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448

2014년 4월(5) [추모]세월호 3주기…, 독일에서 온 추모의 노래 독일 고등학교 소녀합창단이 부르는 ‘추모의 노래’ 세월호 3주기다. 어쩌다가 어제 지역에서 베푸는 추모제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종일 벼르고 있었는데 엉뚱한 일이 생겨서 그렇게 되었다. 세월호 유족들의 ‘치유공간 이웃’의 정신과 의사 정혜신 씨는 팽목항에 안 갔다고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세 해 전 이날, 덧없이 보낸 아이들과 사람들을 우리는 그리 쉽게 잊지 못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는 오늘도 외출했다 돌아왔다. 컴퓨터를 켰다가 독일의 고교생들이 부르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들었다. 참여연대가 소개한 독일에서 보내온 추모 영상이다. 이를 전하는 기사에 따르면 독일 요하네스 네포묵 고등학교 소녀합창단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우리 가곡 향수를 부른 것이다. [관련 기사 : “차마 꿈엔들 잊.. 2019. 4. 16.
2014년 4월(4) 세월호 참사와 ‘여객선 사고’, 안산을 다녀오다 뒤늦게 안산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다녀오다 안산을 다녀왔다. 12일 백만 촛불에 참여한 다음 날 정오께 나는 휴무로 쉬는 아들애를 길라잡이로 지하철을 타고 안산으로 향했다. 집회에 참석하고 하룻밤을 묵은 뒤에 안산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 마음에 묵은 빚 때문에 낸 궁여지책이었다.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아이들 곁에 가 보지 못했다. 부지런한 이웃들은 멀다 하지 않고 팽목항과 안산을 다녀왔다고 했지만 나는 고작 서울광장과 우리 지역의 분향소를 찾은 게 다였다. 참사 2년 반, 아직도 진실은 인양되지 못했다 지금은 떠났지만,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교사 대부분이 .. 2019. 4. 16.
2014년 4월(3) 세월호,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을 생각한다 세월호, 아이들과 함께하여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 가끔 한 학교를 생각해 본다.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다. 나는 그 도시에 가 본 적도 없으며, 거기 사는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한다. 당연히 단원고도, 거기 다니는 학생과 교사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나는 단원고의 아이들은 물론, 그 아이들과 함께 수학 여행길에 나섰던 열몇 분의 교사들을 아주 오랫동안 알아 온 사이처럼 느끼게 되었다. 단원고, 안산의 그 학교를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게 된 것은 한 달도 전에 일어난 여객선 침몰 사고 때였다. 나는 뒤에 오보임이 판명된 보도를 통해 제주도로 가던 배가 가라앉았지만, 학생들은 전원 구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 열여덟 살짜리 고2 아이들 수업에서 그 소식을 전하며 .. 2019. 4. 16.
2014년 4월(2) 아이들아, 너희가 바로 새잎이었다 ‘강철 새잎’을 들으며 메이데이(May Day)다. 어제는 역 광장에서 두 번째 촛불이 켜졌다. 오후 내내 개어 있더니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비를 피해 종종걸음을 쳤고 참가자들은 역사로 오르는 중앙계단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고 광장 앞 역사를 향해 세운 천막 분향소가 조문객들을 받고 있었다. 빗속에서도 드문드문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어린 학생들, 젊은 연인들과 아이를 안고 온 부부들, 늙수그레한 중장년의 시민들까지 일단 천막 안으로 들어선 이들은 매우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어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죄인’의 마음이 되는 게 세월호 사고의 특징인지 모른다. 삼백여 ‘목숨의 무게’가 고작 이것인가 중앙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수효는.. 2019. 4. 15.
2014년 4월(1) 잔인한 봄―노란 리본의 공감과 분노 세월호 희생을 기리는 노란 리본, 그 공감과 분노 어제 역전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지역에선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다. 오후 여섯 시, 퇴근 무렵이어서 역사를 등진 채 거리를 바라보며 앉은 참가자들 주변은 역사를 오가는 행인으로 붐볐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추모의 성격에 걸맞게 행사는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주최 쪽에서 참가자는 물론이고 행인 가운데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행인들은 가끔 걸음을 멈추고 행사에 귀 기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곤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재벌 3세에게서 ‘미개하다’고 비난받았지만 국민들은, 이 끔찍한 재난 앞에서 ‘내남’을 구분하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인 것이다. 교사 한 분이 나와 소회를 밝히면.. 2019. 4. 15.
조합형 코드, 한글 이야기(2) 한때 휴대폰에서 ‘똠방각하’를 쓸 수 없었던 이유 얼마 전 블로그(nalm's Blog)에서 “다음 폰트로는 ‘똠방각하’를 쓸 수가 없다?!”라는 글을 읽었다. 요지는 이렇다. “포털 다음(daum)에서 한글날 맞이 이벤트로 무료 글꼴(폰트)인 ‘다음체’를 공개했는데 그게 완성형으로 만들어진 글꼴이어서 일부 한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 그러면서 그 글에서는 다음체로는 ‘먄해(미안해)’와 ‘똠방각하’를 입력할 수 없다는 실제 예를 ‘워드 2007’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다음의 한글날 맞이 이벤트 페이지(http://fontevent.daum.net/)에 들어가 보니 이에 대한 해명이 올라와 있다. “다음체는 2,350자의 완성형으로 제작된 폰트이기 때문에 이외의 글자는 표현이 안 되는 것이 맞다.”고 .. 2019. 4. 14.
