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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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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국군, 산청·함양 양민 705명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2월 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산청·함양 양민 학살 1951년 2월 7일은 음력 신묘(辛卯)년 정월 초이틀이었다. 전년도에 발발한 전쟁이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1·4후퇴로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이날, 지리산 줄기의 두메산골인 가현, 방곡(산청군 금서면), 점촌마을(함양군 휴천면)과 서주리(함양군 유림면) 등 네 개 마을의 양민 705명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국군 병사들에게 떼죽음을 당하고 세 마을 133가구가 잿더미가 되었다. 이 끔찍한 범죄는 이틀 후에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자행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서막이었다. 산청·함양을 거쳐 거창군으로 이동한 같은 부대는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거창 지역의 양민 719명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 2024. 2. 7.
일본의 ‘조선인 추도비’ 철거와 정부의 침묵 왜 윤 정부는 일본 앞에서는 ‘저자세’로 일관하는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따라서 그 운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면서 대외적으로 국가의 품격과 정체성 등 이른바 ‘국익’을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래,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독 ‘국익’은 사실상 실종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용인 특히 일본 앞에서 대통령이 ‘껌뻑 죽으니’ 덩달아 외교부도, 국방부도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열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국민의 인내심을 그예 임계점에 이른 듯하다. 시작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일종의 유체이.. 2024. 2. 5.
① 입춘, 봄이 멀지 않았다 입춘, 24절기와 봄의 절기 시작 2월 4일(2019년 기준, 2024년도 같음)은 입춘(立春)이다. 입춘은 정월(正月)의 첫 번째 절기니 24절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입춘은 대한(大寒, 1.20.)과 우수(雨水, 2.19.) 사이에 드는데 이때를 즈음하여 설날이 온다. 올해는 다음날인 5일(2024년은 10일)이 설날이다. 입춘(정월의 첫 절기, 2월 4일) 입춘은 음력으로는 섣달(12월)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양력에 비교하면 음력이 부정확하다는 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음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윤달을 둔 윤년이 있다. 윤달이 들어있는 해에는 반드시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거듭 들게 된다. 이러한 경우를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의 기후는 ‘동풍이 불.. 2024. 2. 3.
[홋카이도 여행]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 스시가 전부는 아니더라 [겨울 홋카이도 기행 ②] 오타루(小樽)와 비에이(美瑛)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북해도 여행의 둘째 날, 열시께 오타루를 향해 차를 몰았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데엔 제이알(JR: Japan Railway)로도, 승용차로도 한 시간 남짓이다. 길가는 물론, 눈은 중앙분리대를 성큼 높였고, 도로 위에도 양탄자처럼 깔렸다. “아빠, 어깨 좀 봐. 아주 굳으셨어”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가는데 뒷좌석의 딸애 눈에도 잔뜩 긴장한 내 모습이 확연했던 모양이다. 3박 4일 동안 운전대를 잡았으나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국내와 달리, 속도와 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카메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과속할 이유야 전혀 없었다. 그.. 2024. 2. 2.
[홋카이도 여행] 삿포로에서 만난 최고의 끼니는 편의점 도시락 [겨울 홋카이도 기행 ①] 삿포로 가족여행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2014년 설 대목 밑 가족 여행지로 삿포로를 선택한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딸은 대만을 또 다른 선택지로 제시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삿포로를 짚었다. 꼭 삿포로가 아니어도 좋았다. 거기가 홋카이도(北海道)라면 아무래도 좋았으리라. 나는 아마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중편소설 을 떠올렸을 것이다. 가와바타의 을 찾아서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 신호소(信號所)에 기차가 멎었다.” 일본 근대문학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의 첫머리다. 1968년 작가가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나는 초등학교 졸업반이.. 2024. 2. 1.
[오늘] 1933년 오늘-히틀러 총리 등장, 홀로코스트의 서막과 <나의 투쟁> 재출간 [역사 공부 ‘오늘’] 1933년 1월 30일, 나치당 아돌프 히틀러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1933년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1929년의 경제 대공황 이후 큰 타격을 입은 경제와 민주 정당들이 속수무책인 가운데 나치당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떠오르는 등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나치는 1926년 총선에서 선전, 괴벨스와 괴링 등 12명을, 1932년 총선에서는 전체 득표의 1/3을 차지하여 230명을 국회에 진출시켜 제1당이 되었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히틀러는 동유럽을 정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동방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공산주의를 혐오하.. 2024. 1. 30.
