 맞아떨어지는 얘기다.
연필을 버리고 길쭉한 펜대를 비스듬히 기울여 펜글씨를 쓰면서 우리는 어린이에서 소년으로의 성장을 실감했을지도 모른다. 연필을 쓸 때 가끔 그것을 입에 넣어 심에다 침을 묻히는 대신 새내기 중학생들은 펜대에 꽂힌 펜촉을 연방 잉크병에 담가야 했다. 그런 수고는 한번 잉크를 묻히면 이삼 분 이상을 쓸 수 있는 ‘천자 펜촉’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교실의 비좁은 책상 위에다 잉크병을 올려놓고 쓰다 보니 갓 중학교에 들어온 선머슴아이들은 잉크병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잉크를 책과 공책에다 엎지르기도 하고 하얀 노타이 셔츠로 된 하복 상의 곳곳에 잉크를 묻혀서 다니곤 했다.
잉크를 쏟은 아이들은 집에 가 혼이 날까 봐 학교의 수돗가로 달려가곤 했지만 그게 쉽사리 지워질 리 만무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 학교 앞에 노점을 벌여놓는 아저씨들이 파는 화학약품이 그걸 깔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그 액체는 잉크 묻은 부위에 두어 번 바르는 것으로 얼룩을 깨끗이 지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갓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우리는 알파벳을 연습하는 습자 공책인 ‘펜마이십’(이게 정확히 ‘penmanship’이라는 걸 안 건 훨씬 뒤다.)은 물론 대부분의 공책 필기를 펜으로 했다. 당시에 볼펜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도 아이들이 주로 펜을 쓴 것은 펜에 대한 동경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잉크로는 같은 이름의 만년필을 생산하던 ‘파일로트(pilot)가 유명했다. 까다로운 잉크 관리는 뒤에 병 안에 스펀지를 넣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펜을 쓰는 게 꽤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된 급우들은 슬슬 볼펜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기억엔 여전히 볼펜보다는 펜이나 만년필을 쓰는 아이들이 더 많았지 않았나 싶다.
‘파일로트’와 ‘영웅’, 만년필의 세계
내가 만년필에 입문한 것은 중3 때부터였다. 내 첫 만년필은 까만 몸통에 금장의 장식이 박힌 파일로트 만년필이었던 것 같다. 요즘에 비길 수 없는 조악한 품질의 만년필은 조금만 안 쓰면 잉크가 말라 버리기 일쑤였고, 잉크가 잘 흐르지 않아서 더러는 뿌리듯 흔들어 주기도 해야 했다. 운수 사나우면 교복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둔 만년필에서 잉크가 새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그 무렵에는 ‘아피스(Apis)’ 상표의 제품도 있었는데 나는 그건 써 보지 못했다. 물 흐르듯 잘 써지는 만년필을 갖고 싶었지만 가난한 중학생에게 ‘파카(Parker)’와 같은 고급 만년필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중3 막바지에 산 중국산 ‘영웅’은 꽤 오래 썼던 것 같다.
파카 51의 짝퉁이었던 이 중국산 만년필은 대부분 밀수품(파카의 짝퉁, 중국산 수입품 같은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에서 확인한 사실이다. 당시 나는 막연하게 홍콩에서 만든 물건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이었는데 제법 세련된 디자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품질은 비교적 괜찮았다. 뚜껑에 한자로 ‘英雄’이라고 박힌 이 만년필을 두세 개쯤 갈면서 나는 공부 대신 습작에 골몰하던 고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 그리고 입대할 때까지의 몇 해 동안 내가 어떤 필기구를 썼는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분명한 것은 내가 볼펜 사용을 대단히 꺼렸다는 것이다. 나는 볼펜으로 글을 쓸 때 흘러나오는 잉크 찌꺼기를 혐오했기 때문이다.
기억은 현재와 가까울수록 퇴행한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의 기억은 앞뒤가 엉키거나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에 비기면 이 시기의 기억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특정한 기억들은 그랬던 것 같기도, 그러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군 복무 중에 만년필은 물론 없었다.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나는 볼펜을 몸에 붙였다. 먹지를 대고 사본을 만드는 방식의 문서작성에는 볼펜 따를 만한 게 없었다. 나중에 행정반에 미제 레밍턴 타자기가 보급되면서 문서작성은 타자기로 옮겨갔다. 2년 가까이 타자기를 몸에 붙이고 일하면서 나는 점점 손글씨와 멀어져 갔다. 타자에 익숙해져 버리면 간단한 메모조차도 타자로 쓰게 되는 법이다.
