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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502

이발소와 종편 채널, 그리고 ‘박근혜’ 동네 이발소를 피해 먼 이발소를 이용하는 까닭 가까운 미용실을 이용하다가 아니다 싶어서 인근의 이발소를 다니게 되었을 때다. 60대 후반의 이발사는 과묵한 데다 이발 솜씨도 좋아서 한 1년쯤 거기서 머리를 깎았다. 어느 날부터 이발소에 주인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은 늘 종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관련 기사 : ‘이발소’로의 귀환] 종편과 이발소 머리를 깎는 시간이야 30여 분에 불과하지만, 앵커인지 선동꾼인지 모를 자칭 언론인들이 진행하는 억지와 왜곡, 고성과 비약으로 일관하는 뉴스를 듣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 어느 날 나는 그 가게에 발을 끊었다. 50대 초반의 얌전한 이발사가 드라마나 틀어놓는 학교 앞 이발소로 옮긴 것이다. 가끔 종편이 박근혜 정권을 떠받치는.. 2020. 4. 16.
진달래와 나무꾼, 그리고 세월…… 참꽃과 진달래, 돌아보는 세월 온산에 진달래가 한창이다. 산등성이마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진달래는 그예 도심까지 들어왔다. 강변에 조성된 소공원마다 선홍빛 진달래가 넉넉하다. 이제 막 꽃잎이 지고 있는 은빛 왕벚나무 물결 끄트머리에 불타는 선홍빛은 외로워 보인다. 내게 ‘진달래’는 여전히 ‘참꽃’이다. 봄이면 온산을 헤매며 탄피와 쇠붙이 따위를 주우러 다니던 시절, 만만찮은 봄 햇볕에 그을려 가며 허기를 달래려 보이는 족족 입에 따 넣던 꽃. 산에서 내려올 즈음엔 조무래기들의 혓바닥은 꽃잎보다 더 진한 보랏빛이었다. 참꽃, 그 아련한 동화 참꽃은 내게 아련한 동화(童話)다. 시골서 자란 이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것은 머물러 버린 유년의 길목을 아련하게 수놓는 추억의 꽃이다. 무덤들 주위에 다소곳이 피어나던.. 2020. 4. 15.
[사진]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 불법사드 원천무효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 [사진] 사드 말고 꽃! 꽃길 따라 평화 오소서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3·18 소성리 범국민 대회’(3월 18일)에 이어 어제(4월 8일)는 ‘불법사드 원천무효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이 소성리 일대에서 베풀어졌다. 1차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는 후배와 함께 소성리를 찾았다. 국방부가 사드 일부분의 한반도 전개를 발표한 이후 지역 주민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사드 발사대 2기가 들어와 칠곡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보관 중이고 사격통제 레이더도 들어왔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사드 배치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어 버린 거 아니냐고 말했고 후배는 미국이 .. 2020. 4. 15.
‘이발소’로의 귀환 다시 이발소로 찾다 어제 이발을 했다. 여느 때처럼 동네 미용실에서가 아니다. 동네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도서관 앞 골목에 있는 이발소에서다. 거기 그런 이발소가 있는 줄 몰랐었다. 꽤 반듯한 슬래브 건물에 간판도 얌전하게 달렸다. ‘○○이용소’. 마치 잊고 있었던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줄지은 다섯 개의 빈 의자 저편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인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들릴 듯 말 듯 인사를 했다. 과묵해 뵈는 인상의 60대 이발사였다. 의자에 앉자 그는 익숙하게 내 목에 수건을 감고 보자기를 씌웠다. “오래……, 하셨습니까?” “예.” “손님이 많은가요?” “뭐, 그럭저럭.” ‘이발소’로의 귀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역시 이 양반은 말수가 적다. 나이가 나이니 별로 친절하.. 2020. 4. 13.
1994년에 연 국립대구박물관, 20년이 지나서 처음 들렀다 [달구벌 나들이] ③ 대구박물관(1) 첫 만남과 상설 전시 ① 국립대구박물관, 첫 만남 지난 3월 24일 국립대구박물관을 찾았다. ‘마침내 찾은 유적 고대마을 시지(時至)’전이 열리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서였다. 기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가서 거기서 박물관까지는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에 익숙지 않았지만 내려받은 대구 시내버스 어플로 차편을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대구박물관은 처음이다. 이 박물관은 1994년에 개관했다. 서른아홉, 내가 복직하던 해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나는 이 박물관을 찾은 것이다. 특별전을 알리는 신문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여기를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학교 때 유학 와서 대학까지 여기서 다녔으니 대구는 익숙한 도시다. 그러나 초임 발령을 받아 경북 동.. 2020. 4. 11.
‘인혁당’ 묘역에서 ‘통일’을 다시 생각한다 통일운동가 동암 도혁택(1932~2011) 선생의 1 주기 추모제 세상엔 숱한 운동이 존재한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눈부시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운동의 목록들을 생각해 보라.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노동운동과 교육운동……. 우리 현대사는 그러한 운동이 빚어낸 승리와 패배,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목록 속에서 ‘통일운동’을 찾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여러 운동의 눈부신 성과와 전망 속에 그것은 그 변방에 외롭게 고단한 몸을 가누고 있다. 이 나라 민주주의와 분단 모순을 포괄하는 가장 크고 넓은 담론을 바탕으로 한 통일운동은 그러나 운동의 주류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통일운동은 우리의 일상과는 너무 멀리 떨어.. 2020. 4. 9.