[근조] 세월호 5주기- ‘에스토니아’ 이후, 혹은 ‘세월호 이후’ 세월호 5주기 16일, 우리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는다. 주변에 “아직도 세월호냐”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특별히 다른 이들보다 야박한 심성을 가진 이여서가 아니다. 단지 남의 고통을 내 것으로 이해하는 힘, ‘공감’ 능력을 스스로 발현하지 않았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는가. 그것은 상대의 불행과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던 슬픔이고 분노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하는 것, 역지사지든, 공감이든 그들은 거기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세월호 5년, 정권까지 바뀌었지만,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책임져야 할 보수 정치세력의 끊임없는 방해와 폄훼 탓이다. 그런 뜻에서 1994년 사고 이후 3.. 2019. 4. 14.
가을 나들이-그림, 책, 사람을 만나다 선배 조영옥 시인의 그림 전시회 얼마 전 책상 옆 서가에 챙겨두었던 보랏빛 단행본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꺼내 보고서야 그간 꽤 경황없이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2월 퇴임 모임에 참석한 선배가 전해준 조영옥 선생의 스케치와 글모음 이다. 늘그막에 그는 그림을 시작했다 지난 2월을 끝으로 조영옥 선생도 나와 같이 교직을 떠났다. 물론 그는 정년을 맞아서다. 1989년 해직 동지로 우정을 나누어 온 세월이 어느덧 27년이다. 1990년도였던가, 당시 에 나는 ‘넉넉한 옷섶의 맏누이’라며 그이 이야기를 기사로 쓰기도 했다. 말 그대로다. 어쨌든 그가 살아온 삶이 그랬다. 조직의 이해를 개인의 손익에 앞세우면서 남들이 꺼리는 역할을 마다치 않았던 사람이다. 똑똑하면서도 자기 이해에 밝은 후배들도 그이 앞에.. 2019. 4. 14.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 임시정부 초대 국무원과 임시의정원을 꾸린 독립운동가들 이른바 ‘가(假) 정부’ 수립을 논의해 온 일군의 망명 독립운동가들이 이국땅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민주 공화제 정부를 수립한 것은 1919년 4월 11일이다. 1910년 8월 29일 강제합병조약으로 대한제국(帝國)이 사라진 지 3147일 만에 ‘대한민국(民國)’은 삼천만 동포의 새로운 희망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이날 구성된 임시정부 각료는 모두 7명이다. 국무총리제를 택해 국무총리에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이 임시정부를 이끌어 갈 소임을 맡은 것이다. 주필로 독립협회에서 활동했고,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한 죄로 복역한 뒤, 미국으.. 2019. 4. 12.
일본의 ‘과거’ ‘소환’-새 지폐 도안인물로 시부사와 에이이치 선정 일본, 새 1만 엔권의 도안 인물로 시부사와 에이이치 선정 일본이 새 1만 엔권의 새 도안 인물로 제일국립은행(국립의 의미는 국법에 따라 설립되었다는 것으로 실제 민간은행)과 도쿄증권거래소 등 500여 개 기업을 설립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1840~1931)를 선정했다고 한다. 현행 1만 엔권의 주인공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다. 후쿠자와도 갑신정변의 주역을 지원하는 등 한국과 만만찮은 인연이 있었지만, 시부사와는 그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시부사와는 1878년에 부산에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 지점을 설립하고 이후 금융과 화폐 분야에서 일본 정부를 대리해 조선에서 여러 가지 특권을 확보했다. 1901년 대한제국은 금본위제도 채택.. 2019. 4. 11.
산청 단속사(斷俗寺) 옛터에서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단속사지 (斷俗寺址)를 찾아 대체로 ‘절터’는 허무하다. 사진은 가끔 마술을 부린다. 전각도 없이 탑만 우두커니 선 절터 풍경도 사진으로 보면 그 울림이 심상찮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몸소 만나는 절터의 풍경은 ‘아니올시다’이기 십상이다. 그나마 절터가 제대로 남아 있으면 다행이다. 전각이 서 있을 자리에 민가가 들어와 있는 광경은 마치 빈객들이 돌아간 잔칫집처럼 썰렁한 것이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에 있는 단속사지(斷俗寺址)도 다르지 않다. 나는 우선 그 이름에 끌렸다. ‘속(俗)을 끊는다’는 절 이름이 갖는 울림은 좀 색다르다. ‘속리(俗籬)’가 ‘세속과 떨어짐’이 아니듯, ‘단속’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왕과 왕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듯하다. .. 2019. 4. 10.
[사진] 100년 만에 재현된 구미 임은동 만세운동 100년 만의 재현, 구미 임은동 만세운동 지난 4월 8일, 구미시 임은동 소재 왕산초등학교 강당과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일원에서 소리극 ‘왕산 허위 선생’과 100년 전의 만세운동 재현 행사가 열렸다. 1919년 3·1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져 한 달여 후인 4월 8일에 구미 임은동 동산에서 벌어진 야간 만세운동을 꼭 100년 만에 재현한 것이다. 이날 왕산초등학교 강당에서 베풀어진 영남민요연구회 구미지회의 소리극 ‘왕산 허위 선생’은 왕산의 주요 행적을 연극으로 재현하면서 사이에 토속민요를 연창하는 방식의 공연이었다. 이 행사는 영남민요연구회의 제11회 ‘구미아리랑제’를 겸한 행사였다. 왕산초등학교 강당에 들어설 때만 해도, 관객이 얼마나 올지 등에 대해서 조마조마한 기분이었는데 행사 시작 전에 금방 .. 2019.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