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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2019/0448

어떤 백일몽 중년 사내의 가슴의 뚫린 황량하고 어두운 통로… ‘젊은 여자’가 유난히 눈에 밟히는 날들이 계속되었겠다. 오해할 필요는 없다. 무슨 신이라도 내린 듯, 짬만 나면 디지털카메라 마니아들의 SLR(Single Lens Reflex) 포럼을 드나들었고, 거기 실린 아름다운 사진 속의 여인들을 원 없이 만났다는 얘기다. 세련된 아웃포커싱(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하면서 피사체만을 선명하게 표현하여 피사체를 부각하는 촬영)으로 잡힌 고운 색감의 배경 속에서 여자들은 ‘존재’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들은 대학 교정에서, 하오의 공원에서, 저무는 들녘에서 무심한 눈길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방심한 시선 속에 담긴 것은 꼼짝없이 낡고 오래된 세월에 대한 도전과 멸시 같았다. 중년의 일상과 젊음의 낙관과 오만.. 2019. 4. 22.
봄나들이 - 초전리 ‘꽃 대궐’과 미성리 ‘그 여자’의 집 봄나들이, 의성 초전리와 군위 미성리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1. 의성군 금성면 초전(草田)리 복사꽃과 모과꽃 의성에 들어가 사는 친구 장(張)을 찾으러 가는 길 주변은 꽃 천지였다. 이미 구미엔 대부분 지고 있는 꽃들이 군위에서 친구 이(李)를 태우고 의성으로 가는 길 주변 들과 숲에는 한창이었다. 복사꽃이 그랬고, 산벚꽃이 그랬다. 위도의 차이가 개화 시기를 결정한 탓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즐겨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고 싶게 만드는 풍경들이었다. 연변의 풍경들은 이 7·5조 운율의 노래에서 ‘울긋불긋 꽃 대궐’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 뜻을 가늠해 보지 않고 무심히 불러왔지만, 이원수가 ‘꽃 대궐’이라 쓴 이유가 거기 있음은 분명하다. 나의.. 2019. 4. 21.
대구 금호강의 섬 하중도 유채꽃 나들이 [달구벌 나들이] ⑤ [사진] 대구 금호강 하중도(河中島) 유채꽃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한 달 전쯤 아내와 함께 대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북대구 나들목으로 나가는데 오른쪽 금호강 가녘에 꽤 너른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어, 웬 유채꽃? 볼 만한데, 언제 구경 올까?” 했더니 아내는 “당근 좋지”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으로 거기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금호강 하중도’나 ‘노곡동 하중도’로 입력하면 데려다준다는 걸 알았다. 거기 가면서 따로 날 받을 일은 없으니 4월 두 번째 주말인 13일, 김밥으로 소문난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 도시락 두 개를 사서 바로 출발했다. 금호강 하중도 3만여 평 유채꽃 단지 강변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 2019. 4. 21.
영주댐 건설로 망가진 회룡포, MB 녹색성장의 결말 망가진 예천 회룡포, 엠비표 녹색 성장의 결말이다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영주댐 건설 이후 시름시름 앓는 내성천 지난 9월의 셋째 주말, 경북 예천의 회룡포를 찾았다. 나는 2005년부터 한해 걸러 한 번씩은 내성천이 마을을 한 바퀴 휘감는 회룡포에 들르곤 했다. 시인 안도현과 조성순을 불렀다고 전하면서 내성천에 들러 달라는 김소내 선생의 전갈을 받은 것은 열흘 전쯤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20일, 예천민예총과 소내 선생이 준비한 예천아리랑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회룡포 마을에서 열린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상류에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내성천의 안부가 궁금했다. 거기다 소내 선생을 비롯한 예천의 옛 동지들과 고교 동아리 후배인 두 시인과 .. 2019. 4. 21.
낙동강 마지막 주막에서 만나는 ‘오래된 그리움’ 복원된 예천 삼강주막을 찾아서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다시 삼강(三江)으로 길을 떠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나루.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로 간다. 거기 이백 살도 넘은 회화나무 그늘, 낙동강 천삼백 리 물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 일흔 해 가까이 뱃사람과 장사치들 등 나그네들을 거두었던 어느 술어미의 한이 서린 곳, 삼강주막으로 간다. 삼강은 낙동강 하구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 배가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 내륙의 미곡과 소금을 교환하던 상인과 보부상들로 들끓던 곳이었다. 한 세기 전에 이 주막이 들어섰을 때, 삼강 나루는 짚신 신긴 소를 서울로 몰고 가던 소몰이꾼으로 북적였다. 소 여섯 마리를 실을 수 있었다는 큰 나룻배는 바로 삼강의 번성.. 2019. 4. 20.
마지막 주막, 바람벽에 새겨진 술어미 피울음 내륙의 섬마을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물돌이동’은 하회(河回)의 다른 이름이다. 낙동강이 그 유장한 흐름으로 마을을 휘감고 흘러가는 형국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모두 그만그만한 우리 하천들의 규모와 배산임수의 땅에다 터를 잡아온 선인들의 지혜를 헤아려 보면, 그런 모양새의 마을은 쌔고 쌨어야 한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回龍浦) 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하회마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관광자원을 개발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이해와 저마다 승용차를 부리는 시대에 힘입은 데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 드라마 ‘가을동화’ 덕분에 온 나라에 알려졌다. 덕에 널리 알려진 회룡포 하회와 다른 점이라면 그 물이 낙동강 상류의 지류 내성천이라.. 2019. 4. 20.
