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빛과 소금, 천일염 이야기
소금은 ‘염화나트륨을 주성분으로 하는 짠맛의 조미료’다. 소금은 사람의 체액에 존재하며, 삼투압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하므로 사람이나 짐승에게 필요한 성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금은 너무 많이 섭취하면 여러 가지 심각한 질병을 일으켜 흔히 설탕 등과 함께 ‘백색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소금은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체액의 균형을 이루며, 소화를 돕는다. 소금은 또 해독과 살균작용으로 인체의 저항력을 높여주고 죽거나 파괴된 세포를 회복시켜 주는 역할을 통해 인간의 건강을 지켜왔다. 그러나 소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고혈압, 신장병, 심장병을 일으킬 수 있으니 소금은 양날을 가진 셈이라 하겠다.
뜬금없이 소금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하면서 처음으로 전라남도 신안군의 천일염을 사다 썼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소금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지난 8월의 <한겨레> 기사 “천일염, 식탁의 ‘빛과 소금’” 때문이었다. 이 ‘ESC 매거진’의 표지 이야기를 통해 나는 그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금에 관한 우리의 앎이 그리 신통찮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금이 암염, 천일염, 제재염, 정제염 등으로 나눈다는 건 기본이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천일염’은 말 그대로 ‘바닷물을 햇빛과 바람으로 증발시켜 만든 소금’이다. 같은 천일염이라도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따라 성분과 맛이 다르다.
전 세계 소금 생산량의 37%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멕시코 등 대규모 천일염 염전에서 만들어진다. 이 소금은 우리나라 갯벌 천일염과 달리 미네랄이 거의 없고 염화나트륨이 98~99%다. 그러나 신안 갯벌 천일염은 다량의 미네랄을 함유한 세계적인 품질의 프랑스 유기농 게랑드 소금과 비교될 수 있는 우수한 자원이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천일염 염전이라고 한다. 신안은 조수 간만의 차, 강한 태양, 적당한 바람 등 좋은 염전이 가져야 할 모든 조건을 가진 지역이다. 신안에서 우리나라 천일염의 70%를 생산하는 이유다. 나머지는 영광, 해남, 무안, 인천 등에서 생산된다.
<한겨레>에서는 ‘명품 소금’과 염전과의 직거래 방식 등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신의도의 한 판매업체를 이용했다. 나는 김장용 소금 30Kg과 꽃소금(재제염: 천일염을 물에 녹여 한 번 씻어낸 뒤 재결정을 만든 소금) 1kg을 주문해 택배로 받았다.
‘2년 묵은 저염도 갯벌 천일염’ 30kg에 3만5천 원, ‘요리용 고운 꽃소금’ 2kg에 3만 원이 들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3년 묵은 갯벌 천일염’은 3kg에 1만5천 원이다. 내가 산 것과 같은 양(30kg)을 사려면 꼼짝없이 15만 원을 지출해야 하니 아무래도 좀 무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쓴 돈은 인근 시장에서 사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을 듯하다.
하여간에, 아내는 그걸로 지난주에 김장을 했다. 김장 맛이야 손끝에서 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배추가 맛이 있어야 한다. 얄삭한 게 아주 단 맛이 나는 배추를 골라서다. 혀끝이 무딘 나로서는 긴가민가하였지만, 아내는 아무래도 좀 다르다고 말했다.
“국산 천일염이라고 했지만 아마 우리가 지금까지 먹은 김장 소금은 중국산일 가능성이 크겠죠?”
“아마. 그렇다고 봐야지.”
“지금까지는 김장해 놓고 얼마간은 쓴맛이 가시지를 않았지. 그런데 갓 담그고 먹어봐도 쓴맛이 없으니, 우리가 지금까지 먹은 거와는 다르긴 한 것 같아요.”
됐다. 그만하면 성공이다. 판매업체에 따르면 내가 산 소금은 ‘품질 중 최고로 치는 무더운 삼복더위에 생산된 것’이란다. ‘염전에서 손으로 직접 채취하여 2년간 간수를 뺀 다음 판매하는 것’이란다. ‘소금은 물로 이루어져서 아무리 오래 보관하여도 간수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으니 간수가 흘러나와도 이상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신안군 누리집에서 가져온 ‘신안 천일염의 우수성’은 아래 그림과 같다. 신안 천일염은 산성인 수입 소금과 달리 알칼리성에 가까운 소금으로 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건강 소금이라는 것이다. 또 천일염을 이용해 김치를 담그면 젖산 발효작용이 천천히 진행되어 오랫동안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김치 없는 식사를 상상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천일염은 필수 식품인 셈이다.
혈압에 저염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 내외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 원래 짠 음식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요즘은 싱겁게 먹으려고 애를 쓰긴 한다. 그러나 워낙 우리 음식이 국이나 김치, 된장, 간장 등 소금이 많이 든 편이니 그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소금은 상온에서 썩지 않는 매우 안정적인 물질이다. 부패를 막는 물질로써 소금은 그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교회에서 흔히 쓰는 관용구 ‘빛과 소금’은 그런 뜻의 좋은 예다. 적당해야 몸에 이롭고 지나치면 해가 되는 소금이 가진 ‘경계’의 뜻은 적지 않은 것이다.
<한겨레> 기사에서 기자는 “하루 8시간이 넘는 남도의 햇빛이 바닷물 속에서 소금을 끄집어낸다.”면서 “천일염은 ‘고체로 된 태양’ 혹은 ‘태양의 부스러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태양(빛)이 만들어내어 ‘태양의 조각’이 된 소금을 생각하며 김주대 시인이 블로그에 올린 시 <소금이 온다>를 천천히 읽어본다.
2009. 11. 29. 낮달
*10년 전에 쓴 글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집에서는 천일염을 쓴다. 올 김장도 천일염으로 했다. 신의도 대신 증도의 천일염을 쓰는 게 다를 뿐이다. 천일염에 관해선 황교익과 <서울방송(SBS)>이 그 유해성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유해한지 어떤지는 몰라도 우리는 천일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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