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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인 추도비’ 철거와 정부의 침묵

by 낮달2018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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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윤 정부는 일본 앞에서는 ‘저자세’로 일관하는가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지난해 11월 아펙(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따라서 그 운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면서 대외적으로 국가의 품격과 정체성 등 이른바 ‘국익’을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래,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독 ‘국익’은 사실상 실종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용인

▲ 정부는 예산을 들여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홍보물까지 만들었다.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동영상

특히 일본 앞에서 대통령이 ‘껌뻑 죽으니’ 덩달아 외교부도, 국방부도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을 열없이 지켜보기만 했던 국민의 인내심을 그예 임계점에 이른 듯하다. 시작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사실상 용인한 데서 출발했다. 반대 여론이 보수층에서조차 훨씬 높을 때도 대통령은 참모들과 여당 뒤에 숨에서 일절 이를 언급하지 않았고, 총대는 내각과 여당에서 졌다.

 

이 정책은 5선 여당 의원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시전한 ‘수조물 먹방’이라는 코미디로 여당 선량들이 국민이 아니라 권력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위험성이든 안전성이든 한 번도 입증되지 않은 오염수 방류는 현재형이 아닐 뿐, 여전히 내연하고 있는 뇌관과도 같다. 어쩌면 그건 국민의 이해를 저버린 정부를 선택한 결과로 주권자들이 두고두고 감당해야 할 몫이 될지도 모른다.

 

강제징용 배상을 ‘제3자 변제’라는 해괴한 방식으로 해결?

▲ 가해자는 일본 전범기업인데, 배상금은 국내 기업들이 낸 돈을 받으면 해결된다는 정부 해법은 법원에서 거부당했다.
▲ 정부가 법원에 피해배상금을 공탁하자, 공탁관에 이어 판사도 강제동원 '제3자 변제' 안 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 이후,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외교적 해결안으로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해서 제3자 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을 대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재원은  한일기본조약으로 청구권자금을 수혜한 한국 국내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조성한다는 이 안을 피해자 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정부 여당과 대통령은 이 안이 답보해 온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묘방으로 여겼는지는 모르지만, 이 안은 피해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방안에 불과하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정부 배상금을 거절한 사람들을 피공탁자로 하여 법원에 피해배상금을 공탁했지만, 각 법원의 공탁관들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공탁이라며 재단 측의 공탁을 수리하지 않았다. 외교부가 이의를 신청했지만, 이번에는 법원에서 ‘불수리’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이는 정부안이 사실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법원이 입증한 것이다. 설사 피해자들 일부에서 이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건 상황을 미봉할 뿐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라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도대체 가해자인 전범 기업은 땡전 한 푼 내지 않고 있는데, 왜 애먼 국내 기업이 그들을 대신해서 배상한단 말인가.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결국 피해국 정부가 자국민인 피해자를 돈으로 압박한 셈”이라고 한 까닭이다. 

 

독도 관련 논란, 반복되면 ‘실수가 아닌 의도’다

▲ 국방부가 발간한 '정신 전력 교육 기본교재'에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 진행 중'이라고 서술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방부와 관련한 최근의 ‘독도 논란’도 허투루 보아넘길 문제가 아니다. 국방부가 발간한 ‘정신 전력 교육 기본교재’에 대한민국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분쟁 진행 중’이라고 서술한 것은 마치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뉘앙스를 줄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건 끊임없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국제사회에 알리려 애쓰는 일본의 논리에 힘을 보태는 격이니 말이다.

 

이미 대적관 확립을 내세워 ‘내부 위협 세력’을 강조하고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을 깎아내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으로 일관하는 등 논란이 됐던 문제의 ‘기본교재’는 결국 교재 전량 회수로 일단락되었다. 결국 국방부 장관 청문회에 제기되었던 ‘부적격’ 논의가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었음이 고스란히 입증된 셈이다. [관련 글 : 똥별에게 보낸다]

 

또 해외여행과 관련해 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외교부 사이트에 ‘독도’가 ‘재외 대한민국 공관’이라고 표시되어 있음이 드러나 잠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외공관은 독도가 한국 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국민은 의아할 뿐이다.

