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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끊임없이 흘러 큰 바다를 만나라 - ‘옥련(玉蓮)’의 딸들에게

by 낮달2018 2019.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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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련의 딸들에게 남기는 글

▲ 2010년 봄 소풍, 문경새재에서 당시 우리 반과 이웃 반 아이들.

여러분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안동을 떠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이 2011학년도 종업식을 치르고 있을 때 나는 짐을 꾸리느라 바빴습니다. 여느 학교처럼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여서 하는 종업식이라면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었겠지만, 방송으로 진행하는 종업식은 본부 교무실에는 중계되지도 않았습니다.

 

전보 인사명령이 나기도 전에 학년도가 끝나니 떠나게 될 교사들은 이임 인사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공식적인 인사도 하지 못하고 교사들은 다음 임지로 가는 것이지요. 아마 여러분들은 새 학년도 시업식 날 이임 교사들의 전보 상황을 전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일찌감치 여러분에게 일러준 대로 구미 지역으로 옮겨 왔습니다. 구미는 비교적 큰 도시여서 국어교사 한 사람의 자리는 넉넉히 내어 주리라 여기고 18년 동안 살았던 경북 북부지역을 떠났습니다. 태어난 고장보다 더 오래 살았던 지역을 떠나는데 감회가 없을 수 없지요.

 

동료들과 지역의 선후배들에겐 따로 작별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 바로 가기) 그러나 정작 여러분에게는 개학 후 국어 수업이 든 몇 반에서 건넨 약식의 인사가 고작이었지요. 앞의 고별사를 쓰고 난 뒤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작 인사를 나누어야 할 이는 여러분들이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여러분과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

 

삶에서 우리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겪습니다. 굳이 ‘회자정리’를 불러올 일도 없습니다. 숱한 봉별(逢別)의 과정이 곧 우리네 삶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별은 익숙한 삶의 장면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작별을 무심히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학년 말에 몇몇 학생들이 새 학년에서도 내게 배우기를 원한다고 하면 나는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새 학년이 되면 새 교사에게 다른 방식으로 배우는 게 좋아. 무어 그리 대단한 수업이라고 2년씩이나 같은 교사에게 배워? 헤어짐과 만남도 아주 좋은 공부 가운데 하나거든.”이라고 말이지요.

 

이 작별은 여러분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해마다 되풀이해 온 그런 헤어짐의 하나일 뿐입니다. 모든 봉별은 만나서 반갑고, 헤어져서 서운한 일상으로 받아들일 일인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여러분들은 성장해 가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지난 5년 동안 여러분을 가르치면서 아주 행복했다는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겠습니다. 학년에 한 학급뿐이어서 ‘한 시간 수업’으로 끝나는 시골 학교에서의 갈증을 일거에 날리는 ‘일곱 반 수업’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아주 편하게 여러분들에게 문학과 작문, 그리고 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의 학력 수준은 지역에서 상위권이어서 나는 별다른 배려 없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도 되었습니다. 내 수업을 아주 잘 따라와 주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전달할까보다는 수업의 내용을 더 심화하는 데 신경을 써야 했지요. 그러면서 뒤늦게 공부도 꽤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가르치면서 수업 태도가 나쁘거나 분위기가 산만한 경우를 거의 겪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놀랄 만한 집중력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들쑥날쑥한 내 강의를 아주 효율적으로 받아 적었지요. 어쩌면 그렇게 마치 3도 인쇄하듯 흑, 적, 청색의 펜을 조화롭게 사용하는지!

 

수업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 야간 자율학습 때에 보여주는 남다른 자제력, 어떤 경우에도 주어진 상황을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모습들은 여러분들의 덕성이었습니다. 이른바 ‘범생’이었던 여러분들은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고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온순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학생들이었지요.

▲ 짐을 정리하면서 아이들의 편지 등을 스크랩북에다 담았다. 지난 10여 년간의 교감의 기록인 셈이다.

거기에 여학생 특유의 발랄함과 기상천외의 상상력으로 교사들을 즐겁게 해 주었고, 교사들에게는 남다른 친화력으로 다가왔지요. 여러분들은 남학교에서는 맛볼 수 없는 ‘교직 생활의 잔재미’를 교사들에게 흠뻑 제공해 주었습니다.

 

특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줄 아는 성숙하고 너그러운 태도, 약속이나 한 듯 교사에 대한 태도를 갈무리하는 어른스러움, 현실적 조건을 고려한 유연한 상황 판단 능력도 여러분들이 지닌 흔치 않은 덕성이었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에게는 여러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지난해 정년으로 학교를 떠난 한 선배 교사의 말씀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 착하고 아름다운 제복의 모습 뒤편에는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이 숨어 있지…….”

 

그걸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요. 교사들은 아이들이 감추고 있는 이면에서 여러분들이 저도 몰래 빠져 있는 이기심과 편협한 태도 따위를 찾아냈습니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명제에 나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은연중에 보여준 그것은 그런 일상적 차원보다 훨씬 깊은 무엇이었지요.

 

여러분들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학력을 가진, 지켜야 할 게 많은 계층이었지요. 또래 가운데서 여러분은 말하자면 ‘기득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확보한 지위와 권한을 다른 경쟁자로부터 온전히 지켜내야 하는. 그래서일 겁니다. 여러분이 현행의 우리 사회의 생존방식을 아무 이의 없이 추인하고 마는 것은.

 

자기 안의 ‘이기’와 싸우라, ‘공감’의 능력을 배우라

 

본인과 가족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입학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야간 자율학습이나, 방과 후 학습 따위의 보충학습을 여러분들은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거기서 배제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이 고교 교육과 입시제도 따위 앞에 맨몸으로 서야 하는 여러분들은 그런 관행을 무저항으로 받아들일 만큼 우리 사회의 생존방식을 몸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공부를 통해 얻은 기득권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방법이란 걸 체득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기득권에 집착하게 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경쟁에 쫓기면서 혹시 여러분들은 다른 친구들과 자신 사이에 알지 못할 벽을 쌓지는 않았는지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은연중에 구별 지으며 친구들을 눈 아래로 바라보지는 않았던가요. 이기와 선민의식은 그런 마음의 갈피에서 남몰래 싹트고 자라납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지금껏 열심히 공부해 얻은 학력을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성적을 바탕으로 정진하여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분이 지켜야 할 것은 성적과 자신의 이해만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비록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경쟁에서 밀려난 친구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 한 아이가 전해 준 편지

경쟁에서 뒤진 사람들의 좌절과 고통, 번민과 슬픔은 더 센 강자 앞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의 능력,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숙한 시민의 자질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 안의 나’, 그 ‘이기’와 편견과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일신의 안일과 욕망을 뛰어넘어 공동의 선을 지향하는 일이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확장해 나가는 성장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를 배웠을 것입니다. 선생은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면서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에 조금씩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나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권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것은 절대 쉽지 않은 길이고 세상의 모든 삶이 그런 길로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그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 때문에’ 세상이 ‘조금씩 더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그런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지 말기를 권합니다.

 

글이 장황해졌습니다. 한 학년을 마치고 아이들과 작별할 때 들려주곤 했던 이야기로 이 글을 맺을까 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이랑 깊이 일굴수록 쟁기 날은 빛나고, 유수봉하해(流水逢河海),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옥련의 딸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이 땀 흘려 일구어 빛나는 쟁기 날이 되고 끊임없이 흘러 큰 바다를 만나기를 빕니다. 먼 뒷날 여러분들이 여러분 삶의 여정 어디쯤에서라도 여고 시절 한 국어교사의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한 교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2년 2월 14일, 여러분의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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