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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는 사형 집행 현장을 보았을까?

by 낮달2018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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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부활 이슈 …‘사형수’ 책 쓴 조갑제의 변심(?)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의 한 장면

민간 파시즘과 용산 참사, 그리고 연쇄살인 사건

 

“지금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위협받는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군사독재가 물러난 지 20년 만에 민간 파시즘의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임시국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의 지적이다. ‘민간 파시즘’이란 낱말이 주는 느낌은 불길하면서도 끔찍하다. 파시즘이야 귀에 익은 개념이지만, 거기 ‘민간’이라는 말이 양념으로 붙은 것은 이 정권이 직선제 선거로 선출된 합법 정권이기 때문이다.

 

2009년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사전에서 들고 있는 파시즘 출현의 배경과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는 문외한으로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 1년이 지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계속 진행되어 온 공안정국은 지난달 용산참사로 그 정점을 이룬 느낌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철거민들의 저항을 경찰특공대를 투입 진압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이 참사 앞에서 정권은 ‘도시 테러’를 운운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사건 발생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연쇄살인범이 체포되고 국민의 관심은 급격하게 이 끔찍한 살인범에게로 옮겨졌다. 그런 과정에서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속도로 일었고, 동시에 ‘사형제의 부활’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했다.

 

연쇄살인 사건이 소환한 ‘사형제의 부활’

▲ 지난 10년간 한 건의 사형 집행도 없었던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가로 간주된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모르긴 몰라도 나는 이런 논의가 여론의 지지를 얻으며 급속하게 진행되는 과정이 앞서 언급된 ‘파시즘’이란 현상과 일정한 연관을 갖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굴 공개든 사형제든 이 논의의 핵심이 ‘인권’ 문제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논의의 저변에 깔린 것은 흉악범에 대한 증오와 분노뿐이다.

 

연쇄살인범의 체포라는 계기를 통해서 사형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터진 이 사건은 일종의 사회적 분노가 여론으로 전화하는 과정에서 이성적 논의를 봉쇄해 버린 느낌마저 있다. 지난 10년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국제적으로 ‘사형폐지 국가’로 알려진 상황에서 철 지난 ‘사형제도’ 논란이 증폭된 것이다.

 

사형제 부활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는 걸 보면서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것은 극우 논객 조갑제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것이었다. 극우적 세계관으로 일관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언행을 일삼는 이 극우 논객에게 무언가 자비로운 생각을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조갑제는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1986, 한길사)의 저자로서다. ‘기자 조갑제의 현대사 추적 ①’이란 시리즈물인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를 처음 알았고, 처음으로 ‘사형제도’란 주제에 관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갑제는 극우 논객으로 개혁·진보 진영으로부터 거의 ‘광인’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한때는 ‘열정과 집요함을 갖춘 기자 정신의 전형’으로 기려지기도 했었다. 기억은 아련한데, 그는 심층 취재라는 측면에서 이 나라의 ‘3대 기자’ 중 한 사람이라고도 불린 모양이다.

 

어쨌든 나는 그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이후에도 박정희 시해 사건을 다룬 <유고(有故)>라는 책을 읽기도 했다. 나는 몇 해 전에 내 서가에서 그의 책을 골라 찢어서 폐지함에 버렸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를 서가에서 뽑으면서 나는 잠깐 망설였던 것 같다. 책의 울림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극우 논객 조갑제가 쓴 사형제 르포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연녀의 남편과 두 아들을 죽인 혐의로 처형된 살인범이다. 그러나 오휘웅은 재판 과정 내내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고, 사형이 집행되면서도 결백을 주장하고 누명을 벗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조갑제 기자는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3년 동안 사건의 진상을 캤다. 그는 오휘웅의 무죄를 확신하고 예의 책을 썼다. 진실이야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지만, 그 진실에 접근해 가는 한 사건 기자의 집요한 천착에 나는 매료되었던 것 같다.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사형제도의 두 측면을 이렇게 말한다.

 

“끔찍한 살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존치론자가 되며, 처연한 사형집행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폐지론자가 된다.”

“사형수는 판결을 받는 순간, 일반인들과 철저히 격리되며, 그 집행 또한 구치소 안에서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지게 된다. 바로 이러한 ‘밀실 집행’이 사형제 존치의 강력한 이유가 된다…….”

 

책에서 그는 사형제도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판’의 실례를 제시하면서 그것이 합법적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수의 ‘억울한 죽음’이 증명된 적이 없지 않냐고 반문하는 이에게 조갑제는 그렇게 되받고 있다.

 

“사형수 자체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이다. 따라서 사형을 집행하여 그를 죽이는 것은 가장 ‘완벽한 증거인멸’일 수밖에 없다…….”

▲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1986, 한길사)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를 사회로부터 영구히 제거하는 형벌’로 정의되는 ‘사형은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형벌이다. 고대와 중세 때엔 주된 형벌이었던 사형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 발전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의 현행 형법 41조에서는 형벌로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다.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는 내란죄, 살인죄 등 16종이 있고, 특별 형법에서도 수백 개의 항목에서 사형을 규정하고 있으니 뜻밖에 사형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은 교도소 내에서 교수(絞首)하여 집행하며(형법 66조) 법무부 장관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집행의 명령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근대 사법제도 실시 후 이 땅에서의 첫 사형선고는 1895년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내린 교수형 선고라고 한다.

