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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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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대구박물관, 바삐 둘러본 ‘조선 현판(懸板) 특별전’ [달구벌 나들이] ⑪ 대구박물관 특별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대구미술관에서 렘브란트 전을 보고, 바로 근처의 국립대구박물관에 들렀다. 2017년에 처음 들렀으니 거의 7년 만이다. 특별전으로 이 열리고 있다는 걸 일간지 기사를 보고 알았고, 들르겠다고 작정했으나, 결국 대구미술관에 오는 길에 곁들여 찾은 것이다. [관련 글 : 1994년에 연 국립대구박물관, 20년이 지나서 처음 들렀다] 현판에 담긴 역사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현판을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 흔히 절이나 누각, 사당, 정자 따위의 들어가는 문 위, 처마 아래에 걸어 놓는다.”로 풀이하고 있다. 박물관 누리집에서는 “조선의 건물에는 왕실과 민간에 이르기.. 2024. 2. 17.
[순국(殉國)] 스물일곱 윤동주, 후쿠오카 감옥에서 지다 [순국(殉國)]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지다 1945년 오늘(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간도 출신의 조선 청년 윤동주(尹東柱, 1917~1945)가 스물일곱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1943년 7월, 귀향길에 오르려다 일경에 체포된 이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이듬해 3월,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일제는 뇌일혈로 사망했다고 통보했지만, 윤동주는 학창시절에 축구선수로도 활약할 만큼 건강했다. 건장한 20대 청년이 수감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돌연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은 쉬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의문의 주사와 생체실험 40여 년 전, 그의 아우 윤일주와 후배 정병욱의 증언으로 그가 일제의 생체실험에 희생된 것이 아닌가 .. 2024. 2. 16.
명절 연휴 전시회 나들이, ‘렘브란트의 판화’로 눈 호강하다 [달구벌 나들이] ⑩ 대구미술관 해외교류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국내에서 한때 서울, 부산에 이은 세 번째 도시로 알려졌지만, 대구는 이미 인구 순위에서 인천에 3위를 내주었다. 2021년 6월 기준으로 인천은 290만을 넘겼지만, 대구는 230만 대에 그친 것이다. 좀 묵은 통계이긴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대구의 문화기반시설은 모두 74개로 서울 등 7대 도시의 4번째, 전국 13위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관련 기사 : (사설) 전국 최하위에다 구·군별 격차마저 심한 대구 문화시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1980년대만 해도 대구의 이른바 ‘문화 수준’은 하위권이라는 얘기가 자자했다. 대구에는 예술영화를 개봉해도 반응이 제일 미적지.. 2024. 2. 15.
‘입춘’ 지나 설 쇠고 다시 찾은 덕유산 향적봉 무주(茂朱)와 설천(雪川), 그리고 구천동(九千洞)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설날 연휴에 아이들이 나들이를 의논한 끝에 덕유산을 골랐다. 지난번 내가 다녀온 덕유산 설경을 기억한 아이들은 덕유산국립공원 누리집에서 실시간 시시티브이(CCTV)로 설천봉을 확인해 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덕유산을 찍었다. 그러나 명절 연휴, 12일은 오전까지 예약이 차서 부득이 오후 2시 반 곤돌라를 예약했다. [관련 글 : 덕유산 향적봉의 눈꽃 행렬, ‘설경의 갈증’ 풀었다] ‘구천동’으로 유명한 무주 11시쯤 속이 많이 불편한 아내는 못 가겠다고 하여, 셋이 아들애의 승용차로 출발했다. 영상의 기온이라 가는 길은 쾌적했는데, 도계를 넘어 무주군으로 들어서자, 도로 .. 2024. 2. 14.
[오늘] ‘전사’이고 싶었던 시인 김남주 잠들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2월 13일, 시인 김남주 지다 1994년 오늘(2월 13일), 자신을 ‘전사’라고 자칭했던 시인 김남주(金南柱, 1946~1994)가 파란 많은 저항의 삶을 마감했다. 이날 새벽 2시 30분, 그는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고려병원에서 췌장암으로 쓰러졌다. 9년 3개월간 복역하고 출옥해 온전히 여섯 해를 채 살지 못하고서였다. 향년 48세. 해남의 산골에서 태어나 이른바 지역 명문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김남주는 이듬해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 반대하여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부모의 요구를 관행적으로 따르는 여느 고교생의 삶과는 일찌감치 작별한 셈인데, 그것은 그가 선택한 반골의 삶을 예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항과 투쟁의 삶, 그는 전사이고 싶어 했다 검정고시를.. 2024. 2. 13.
그 ‘덫’은 어떻게 ‘덧’이 됐나? 연음법칙에 어긋난 ‘덫이·덫을’의 발음 [더시]와 [더슬] 4년 전에 ‘받침의 연음’에 관한 글을 쓴 것은 한 보도전문채널에서 출연자가 ‘텃밭이’를 발음하면서 [터빠시]라고 발음해서였다. 요즘 이렇게 발음하는 이들이 점점 느는 추세인 듯하지만, 이는 명백히 ‘표준발음법’에 어긋난 발음이다. 제대로 모국어 쓰는 이는 굳이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도 그게 틀렸음을 곧바로 알아챌 것이다. 연음법칙과 음절의 끝소리 규칙 ‘텃밭이’는 구개음화 현상에 따라, ‘굳이’나 ‘같이’를 각각 [구지], [가치]로 발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빠치]로 발음해야 한다. 따라서 ‘밭’의 받침 ‘ㅌ’을 ‘ㅅ’으로 바꾸어 발음하면서 [터빠시]로 읽은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관련 글 : ‘꽃이’· ‘밭이’를 [꼬시]·[바시]로 읽는다?.. 2024. 2. 11.
