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조영옥 시인의 그림 전시회
얼마 전 책상 옆 서가에 챙겨두었던 보랏빛 단행본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꺼내 보고서야 그간 꽤 경황없이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2월 퇴임 모임에 참석한 선배가 전해준 조영옥 선생의 스케치와 글모음 <긴 망설임의 끝, 선택의 행복>이다.
늘그막에 그는 그림을 시작했다
지난 2월을 끝으로 조영옥 선생도 나와 같이 교직을 떠났다. 물론 그는 정년을 맞아서다. 1989년 해직 동지로 우정을 나누어 온 세월이 어느덧 27년이다. 1990년도였던가, 당시 <전교조신문>에 나는 ‘넉넉한 옷섶의 맏누이’라며 그이 이야기를 기사로 쓰기도 했다.
말 그대로다. 어쨌든 그가 살아온 삶이 그랬다. 조직의 이해를 개인의 손익에 앞세우면서 남들이 꺼리는 역할을 마다치 않았던 사람이다. 똑똑하면서도 자기 이해에 밝은 후배들도 그이 앞에서 접어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모범적인 도덕 교사로 살아오다 어느 날 비타협적 반골 인사가 되어버린 그의 변신은 주변에서도 화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변신은 현실을 마지못해 수용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추구한 주체적 삶의 표현이었다. 변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사고의 유연성이 고루하고 경직된 인식의 성채에서 벗어나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남들보다 여섯 해나 긴 해직 기간에도 몇 권의 시집을 내더니 교단을 떠나기에 앞서 이 책을 낸 것이다. 해직 이전만 해도 일요화가였다더니 그는 기어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늘그막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데 대한 그의 심회는 고스란히 책의 제목(<긴 망설임의 끝, 선택의 행복>)이 되었다.
중학교 때 미술반이었는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그림에서 멀어졌던 그이는 환갑, 진갑 지난 나이에 다시 그린 그림을 우리들 앞에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것도 그였으니 가능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그가 이 그림들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그의 그림이 썩 마음에 들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다소 서툴러 보이는 점이 없잖아 있긴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나는 그가 잡은 장면과 붓의 터치 따위가 좋았다.
며칠 전 산에 올랐다가 생각이 나서 그에게 문자를 보내 전시회는 언제까지냐고 물었다. 그는 단박에 내일이라도 상주에 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러마고 했다. 그리고 어저께 나는 시외버스를 탔다.
전시회는 상주군 함창읍의 카페 ‘버스 정류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함창 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이 카페는 도로변의 30년도 넘었을 오래된 슬래브 이층집이었다. 하얀 타일을 붙인 낡은 건물의 외관은 버스 정류장 표지판과 건물에 바투 붙여놓은 나무 벤치와 공중전화기 따위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는 뒤란의 파라솔 아래도 이 카페의 주요 공간인 것 같았다. 키 높이까지 자란 코스모스 그늘에서라면서 차를 마시든 술을 마시든 누구나 거나해질 수 있을 듯했다.
안동에서 내려온 선배 두 분 내외와 함께 카페 옆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를 좀 마신 우리는 뒤란 대신 2층에서 주인장이 직접 내린 커피와 오미자 효소를 마셨다.
함창읍내의 카페 ‘버스정류장’과 사람들
오래 교직에 있다 퇴직한 뒤, 귀농 에세이 <빈집에 깃들다>(2011)를 펴낸 예사롭지 않은 경력의 주인장 박계해 씨가 연 이 카페는 전국에서도 꽤 알려진 곳이다. 낡고 오래된 이층집의 1, 2층에 그만그만한 공간에 탁자와 의자를 들여 꾸민 이 카페는 주인장의 일터요, 지역의 문화 사랑방이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필자[바로가기☞]로 글을 써 온 주인장의 카페 ‘버스정류장’은 지난해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을 낸 1인 출판사이기도 하다. 주인장은 우리에게 그 빨간 표지의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조영옥의 그림을 구경하고 엽서를 얻고 뜻밖의 책까지 선사 받았으니 이번 나들이는 쏠쏠(!)하다.
아, 주인장의 커피는 맛이 좋았다. 내가 집에서 늘 마시던 놈보다는 신맛이 좀 강했는데 그게 쏘는 맛은 아니어서 입안에서 그윽하게 머물다 목을 타고 내려갔다. 우리는 두어 시간쯤 거기서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회포를 풀다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에 예천에서 상주 시내로 이사한 그림 그리는 내 옛 친구의 집에 잠깐 들렀다. 지난해 퇴직한 그는 점포 달린 주택을 구입해 화실과 살림집을 한목에 해결했다. 스무 살 때 만났던 그는 회갑을 맞은 지금도 예전 그대로인 진국의 친구다.
화실에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꽤 많았다. 그림 그리는 친구들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환갑 진갑 지낸 조영옥이 늘그막에 다시 붓을 잡은 것처럼. 언제 다시 정식으로 한번 오마고 하고 나는 그의 집을 떠났다.
돌아오는 버스는 직통이어서 40분 만에 구미 정류장에 닿았다. 가을 나들이로는 쏠쏠한 하루였다. 그림과 책을 만나고 거기다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다.
글쎄,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카페 ‘버스정류장’의 뒤란에서 달빛을 받으며 소주를 한잔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기로 한다.
2016. 10. 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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