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다 컸지만, 추억으로 만들어본 ‘버들피리’
봄은 물가에 먼저 온다. 마지막 살얼음 아래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냇물, 갯가에 핀 버들개지에 머무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 물가에서부터 파릇파릇 살아나는 풀잎들……. 당연히 시내 곁에 선 갯버들의 미끈한 줄기에도 물이 오른다.
그 물오른 갯버들 가지를 꺾어 만드는 게 버들피리다. 버들피리를 ‘호드기’라고 부르는 지방이 많은 듯한데, 우리 고향을 포함한 경상북도 남부지방에선 이를 ‘날라리’라고 불렀다.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고루 비틀어 뽑은 껍질로 만든 피리다.
어릴 적, 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냇가에선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산에서는 참꽃을 따서 먹으며 놀았다. 들과 산이 모두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던 시절이다. 버들피리 만드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주머니칼을 챙겨 들고 냇가로 나갔고, 만만해 보이는 갯버들 가지에 달려들었다.
문구용 칼이 일반화되기 전의 일이다. 손바닥 안에 마춤하게 드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접어서 칼집에 넣는 주머니칼을 우리는 ‘작지칼’이라 불렀다. 그리 썩 잘 들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모두가 그 주머니칼을 가지고 싶어 했다. 또래들 가운데 누군가 ‘작지칼’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부러움이 대상이 되곤 했을 정도였다.
먼저 물이 잘 오른,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가지를 골라 자른다. 양쪽 가장자리의 껍질을 얼마간 벗겨낸다. 물이 올라 촉촉해진 껍질 안쪽의 미끄러운 면을 이용하여 껍질과 가지를 분리하여, 껍질만을 가지 끝 쪽으로 뽑아내면 둥그런 관(管) 형태의 악기가 된다.
그 한쪽 끝을 칼로 긁어내어 혀[설(舌)]를 만들어 입술에 물고 불면 소리가 나는 것이다. 혀를 만든 다음 마지막 차례는 항상 입이 닿는 부분을 가볍게 물고 이로 자근자근 깨물어 준 뒤, 고인 침을 뱉는 순서다. 그렇게 해야 소리가 매끄럽게 잘 난다고 우리는 믿었기 때문이다.
글쎄, 나는 버들피리에 곡조를 붙여서 부는 법은 모른다. 바람을 불어넣어 일정한 소리를 내는 게 고작이다. 백과사전에서는 ‘양손을 입에 대고 그것을 움직여 음의 높이나 강약을 조절한다.’고 되어 있지만, 나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마땅히 악기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피리니, 그걸 만드는 게 대수는 아니다. 우리는 아마 한창 물오른 봄의 무료를 죽이는 일로 냇가로 몰려갔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것은 꽤 정교한 공작에 속하는 일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인근 냇가로 나갔다. 물은 충분히 올랐던 듯싶다. 굵지 않은 가지 몇을 잘랐다. 예전처럼 수월하게 말을 들을 건지 나는 자못 궁금했다. 우선 가지의 가는 쪽을 잘라서 끝부분의 껍질을 벗겨냈다. 그리고 차례로 굵은 가지 쪽으로 올라가며 양손으로 가지를 비틀어 껍질과 몸통이 분리되도록 알맞은 힘을 가했다.
이를 우리는 ‘가지 튼다’고 말했다. 가지는 적당히 물이 올라서 얼마간 힘을 주면 껍질과 몸통이 분리된다. 제대로 틀리면 손끝에서 껍질이 따로 노는 느낌이 시나브로 전해진다. 제대로 틀리지 않으면 껍질이 터지거나 운다. 다음은 틀린 부분의 끝에다 칼금을 준다. 그리고 가는 가지 쪽으로 잡아당기면 껍질만 시원하게 빠진다. 한쪽 끝을 칼로 훑어서 혀를 만들어 부는 일만 남는다.
햇볕이 뜨거워서 집에 돌아와서 피리를 불어 보았다.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반, 예전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이상한 안도감이 반이었다. 언제 다시 버들피리를 만들게 될까. 우리 아이들이 새로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으면 그 애들을 위해서 나는 이놈을 다시 만들 수 있으리라.
멍텅구리처럼 일정한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버들피리를 불면서 나는 우리가 지났던 유년의 시간과 그 이후 내가 맞아야 할 또 다른 세월을 생각해 본다.
2009. 4.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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