복학 이후에도 나는 만년필을 버리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만년필을 썼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졸업 후 교단에 나가서는 그 무렵 이미 대중화되어 있던 영국산 파카 만년필을 썼다. 그것은 당시 대구 시내의 백화점에서 1만 원정도로 살 수 있었던 보급형이었다.
붉은빛이 나는 갈색 몸통의 이 파카 만년필을 나는 꽤 오래 썼던 것 같다. 플라스틱 몸통에 끼운 스틸 뚜껑의 감촉이 근사했고 촉의 굵기도 적당했다. 이 무렵에는 잉크와 함께 간편한 카트리지 제품도 있어서 잉크를 보충하는 게 훨씬 편리해졌다.
대학 졸업반 때 나는 국산 클로버 타자기를 샀다. 그것은 내가 손글씨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른 급우들과는 달리 졸업논문도 타자로 작성해 제출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서게 된 교단에서도 출제 원안을 타자기로 작성했다.
두 번째 학교를 옮기면서 나는 전자타자기로 갈아탔다. 그리고 한 2년쯤 후에 나는 286 AT 기종으로 컴퓨터에 입문했고, 문서편집기로 작성한 문서를 프린터로 출력하게 되었다. 편지쓰기도 손으로 쓰다가 컴퓨터로 작성해 인쇄하고 끝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걸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이는 것만 재래식이었다.
세기가 바뀌면서 나는 만년필과 영영 작별했다. 한때 펜으로만 쓰던 생활기록부조차 컴퓨터로 작성하는 시대이니 손으로 쓰는 일은 칠판 판서나 간단한 메모에 그쳤다. 필기구의 진화는 눈부셔서 입맛대로 골라서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볼펜에 이어 등장한 ‘수성펜’은 만년필처럼 잉크가 흐르는 방식의 아주 편리한 필기구다. 값싼 데다가 360도로 쓸 수 있는 이 펜은 한 방향으로만 쓰는 만년필의 단점을 넘어 이 인스턴트 시대의 대표적 필기구가 되었다.
사유의 세계로 이끄는 만년필과 필기 문화
만년필로 상징되는 필기 문화는 문서편집기에서 작성해 전자우편으로 주고받는 이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에 비기면 케케묵은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처럼 보인다. 뚜껑을 여닫는 점이야 신식 필기구와 다를 바 없지만, 잉크가 떨어지면 보충해야 하고 펜촉의 방향을 거슬러 쓸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만년필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생각을 묵혀야 하고 그것을 문장으로 바꾸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칫 한번 잘못 써 내려간 글은 파지를 내거나 문장 전체를 지워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낱말 하나, 토씨 하나를 쓰는 데도 적잖은 궁리 끝에 한 획 한 획을 그어야 하는 이 손글씨 과정은 우리를 곰삭은 사유의 세계로 이끄는 길잡이인 것이다.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자판을 두드려 만드는 우리 시대의 글쓰기는 언제든지 ‘리셋(reset)’으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이 디지털 세상의 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글을 써도 좋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백스페이스(←)를 눌러서 한 자씩 지워갈 수 있고, 삭제(delete) 단추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작가 이상은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단편 <날개>)이라고 했지만, 만년필을 뽑아 들면 우리 머릿속에는 끼적여야 할 생각의 목록이 떠오르는 것이다. 한 자 한 자 눌러 쓰는 펜촉에서 흘러나오는 잉크는 우리 마음속을 적시는 사유의 잔잔한 물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일전에 앞자리의 후배 교사가 만년필을 쓰는 걸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다. 40대 초반의 젊은 친구인데 만년필을 쓰고 있는 게 반갑고 신기했다.
“어, 만년필이네. 몇 년 만에 만년필을 보는지 모르겠네…….”
“예, 그렇지요. 어쩐지 만년필을 쓰고 싶어서 장만했습니다.”
“값도 꽤 나가 보이는데요?”
“아닙니다. 10만 원 조금 넘는 겁니다. 한번 보시겠어요?”
그가 건네준 스테인리스스틸 만년필은 꽤 유명한 상표의 외국산 제품이었다. 손아귀에 척 감기는 철제 뚜껑의 감촉이 아련한 옛 기억들을 떠올려주었다. 나는 백지에다 낙서하듯 만년필을 써 보았다. 값비싼 유명 제품이어서만은 아닐 터이다. 그것은 이른바 만족스러운 ‘그립 감’으로 손에 감겨왔다.
그때, 처음으로 조만간 만년필을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요즘은 여러 종류의 유명 만년필을 구경하면서 인터넷 쇼핑몰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다. 바쁠 것도 서두를 일도 없다. 갖가지 만년필을 섭렵해 보면서 그중 마음에 드는 놈을 고르는 기쁨을 두고두고 누리고 있는 것이다.
2013. 1.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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