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2월, 그리고 작별

by 낮달2018 2019. 4. 3.
728x90

2월, 그리고 작별의 시간… 

▲ 아침부터 흩날리던 눈발은 이내 사위를 하얗게 물들였다. 아이들에게 눈 내리는 날의 종업식으로 기억될까.
▲ 교실 베란다에 나와 눈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눈발이 흩날렸다. 눈송이가 제법 푸짐하다 싶었지만 잠깐 내리다 그칠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눈발은 그치지 않고 이내 사방을 하얗게 물들였다. 2010학년도의 마지막 날이다. 게다가 눈까지 오니 아이들도 좀 들떠 있는 듯했다.

 

간밤에 좀 일찍 자리에 들었더니 새벽 3시께에 잠에서 깨어 새로 잠들지 못했다. 건넌방에 가서 어제치 신문을 뒤적거렸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간신히 새 잠이 들었는데, 꿈자리가 어지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어디 수학여행을 갔는가 보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3층쯤 되는 숙소가 폭삭 무너져 내렸다. 주변의 땅도 마구 꺼지기 시작하고……. 깨어나니 얼마나 황당한지.

 

게으른 담임을 잘도 따랐던 살가운 아이들

 

아침에 넥타이를 매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이들과 만나는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늘 옷을 갖춰 입었는데 오늘은 생략하기로 했다. 형식만은 아니겠지만 구태여 거기 얽매일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머릿속이 텅 빈 듯한 느낌이었을 뿐, 아쉽다거나 쓸쓸하지는 않았다.

   

▲ 아이들에게 준 편지

미진한 생활기록부 정리를 하느라고 꽤 시간을 지체했다. 방송 종업식을 마치고 난 뒤, 아이들은 마지막 청소를 하고 사물함을 비웠다. 나는 아이들에게 줄 편지꾸러미를 들고 교실에 들어갔다. 나는 한지에 인쇄한 편지를 봉투 대신 제주도에서 얻어온 김영갑 작가의 사진엽서 포장에다 담았다.

 

담임을 맡은 아이들에게 헤어지면서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다. 몸이 마음을 따르지 못하고 하는 일마다 느는 건 게으름이고, 일상의 절차조차도 성가시게 여겨진 한 해였다. 그렇게 슬슬 늘어지고 있는 내가 요구하는 대로 살갑게 잘 따라와 준 아이들이었다.

 

어린가 싶으면 어른스럽고, 의젓해 보이는가 싶다가도 아이들의 천진함을 잃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다정다감한 아이들은 내가 아무리 편하게 해 주어도 저희가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았다. 영리해서가 아니라 천진하고 점잖아서 그런 거였다. 3월에 첫 만남 때부터 내게 준 신뢰를 2월 헤어지는 날까지 거두지 않은 신실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고도 차일피일했다. 잠깐만 시간을 내면 될 일이라고 여겼지만 정작 이 편지를 쓰는 데는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렸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편하게 쓰면 되는데 번번이 쓰다가 지우고 새로 시작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편지 쓰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랬다. 무어 대단한 내용을 담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컴퓨터에 갈무리되어 있는 10여 년 전에 아이들에게 썼던 편지를 불러내 읽어보았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매끄러운 글이었다. 그러나 거기엔 풋풋한 열정과 함께 그 시절의 치기 만만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나는 그런 치기와 객기를 배제한 글을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가능하면 나는 굳이 지난 한 해 동안의 시간과 내 역할을 규정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다. 아마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냥 우리는 좋았지 않니? 그러면 됐다.”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내 희망은 결국 희망으로 그쳤다.

▲ 아이들이 내게 준 편지들. 아이들의 소박한 인사가 담겼다.
▲ 종례를 마치고 교실에서 우리는 동료 교사른 청해 단체 사진을 찍었다. 학년말이라 교실이 어지럽다.

짜내고 밀어내다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에야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 어떻게 쓰든 그건 내 몫일 뿐이다. 구구절절 미사여구로 감은들 거기 담긴 거짓과 과장이 감추어지진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끙끙댄 시간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퇴고를 마치고 편지를 인쇄해서 고인이 된 김영갑 작가의 사진엽서 포장에다 넣었다.

 

아이들에게 그런 경위를 뭉뚱그려서 이야기하고 아이들에게 하나씩 편지를 나누어주었다. 반장을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내게 조그만 봉투에 든 편지를 내밀었다. 고맙다고 치하하고 나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마 새 학년도에도 1학년을 담당하지 싶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2학년 인문반 두 개 반 수업을 지원해야 하는데 혹 나와 인연이 남은 사람이라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교내에서 만나면 반가이 인사하자고 부탁하고 나는 종례를 끝냈다.

 

자유롭고 즐겁다고 느끼는 삶을 살길

 

교탁 주변의 책상을 물리고 동료 교사를 불러 단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은 렌즈를 향하여 티 없이 활짝 웃었다. 사진은 인화하여 3월에 아이들에게 나누어줄까 한다. 교무실에 돌아와 아이들이 쓴 편지를 읽었다. 동료 교사가 올 담임은 선생님이 제일 잘하신 것 같네요한다. 나는 그냥 웃어주었다.

 

아이들은 편지에서 나와의 첫 만남을 추억하고, 저희를 잘 보살펴 주어 고맙다고 치하했다. 기말시험을 마치고 영화 <울지 마, 톤즈>를 보러 간 기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아서 죄송스러웠다고도 말했다. 중학교 이후 처음으로 남자 담임을 만났다는 아이는 내가 시작부터 특별했다고 고백하면서 특별한 인사를 남겼다.

 

앞으로 자유롭고 선생님이 즐겁다고 느끼는 삶 살길 원해요!

 

아이는 아마 내 소망을 눈치챘던 모양이다. 내년에는 이 고장을 떠나고, 그리고 교단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 걸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생활기록부를 마감한 뒤,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했다. 운동장에는 눈이 꽤 쌓였지만, 한길로 나오자 눈은 내리는 족족 녹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 소풍, 체육대회, 합창제...지난 한 해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에 저장된 지난 일 년을 불러냈다. 4월의 소풍, 5월의 체육대회, 8월의 야영, 연말 축제 때의 합창대회, 체력검사 따위의 사진 속에 고인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오늘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새내기 아이들과 함께 오는 봄

 

오늘은 내 친구가 학교를 떠나는 날이다. 벗 가운데 가장 먼저 서둘러 퇴직하는 것이다. 전화를 걸었더니 송별회 겸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고 했다. 섭섭하지 않으냐니까 아직 모르겠다, 3월쯤 되면 상실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그는 웃었다. 그가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 나는 시간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두 주 남짓한 봄방학은 재충전을 위한 시간으로 써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야겠다. 다음 주에는 바다 밖 나들이 대신 우리 친구들 ‘2() 1()’은 변산반도로 여행을 떠난다.

 

봄이 멀지 않다. 3월에 새로 만날 아이들과 함께 올 봄을 기다리는 일은 어쨌든 설레는 일이다.

 

 

 

2011. 2. 11. 낮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