‘통일 트랙터’, ‘분단의 선’을 넘을 수 있을까 [현장] 통일 트랙터 추진 의성지역 운동본부 결성식 지난 4월 18일 오전 10시, 경북 의성군청 앞에서 “통일 트랙터야, 분단의 선을 넘자!”는 구호를 내걸고 통일 트랙터 보내기 의성운동본부(아래 운동본부) 결성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에서 부는 평화의 바람에 발맞추어 통일 트랙터 보내기 운동으로 남북공동선언 실현을 위한 자주적 교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운동본부가 구매한 통일 트랙터 옆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 결의한 대로 트랙터 100대를 끌고 ‘분단의 선을 넘어 북녘땅 논밭 봄갈이를 실제로 진행하자’고 제의했다. 운동본부는 또 당면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을 위한 여론 조성사업을 힘 있게 전개하.. 2019. 4. 19.
저 혼자 서 있는 탑들 [안동의 탑 이야기①] 그 천년의 침묵과 서원(誓願) [안동의 탑 이야기 ②]소멸의 시간을 건넌 돌탑들 [안동의 탑 이야기 ③]‘국보 맞아?’ 잊히고 있는 우리 돌탑들 [안동의 탑 이야기 ④]천년 고탑(古塔)에 서린 세월과 역사를 되짚다 이 땅엔 탑이 참 많다. 온 나라 골짜기마다 들어앉은 절집뿐 아니라, 적지 않은 폐사 터에도 으레 한두 기의 탑이 서 있기 마련이다. 탑은 어쩌면 ‘부처님의 나라’를 꿈꾸었던 신라 시대 이래 이 땅의 겨레들이 부처님께 의탁한, 소망과 비원(悲願)의 결정체인지도 모른다. 낮은 산 좁은 골짜기 들머리에, 더러는 곡식이 익어가는 논밭 가운데에 우두커니 선 탑이 안고 있는 천년의 침묵은 바로 이 땅의 겨레가 겪어온 즈믄해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겠다. 절집에서 탑은 원래 부처의 사.. 2019. 4. 19.
세벌식 , 한글 이야기(1) 세벌식 글자판과 한글 입력 타자기를 처음 만지게 된 것은 군대에서였다. 먹지를 대고 공문서를 쓰고, 등사기로 주번 명령지를 밀던, 특전대대 행정서기병 시절이다. 어느 날, 중고 레밍턴 타자기 1대가 대대 인사과로 내려왔다. 비록 중고이긴 했지만, 그 작고도 선명한 인자(印字)가 선사하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한 이태 가까이 그놈을 벗하며 살았다. 이른바 ‘독수리 타법’을 벗지 못하였지만, 일정한 속도를 확보할 무렵, 나는 만기 전역했고 이내 대학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월부로 ‘크로바 타자기’를 한 대 샀다. 물경 10만 원짜리였다. 자판을 외우고 능숙하게 다섯 손가락을 자유로이 쓰게 된 것은 당연한 일. 모두 손으로 쓴 졸업논문을 낼 때, 타자로 가지런히 친 논문을 제출한 건 나뿐이었을 게다. 독재정.. 2019. 4. 18.
세월호 5주기 추모제, 구미의 엇갈린 ‘측은지심’ 세월호 5주기, 여전히 TK의 눈길이 곱지 않은 까닭 자유한국당 전 현직 국회의원의 막말 행진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 행사는 전국 곳곳에서 베풀어졌다. 다섯 번째로 맞는 봄은 유가족들에게 여전히 아픔과 그리움을 환기하는 시간이고, 추모객들에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16일 구미역 앞에서 정오부터 시작된 서명운동과 책 전시 등 시민 캠페인에 이어 오후 6시부터는 세월호 5주기 구미 시민추모제가 열렸다. 2014년에 여러 차례 밝혔던 촛불문화제가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서명에 참여하거나 전단을 받아들고 흘낏 서명대를 돌아보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2014년에 세월호 촛불 때의 공기도 무심하기는.. 2019. 4. 17.
38년……, 그래도 우린 열심히 살았다 다시 만난 옛 ‘전우’ 지난 7일, 4·3 70주년 국민문화제에 참석한 날, 밤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군대 생활을 같이한 옛 동료 ‘허(許)’를 만났다. 그는 정보과, 나는 인사과 행정병으로 일과 중에는 다른 공간에서 근무했지만, 일과가 끝나면 대대본부 내무반에서 같이 생활한, 군대식으로 말하면 ‘전우’다. 신병 교육을 같이 받은 것도, 공수교육이나 특수전 교육을 같이 받은 동기도 아니었다. 입대는 내가 한 달쯤 빨랐지만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작전과 행정병 ‘김(金)’과 함께 우리는 동기로 지냈다. 더러 술도 같이 마셨고, 동기끼리 나눌 수 있는 이런저런 사연을 주고받으면서 삭막했던 시절을 함께 이겨냈다. 38년 만의 해후 허는 나처럼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바로, 김은 3학년을 마치고 입대했다.. 2019. 4. 17.
차명진, 선량의 꿈은 접고 ‘착한 이웃’으로 돌아가라 세월호 유족을 향한 차명진의 ‘패륜적 막말’에 부쳐 세월호 참사 5주기다. 아침부터 자유한국당의 한 전직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차명진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더니 2010년에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희망UP캠페인’의 릴레이 일일체험 참여 후기에서 ‘황제의 삶’을 누렸다고 설레발을 치다가 여론의 몰매를 받았던 바로 ‘그분’이다. [관련 글 : 차명진, 부천 소사의 ‘머슴’에서 ‘황제’로] 세월호 5주기에 쏟아낸 막말 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현재 경기 부천 소사 당협위원장)이 어제(15일)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향해 쏟아낸 막말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그것은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먹고, 그.. 2019.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