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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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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한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장군 급서하다 [역사 공부 ‘오늘’]1957년 1월 15일- 대한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급서 1957년 1월 15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대한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 1888∼1957) 장군이 급서하였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다 탈출하여 광복군이 되었고,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와 함께 독립군 3대 대첩인 대전자령 전투의 지휘관이었다. 향년 68세. 지청천은 서울 출신이다. 본명은 대형(大亨), 일명 이청천(李靑天), 호는 백산(白山)이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08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했다. 이듬해 통감부의 압력으로 무관학교가 폐교되면서 1, 2년생 40여 명과 함께 정부 유학생으로 동경 육군중앙유년학교에 들어갔다. 유년학교는 뒤에 일본사관학.. 2024. 1. 15.
[오늘] 스물둘 박종철, 남영동에서 고문으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심문 중 고문으로 숨지다 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 20분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서 서울대 인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22)이 심문을 받던 중 고문으로 숨졌다. 1월 13일 자정께 하숙집에서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된 채 12시간이 되지 않은 때였다. 경찰은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추위’ 지도위원으로 수배 중이었던 선배 박종운(26, 사회학과 4년 제적)을 붙잡기 위해 박종철을 연행하였으나 박종철은 박종운의 소재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경찰은 심한 폭행과 함께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을 가했고 박종철은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검안의는 사인을 ‘미상’으로만 기록했다 당황한 경찰은 인근 중앙대 용산병원 응급실로.. 2024. 1. 13.
겸손과 포용의 미덕,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400년의 부를 지켰다 [새해 경주 나들이] ① 경주시 교촌안길 27-44 최부잣집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경주 최부자’ 얘기는 심심찮게 들어온 바 있지만, 가까이 살면서도 정작 그 ‘최부잣집(바로가기)’에는 가보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듯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불국사, 석굴암을 찾으면서 나는 경주를 처음 만났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던 해 나는 경주와 가까운 소읍의 여학교에 임용되어 거기서 4년을 살았다. 그러나 승용차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시절, 내가 가족을 끌고 버스로 경주를 찾은 건 불국사와 보문단지의 한 테마공원에 한 차례씩 들른 게 다였다. 처음 들른 최 부잣집에서 확인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외진 시골 동네에서 자란지라, 흔히 ‘천석꾼’, ‘.. 2024. 1. 13.
[오늘] 의열단의 김상옥 의사,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23년 1월 12일-김상옥,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1923년 1월 12일 밤 8시께, 서울 한복판 종로경찰서 서편 유리창을 뚫고 폭탄 하나가 날아들어 터졌다.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는 경찰력의 본산으로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해 온 종로경찰서를 폭파하려는 이 의거에 일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탄이 터지면서 경찰서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건물 일부가 파손되고 행인 7명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당시 일경은 이 투탄 의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종잡지 못하고 있었다. 일경이 투탄의 주역을 알아낸 것은 의거 닷새 후인 1월 17일이었다. 이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의 주인공이 바로 서른세 살의 청년 김상옥(金相玉, 1890~1923)이다. 그는 서울 어의동에서 영문(營門) 포.. 2024. 1. 11.
[오늘] 작가 전혜린, 서른한 살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65년 1월 10일, 작가 전혜린 사망 1965년 1월 10일 일요일 아침, 전날 지인들과 밤 10시까지 술을 마시다 자리를 떴던 작가 전혜린(田惠麟, 1934~1965)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언론은 그의 사인을 ‘심장마비’(조선일보)와 ‘수면제 과용으로 인한 변사’(경향신문) 등으로 전했지만 일반에는 ‘자살’로 널리 알려졌다. 유족이 입을 다물고 있어 자살 여부는 가릴 수 없는 일인데도 자살로 알려진 것은 죽기 이틀 전에 술자리에서 읊었다는 다음 글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서인지도 모른다. 1월 8일 초저녁 술자리에서 그가 읽고 태워버렸다는 글이다. [시 전문 텍스트로 읽기] 이 글의 출처는 알 수 없다. 내가 소년 시절부터 알고 있는 버전은 위와는 조금 다르지만, 전체 내용.. 2024. 1. 10.
[오늘] 1993년 오늘, 고노 담화 - ‘정의의 기억’, 그 행방을 묻는다 [역사 공부 ‘오늘’] 8월 4일- 일본 고노 관방장관,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담화’ 발표 1993년 8월 4일, 일본 자유민주당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은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담화’(이하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고노 담화는 전시 일본군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관여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했다. 이는 그때까지 일본군 ‘위안부’들이 군용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던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고노는 일본 제국 육군이 직간접적으로 매춘소의 설치에 관여했다고.. 2024. 1. 9.