‘피습 피의자’와 ‘피습범’ : 혹은 ‘습격 피의자’와 ‘습격범’ 방송에서의 맞춤법 오류도 꽤 심각하다 새해 벽두인 1월 2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부산에서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 살해 의도를 품고 이 대표에게 접근한 60대 남자(김씨)가 준비해 온 양날형 검에 목이 찔린 것이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에 관한 보도가 줄을 잇던 때의 일이다. 웬 ‘피습 피의자’에다 ‘피습범’까지 함께 차로 이동하다가 관련 라디오 뉴스가 나오자, 후배 교사가 “뉴스마다 ‘피습 피의자’라고 한다”라며 ‘습격 피의자’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 맞아, 그렇구먼. 무심히 듣고 있다가 나는 동감을 표시했다. 보도의 ‘관행’ 때문일까. 방송은 무심히 이 상호 모순되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피습(被襲)’은 말 그대로 “습격을 받음”이니 이재명 대표의 상황이다, 그런데.. 2024. 1. 29.
[오늘] 1915년 연해주 13도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15년 1월 29일, 연해주 13도 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 1915년 1월 29일, 중국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국내외 의병의 단일 지휘계통을 지향한 연해주 13도의군(十三道義軍) 도총재를 지냈던 의병장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895년 을미의병의 최고 지도자로 호좌(湖左) 의병진(陣)을 이끈 지 꼭 20년 만에 그는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향년 74세. 의암 유인석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의 원류인 화서(華西)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화서학파의 정통 도맥(道脈)을 이은 위정척사론자였다. 그는 화서의 문하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을 익혔는데 만동묘 철.. 2024. 1. 29.
낱말의 발견 - 최애(最愛) ‘최애(最愛)’, ‘새말’이 아니라 오래된 낱말이다 ‘가장, 제일, 으뜸’의 의미 지닌 ‘최(最)’ ‘최(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가장, 제일’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최고위, 최우수, 최전방’처럼 쓰인다.(표준국어대사전) ‘최’는 ‘고·저·강·약·선·악’ 등의 한자와 어울려 ‘최고·최저·최강·최약·최선·최악’ 등의 단일 명사로도 쓴다. ‘최(最)’는 ‘가장, 제일, 으뜸’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른 낱말보다 위계에서 앞선다. 한국 최고(最高)의 산은 백두산이라고 할 때, 백두산보다 높은 산은 없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players)’, ‘최고 중 최고(best of the best)’와 같은 영어식 표현의 영향으.. 2024. 1. 26.
[오늘] 아우슈비츠 해방, 독일과 일본의 역사 성찰의 방식 1945년 1월 27일, 소련군 진주로 아우슈비츠 해방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1945년 1월 27일, 소련의 붉은 군대는 아우슈비츠(Auschwitz)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7천5백여 명의 유태인들을 해방했다. 소련군이 진격해 오던 1월 중순부터 나치 친위대(SS)는 남아 있던 가스 학살 장치를 파괴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각 전선에서 독일군이 무너지면서 전쟁은 끝나 가고 있었고 연합군은 수복한 지역의 집단수용소를 폐쇄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전선 부근의 캠프에 있던 수감자들을 독일 내의 수용소에서 강제로 노역시키기 위해 급박하게 옮기기 시작했다. 수감자들은 처음엔 기차로, 나중엔 먼 거리를 강제로 도보로 행군해야 했다.. 2024. 1. 26.
[순국] ‘마시탄’ 사건의 이의준 순국하다 압록강에서 사이토 총독 공격한 이의준 의사 사형집행으로 순국 1929년 오늘(1월 25일), 1924년 5월, 압록강 중류인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馬嘶灘)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공격했던 참의부 소대장 이의준(李義俊,1893~1929)이 일제의 사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향년 36세. 스물아홉 살에 만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였으나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독립운동가는 사진 한 장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대신 그가 사살하고자 했던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통해 그의 삶을 역으로 돌아볼 뿐이다. 사이토 총독 공격한 마시탄 사건 이의준은 평북 위원(渭源) 사람이다. 성장기와 독립운동 투신 이전의 삶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922년 8월이다.. 2024. 1. 25.
[순국(殉國)] 1930년 오늘 - 청산리의 김좌진, 흉탄에 스러지다 1930년 1월 24일, 김좌진 장군 흉탄에 스러지다 1930년 새해를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활기차게 맞았다. 지난해 7월 김좌진의 신민부가 김종진, 이을규, 이강훈 등의 아나키스트와 연대하여 결성한 재만한족총연합회(한족총련)가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월 하순 어느 날, 그는 중동선(中東線) 산시역 근처에 있던 한족총련 소속의 도정공장으로 나갔다. 중동선 일대의 한인들이 생산한 수만 석의 미곡을 도정하여 위탁 판매하는 과정에서 중국 상인들에게 농단 당하지 않게 설치한 정미소였다. 이 공장에서 김좌진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소속의 한인 박상실의 총에 맞는다. 1930년 1월 24일 오후 4시였다. 향년 41세. 1920년 항일무장투쟁사에 빛나는 청산.. 2024.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