‘버들피리(호드기)’의 계절 아이들 다 컸지만, 추억으로 만들어본 ‘버들피리’ 봄은 물가에 먼저 온다. 마지막 살얼음 아래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냇물, 갯가에 핀 버들개지에 머무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 물가에서부터 파릇파릇 살아나는 풀잎들……. 당연히 시내 곁에 선 갯버들의 미끈한 줄기에도 물이 오른다. 그 물오른 갯버들 가지를 꺾어 만드는 게 버들피리다. 버들피리를 ‘호드기’라고 부르는 지방이 많은 듯한데, 우리 고향을 포함한 경상북도 남부지방에선 이를 ‘날라리’라고 불렀다.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고루 비틀어 뽑은 껍질로 만든 피리다. 어릴 적, 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냇가에선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산에서는 참꽃을 따서 먹으며 놀았다. 들과 산이 모두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던 시절이다. 버들피리 .. 2020. 4. 9.
“이 죽음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희생에 부쳐 스물세 살의 여성 노동자가 죽었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 씨다. 그이는 2004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품질 검사 그룹 검사과 1라인에서 일했다. 엑스선 기계를 이용한 특성검사와 화학약품을 이용한 실험검사가 그이가 맡은 업무였다. 그이는 지난 3월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 55분에 숨졌다. 그의 죽음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스물셋 여성 노동자 박지연 씨 박지연 씨가 죽었다. 입사한 지 32개월째인 2007년 8월, 그이는 호흡곤란, 어지럼증, 구토, 하혈 등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결과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그녀는 4회에 걸친 항암치료에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2009년 9월, 백혈병 재발로.. 2020. 4. 7.
‘메이데이’ 120돌, 그리고 2010 한국 ‘메이데이’ 120돌 맞은 2010년의 한국 내일은 노동절, 120번째 맞게 되는 메이데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이날을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은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무싯날과 다르지 않게 이날도 근무하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2009) 10.5%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9위다. 전체 노동자 10명 중 9명은 미조직 노동자란 뜻이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12.5%에 그쳐 꼴찌다. 스웨덴과 핀란드(92.5%), 덴마크(82.5%)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21세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노조조직률이 높아지면 경제 부담이 커진다는 건 오해’라며 높은 조직률은 ‘오히려 산업계에 큰 자산’이라고 보는 북유럽 .. 2020. 3. 29.
쿠바 의료진이 ‘코로나19’ 위기 맞은 이탈리아로 향한 이유 쿠바 혁명의 자부심, 국제 의료 연대로 꽃필까 코로나19가 유럽을 가히 초토화 직전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의료 강국’으로 불리는 쿠바가, 의료체계의 붕괴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탈리아와 중남미 5개국에 의료진을 파견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2300달러에 불과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G7의 일원인, GDP 3만 8100달러의 이탈리아(이상 미국 중앙정보국 월드 팩트북) 지원에 나선 것이다. 쿠바 의료진, GDP 3배 많은 이탈리아 지원 코로나19 청정지역도 아닌 쿠바(확진자 35명, 사망 1명)가 더 힘든 나라를 향해 지원에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진정한 국제 연대”(영국 )라거나 “인류에 대한 엄청난 가치의 봉사”(뉴스통신사 ) 라는 찬사가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2.. 2020. 3. 25.
조갑제는 사형 집행 현장을 보았을까? 사형제 부활 이슈 …‘사형수’ 책 쓴 조갑제의 변심(?) 민간 파시즘과 용산 참사, 그리고 연쇄살인 사건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위협받는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군사독재가 물러난 지 20년 만에 민간 파시즘의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의 지적이다. ‘민간 파시즘’이란 낱말이 주는 느낌은 불길하면서도 끔찍하다. 파시즘이야 귀에 익은 개념이지만, 거기 ‘민간’이라는 말이 양념으로 붙은 것은 이 정권이 직선제 선거로 선출된 합법 정권이기 때문이다. 2009년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사전에서 들고 있는 파시즘 출현의 배경과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는 문외한으로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 1년이 지난 우리 사회의 모습이.. 2020. 3. 25.
‘유예된 봄’과 진달래 화전 봄은 미루어지는 ‘남북의 봄’과 진달래화전 어제 사진기를 챙겨서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산에 가냐고 물었다. 가거든 진달래 꽃잎 한 줌만 따오라, 화전(花煎)을 부칠까 싶다고 주문했다. 나는 진달래 불길이 타오르는 산등성이를 돌아 나오며 진달래 꽃잎을 꼭 ‘한 줌’만 따서 돌아왔다. 진달래 화전을 먹으며 하는 평양소주 생각 아내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지, 이내 찹쌀가루로 기름에 지져서 화전을 부쳐냈다. 전(煎) 자가 붙었지만, 화전은 일반 부침개와는 달리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떡’이다. 다른 말로 ‘꽃지지미’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처음인가 했더니 아내가 이번에 꽃술을 떼어냈다고 해, 꽃술조차 떼어내지 않고 화전을 부친 기억이 떠올랐다. 화전은 지금은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고려 시대부터 전승.. 2020.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