[역사 공부 ‘오늘’] 24년 전 오늘, 첫 ‘수요시위’ 열리다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 열리다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지금껏 무심히 잊고만 있다가 어이쿠, 이게 그럴 일이 아니로군, 그래서는 안 되지, 하고 안타까움과 노여움으로 우리가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게 된 것은. 물론 그걸 아무도 나무랄 수 없다. 저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가 ‘헬조선’을 사느라고 힘겨웠으니 왜 지금껏 무심했냐고 타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8일 첫 시위에서 2016년 1212차 시위까지 지난 12월 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일본군 ‘위안부’합의 이후 전개되어 온 국민적 분노와 규탄 분위기 얘기다. 그러나 이번 정부간 합의를 계기로 사람들은 이 해묵은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가 정당한 요구인 만큼 그것을 짓밟은 이 합의의 부당성을.. 2024. 1. 8.
[오늘] 태평양전쟁 ‘전범’ 일왕 히로히토(裕仁) 사망 [역사 공부 ‘오늘’] 1989년 1월 7일, 1급 전범 일본인의 ‘덴노헤이카(天皇陛下)’ 사망 1989년 1월 7일 오전 6시 33분, 태평양전쟁의 1급 전범, 1억2천만 일본인의 ‘덴노헤이카(天皇陛下)’ 쇼와 ‘천황’ 히로히토(裕仁, 1901~1989)가 숙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8세. 히로히토는 근대 세계사를 전쟁의 시대로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일본 국민으로부터는 ‘살아있는 신’[현인신(現人神)]으로 추앙받았던 세계 최장수 국가원수였다. 히로히토는 1901년 다이쇼(大正) ‘천황’ 요시히토(嘉仁)의 아들로 태어나, 25살(1926) 때 124번째 ‘천황’의 자리에 올라 64년의 쇼와(昭和) 시대를 열었다. 1921년에 부황(父皇)을 대신해 정사를 돌보았으며, 즉위한 뒤 죽을 때까지 재위했다. 히로히.. 2024. 1. 7.
㉓ 소한(小寒), 추위보다 미세먼지가 걱정이다 23번째 절기 ‘소한(小寒)’ 1월 6일(2024년도는 5일)은 2019년 들어 처음 맞는 절기, 24절기 가운데 23번째 절기인 소한(小寒)이다. 소한은 이름으로는 ‘작은 추위’지만, 우리나라에선 ‘가장 추운 날’이다. 절기 이름으로 보면 다음 절기인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이것은 절기가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후를 잘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놀러온 '대한'이 얼어 죽었다는 '소한' 소한 무렵은 ‘정초 한파’라 불리는 강추위가 물려오는 시기다. 이른바 ‘소한 땜’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의 얼음 대한에 녹는다.”라고 하는 속담이 생긴 이유다. 소한 때면 반드시 추운 법임을 강조하여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2024. 1. 6.
망가져 가는 공영방송 <KBS>, 반복되는 ‘퇴행의 데자뷔’ 과 가 전하는 근황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에 관한 글을 쓸 때만 해도 현 정부가 공영방송의 ‘접수’(?)를 시작하지 않은 때였다. 제아무리 ‘살아 있는 권력’이라고 해도 최소한 절차적 정의를 지켜야 했으니, 정부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상황이었였다. 잔뜩 뿔이 난 정부와 집권당이 이사회를 장악하지 않고도 KBS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방책이 KBS의 안정적 돈줄을 죄어 버리는 ‘수신료’ 분리 징수였으니 권력은 그걸 ‘신의 한수’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내가 “‘수신료’ 분리 징수, ‘땡윤 뉴스’를 얻는 대신 ‘공영방송’을 잃는다”라고 쓴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의 꼼수를 따른다고 해서 당장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요금이어.. 2024. 1. 5.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일본 궁성에 폭탄을 던지다 [역사 공부 ‘오늘’] 의열단원 김지섭 니주바시(二重橋) 의거 1924년 1월 5일 오후 7시, 김지섭(金祉燮, 1884~1928)은 일본 궁성(宮城)의 다리인 니주바시(二重橋) 부근에서 궁성의 문인 사쿠라다몬(櫻田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폭탄의 무게를 가늠해 보면서 자신의 동선을 계산해 보았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1924년 초 도쿄에서 제국의회가 열려 일본 수상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조선 총독이 참가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은 1923년 12월이었다. 의열단은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주구들을 처단하고 일제의 만행을 온 천하에 알리고자 했다. 김지섭, 폭탄을 품고 석탄선을 타다 결사 대원으로 선발된 김지섭은 12월 20일, 상하이 푸둥에 정박 중인 미쓰이(三井) 화물 소속의 .. 2024. 1. 5.
[오늘] 36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 제도 폐지 [역사 공부 ‘오늘’] 1982년 1월 5일 야간 통행금지 해제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전년도 12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통금해제안’에 따라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되었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미군정청이 공포한 ‘미군정 포고 1호’에 따라 1945년 9월 8일부터 시행되었던 이 제도는 36년 4개월 만에 그 명운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6년 동안 존속되었던 제도가 폐지된 것은 1981년 바덴바덴에서 결정된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야간 통행금지 제도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치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2024.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