 

일본 군마현 ‘강제 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철거

▲ 조선인 추모비를 철거하고 있는 현장. 아사히신문 누리집 사진

일본 관련한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소식은 지난 29일, 20년 동안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 ‘군마의 숲’ 공원에서 한일 우호의 상징 역할을 하던 ‘강제 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철거로 이어졌다. 이 추도비는 군마 시민들이 희생자 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군마의 광산과 군수공장 등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이 6천여 명, 이 중 300~5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확인하고 이들을 기리고자 2004년에 세웠다. [관련 기사 : 조선인 추도비철거가 의미하는 것]

 

일본 정부나 군마현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이 현 소유 공원에 조선인 추도비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사죄를 언급한 오부치 게이조(1937~2000) 전 총리와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년) 등에 힘입은 것이었다. [관련 글 : 1993년 오늘, 고노 담화-‘정의의 기억’, 그 행방을 묻는다]

 

그런데 2004~2012년 사이 추도식에서 나온 ‘조선인 강제연행’ 발언으로 우익단체가 반발해 논란이 커지면서 추도비 철거가 결정되었다. 군마현은 공원을 전면 폐쇄한 뒤, 추도비 철거를 시작했고, 취재가 봉쇄된 일본 언론은 헬리콥터를 띄웠다.

▲ 군마현 군마의 숲 공원에 조선인 강제노역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가 시민의 힘으로 세워진 것은 2004년이었다.

아사히신문이 찍은 영상을 보면, 추도비가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됐고 군마현은 콘크리트 비석은 잘게 부수어 버렸다.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적힌 금속 재질의 비문 등은 따로 떼어 추도비를 세우고 관리해 온 일본 시민단체 ‘기억·반성 그리고 우호의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에 건네졌다고 한다.


이해 불가능한 한국 정부의 ‘침묵’

 

이번 추도비 철거와 관련한 한국 정부는 줄곧 침묵했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한일 우호를 위해 세운 빗돌을 지방정부가 철거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빗돌의 철거는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문제를 봉합해 버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관계 개선이 한-일 우호는커녕 ‘역사 지우기’를 부추긴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위 기사)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은 일본 정부도 국제기구에서 인정한 바 있다. 2015년 7월 사토 구니 당시 주 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유네스코 회의에서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라고 밝힌 것이다. [관련 글 : 조선인 강제노동에 대한 대법원 배상 판결과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 다시 불려 나온 군함도, 강제동원 역사 왜곡하는 일본]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한-일 간에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군마현 지사는 “(한국 등) 외교 경로로 뭔가 온 것이 없다”라고 했고,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은 “지자체의 결정 사항”이라며 회피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추도비는 사라졌다.

▲ 추도비의 비문. 사진은 '조선학교와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에서

철거한 빗돌에서 떼어낸 비문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물컵 반 잔의 정치학은 ‘빈손’

 

꼬인 한일관계를 바로잡겠다고 나선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대일 저자세의 동기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해 3월의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두고 정부는 ‘한국이 물컵의 반 잔을 채웠으니, 나머지는 일본이 채워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1년이 가까워지지만, 우리는 여전히 빈손이다. “완벽한 일본의 승리이자 완벽한 한국의 굴욕외교”(김상희 국회 부의장)라는 평가가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독 나라 밖 순방 외교에만 나서면 신이 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지지하는 이들은 윤 정부의 외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정작 부정 평가도 ‘외교’에 몰리고 있는 상황은 대통령의 외교가 자주적이지도 민족적이지도 않다는 세간의 평가를 입증한다.

 

자국의 대통령을 두고, ‘일본 총리’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온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사는 절대 편치 않다. 그건 고스란히 제 나라의 국격과 민족적 자긍심의 구성 요소일 터이니 말이다. 주권자들은 여전히 궁금하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나면 보여주는 대통령의 해맑은 미소가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를.

 

 

2024. 2.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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