 

10년간 사형집행 없는 한국,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간주

 

세계적으로 보면 75개국이 모든 범죄에 대해, 14개국은 전시를 제외한 모든 일반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하였고, 20개국은 과거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 1998년 이후 10년 동안 한 건의 사형집행도 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제 폐지한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이들의 논거는 ‘강력한 범죄 억제 효과’인데, 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비교적 부실한 편이다. 사형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사법제도를 ‘복수의 도구’를 전락시키는 문제를 초래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 오판의 가능성이 있는 한 사형제는 돌이킬 수 없는 제도적 살인이 된다는 점도 사형제의 함정이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1997년부터 5년마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모든 국가에 궁극적으로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영구적으로 사형의 집행을 유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형제가 독재정권이 정적을 처리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온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자유당 정권 때의 진보당수 조봉암, 박정희 정권 때의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 등은 바로 그러한 사법 살인의 희생자들이다.

 

한때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이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연쇄살인 사건으로 사형제 부활 논의가 떠오른 것은 여론을 얻지 못하면 사형제 폐지로 가는 길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 영화 <데드 맨 워킹>(1995) 의 한 장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에서 조갑제는 자신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며 이 책을 썼다기보다 오판을 줄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제가 가진 여러 문제를 성찰했지만, 최종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폐지를 주장하지 않았으나 사형제의 폐해를 고발한 조갑제의 ‘좌파 정부 책임론’

 

예의 책을 쓴 이후 20년, 조갑제는 사형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조갑제 닷컴에서 확인한 결과 그는 이번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좌파 정권에서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좌파 정부 책임론은 살아 있다. 3년에 걸쳐 한 무고한 사형수의 진실을 캤던 기자 조갑제는 거기 없다.

 

“‘이렇게 죽여도 사형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양심의 브레이크를 해제하여 범인들의 살인 질주를 가속시킨 것이 아닐까?

형법개정으로 사형이 폐지되지 않았는데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법무장관들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것은 법 집행자가 사적 감정이나 견해로써 법을 무력화시킨 경우이다. 사형을 폐지하라는 국민적 동의가 없었다.

위의 통계에 따르면 법의 사유화로 국민이 피해를 당한 셈이다. 사형폐지로 한 해에 100명 이상의 살인사건이 더 났다면 지난 10년간 1000명 이상의 생명이 더 희생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무참하게 죽어간 1000의 인명은 사형집행이 인권 신장이라고 자랑하는 자들의 위선 때문에 국민이 떠안은 희생일 것이다.”

“1997년 이후의 대통령과 법무장관들은 가령 자신들의 아들, 아내, 부모를 살해한 범인에 대한 사형집행까지 반대할 수 있을까? 저들은 비참한 살인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을까?”
     - <조갑제 닷컴>에서

 

사형제에 대한 찬반 여론은 조사 시점의 사건·사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사형제 찬성 여론이 높아진 것이나, 사형제를 다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상영 이후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은 그 좋은 보기다.

 

사형제의 찬반을 떠나서 나는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성찰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우려한다. 냄비 여론이라고 그것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어쩌면 그런 대증요법 형식의 대응이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가진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믿어서다.

 

전 정권의 정책 실패로 연쇄살인이 일어났다고 규정하는 극우 논객 조갑제의 의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20년도 전에 한 사형수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오판의 가능성, 사형제의 불합리성에 대한 만만찮은 실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그는 전임 정권에 대해 ‘저들은 비참한 살인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나는 그가 20년 전의 저작에서 언급한 내용을 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싶다. 그의 주장이 옳다면 그 반대의 주장도 여전히 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입회 교도관 모두가 회피하고, ‘미치광이 짓’이라고 규정하는 사형집행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을까?”

 

 

2009. 2. 7. 낮달


파시즘 [fascism]

▲  히틀러와 무솔리니

요약

1919년 이탈리아 B.무솔리니가 주장·조직한 국수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반공적인 정치적 주의 ·운동.

 

파시즘이란 이탈리아어인 파쇼(fascio)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이 말은 묶음[束]이라는 뜻이었으나, 결속 ·단결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다. 파시즘이 대두하게 되는 일반적이고도 보다 광범위한 배경은 18세기 말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 불안과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만성적 공황 및 전승국 ·패전국을 막론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에서 초래된 각종의 혁명적 기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근대사회의 위기적 양상은 모두 파시즘의 배경이 된다.

 

즉, 파시즘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은 ① 국제적 대립과 전쟁 위기의 격화 ② 대량적 실업과 공황 ③ 국내정치의 불안정 ④ 기존 정당·의회 및 정부의 부패·무능·비능률 등 병리현상의 만연 ⑤ 각종 사회조직의 강화에서 오는 자율적인 균형 회복능력의 상실 ⑥ 정치적 ·사회적 집단 간의 충돌 격화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위기 요인의 격화에 의해 정치체제의 안정과 균형이 파괴되고, 게다가 기존 정치세력이 사태를 효과적으로 수습할 능력을 상실할 경우, 무정부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하여 파시즘이 등장한다.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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