입춘과 설을 지내고 입춘과 설 입춘(立春) 입춘은 지난 4일이었다. 올 입춘은 설날 연휴 코앞인 섣달 스무여드렛날에 들어서는 바람에 무심결에 지나가 버렸지만, 본디 입춘은 새해 처음 드는 절기다. 음력에서 정월은 봄이 시작되는 때이니 입춘은 봄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새해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입춘에 베풀어지는 민속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낯익은 것은 입춘첩(立春帖)이다. 입춘첩은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이라고도 불리며, 각 가정에서 대문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을 이른다. (학고재)을 넘기면서 몇 장의 입춘 관련 사진을 만난다. 한편으론 아련하면서 그것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것은 한때의 풍속이었을 뿐, 지금은 이미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는 풍경인 까닭이다. 방바닥에 지필묵을 단정하.. 2024. 2. 10.
사라져가는 것들…, ‘제석(除夕)’과 ‘수세(守歲)’ 음력 12월 30일, ‘제석(除夕)’과 ‘수세(守歲)’ 설 명절이 내일모렌데 이번 명절 대목은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은 뒤 시장 경기도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다. 마을도 이웃도 없이 콘크리트 아파트에 갇혀 살아도 예전엔 명절이 가까워져 오면 무언가 들뜨고 달착지근한 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올핸 지레 마음을 가라앉힌 탓인지 그런 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내일 밤은 제석(除夕)이다. 살아생전에 어머니께서 고향 집에 밝히던 ‘수세(守歲)’의 불빛을 언뜻 떠올렸다.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 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히고 밤을 새우는 일이 수세, 세월을 지킨다는 뜻이다. 이날, 해가 떨어지면 어머니께선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셨다. 어머니께선 들기름을 부은 접.. 2024. 2. 9.
[오늘] 국군, 거창에서 양민 719명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2월 9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거창 양민 719명 학살 산청과 함양에서 무려 705명의 양민을 학살한 뒤 인근 거창군으로 이동한 국군 11사단 9연대(연대장 대령 오익경) 3대대(대대장 소령 한동석)는 1951년 오늘(2월 9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가옥에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눈 쌓인 마을 앞들로 끌어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겨냥해 소총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눈 덮인 논들은 순식간에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마을 사람 84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집단학살, 청연마을 사건) 빨치산 토벌 목적의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수행한다는 명목의 이 학살은 이후 11일까지 사흘 동.. 2024. 2. 9.
1950년 매카시 선풍의 시작과 2016년의 한국 조지프 매카시 “국무부 공산주의자로 가득차 있고, 내 손에 그 명단 있다 ” “나는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내 손에는 그 205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 조지프 매카시 “1950년 54년 사이에 일어난, 공산주의 혐의자들에 반대하는 떠들썩한 반대 캠페인으로, 대부분의 경우 공산주의자와 관련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매카시즘’ 항목 설날 아침에 이런 이야기는 좀 거시기하다. 그러나 내일(2월 9일)이 1950년 미국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국무부에 수백 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연설함으로써 이른바 ‘매카시즘’이 시작된 날이니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 2024. 2. 9.
[오늘] 만주와 한국 지배권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맞붙다 [역사 공부 ‘오늘’] 1904년 2월 8일, 도고의 일본함대 뤼순 군항 기습으로 ‘러일전쟁’ 발 1904년 일본의 뤼순항 기습으로 러일전쟁 발발 1904년 2월 8일 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일본함대가 뤼순(旅順) 군항을 기습함으로써 러일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기습 공격으로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일본은 2월 9일, 인천 앞바다에 있던 두 척의 러시아 군함을 격침한 이튿날인 10일에야 선전을 포고하였다. 20세기 초반을 장식한 이 전쟁은 한국과 만주(중국 동북지방)의 분할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격돌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을 두고 나누어진 거대 강대국 동맹 간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보면 영일동맹과 러시아·프랑스 동맹을 배후로 한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극동의 국제적 대립.. 2024. 2. 8.
[오늘] 국군, 산청·함양 양민 705명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2월 7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산청·함양 양민 학살 1951년 2월 7일은 음력 신묘(辛卯)년 정월 초이틀이었다. 전년도에 발발한 전쟁이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1·4후퇴로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이날, 지리산 줄기의 두메산골인 가현, 방곡(산청군 금서면), 점촌마을(함양군 휴천면)과 서주리(함양군 유림면) 등 네 개 마을의 양민 705명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국군 병사들에게 떼죽음을 당하고 세 마을 133가구가 잿더미가 되었다. 이 끔찍한 범죄는 이틀 후에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자행된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서막이었다. 산청·함양을 거쳐 거창군으로 이동한 같은 부대는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거창 지역의 양민 719명을 무차별 학살한 것이.. 2024.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