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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세시 풍속·24절기 이야기

① 입춘, 봄이 멀지 않았다

by 낮달2018 202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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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24절기와 봄의 절기 시작

▲ 횡수막이. 논둑에 제웅, 무 등을 놓고 함께 횡수가 없어지라고 빈다. ⓒ <한국의 세시풍속>

24일(2019년 기준, 2024년도  같음)은 입춘(立春)이다. 입춘은 정월(正月)의 첫 번째 절기니 24절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입춘은 대한(大寒, 1.20.)과 우수(雨水, 2.19.) 사이에 드는데 이때를 즈음하여 설날이 온다. 올해는 다음날인 5일(2024년은 10일)이 설날이다.

 

입춘(정월의 첫 절기, 2 4)

 

입춘은 음력으로는 섣달(12)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한다. 양력에 비교하면 음력이 부정확하다는 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러한 음력을 보완하기 위하여 윤달을 둔 윤년이 있다. 윤달이 들어있는 해에는 반드시 섣달과 정월에 입춘이 거듭 들게 된다. 이러한 경우를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의 기후는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하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이 무렵의 기상이 매우 불규칙적이어서 뜻밖의 한파가 닥치기도 한다.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거나 입춘 추위 김장독 깬다는 속담은 이 무렵의 추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로서, 새해의 시작도 이날부터다. 이날 여러 가지 민속 행사가 행해지는데 그중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이는 일이 가장 일반적인 민속이다. 춘축(春祝입춘축(立春祝입춘방(立春榜)이라고도 부르는 입춘첩은 각 가정에서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이는 것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같은 문구가 주로 쓰였다.

▲ 대문에 붙인 입춘첩. '만사형통'과 '입춘대길'이 붙어 있다.

대문에 써 붙인 대구(對句)의 첩

 

· 壽如山 富如海(수여산 부여해) : 수명은 산과 같이 재물은 바다와 같이 되어라.

· 去千災 來百福(거천재 래백복) : .

·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대길 건양다경) : 입춘에 크게 길하고 계절 따라 경사가 많아라.

·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 부모님 오래 사시고 자손들 길이 번영하라.

· 天下太平春 四方無一事(천하태평춘 사방무일사) : 천하는 태평한 봄이고, 사방은 무사하다.

· 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 :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이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라.

· 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소지황금출 개문백복래) :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방문 도리에 붙인 단구(短句)의 첩

 

· 春到門前增富貴(춘도문전증부귀) : 봄이 문 앞에 오니 부귀가 늘어난다.

· 春光先到吉人家(춘광선도길인가) : 봄빛은 길한 사람 집에 먼저 온다.

· 上有好鳥相和鳴(상유호조상화명) :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 一春和氣滿門楣(일춘화기만문미) : 봄날의 화기가 문 위에 가득하다.

· 一振高名滿帝都(일진고명만제도) : 이름을 높이 날려 장안에 가득하라.

 

     - 정승모·황헌만, <한국의 세시풍속>(학고재, 2001) 중에서


입춘첩과 보리뿌리점

 

▲ 민화와 함께 붙은 입춘첩. 한국민속촌

입춘첩에는 한 해의 무사태평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더불어 어둡고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자축하는 뜻도 담겼다. 예전에는 가축도 범으로부터 해를 입지 말고 무병하기를 비는 뜻에서 외양간에도 춘축을 써 붙였으나 지금은 다 옛이야기가 되었다.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맥근(麥根)]를 뽑아 보고 그 뿌리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보리 뿌리 점[맥근점(麥根占)]을 쳤다. 안주인이 소복을 하고 지신(地神)에게 삼배를 올리고 보리 뿌리를 뽑는데 뿌리 세 가닥은 풍년, 두 가닥은 평년, 한 가닥은 흉년이 드는 것으로 믿었다. 또 부녀자들은 오곡을 솥에 넣고 볶을 때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해에 풍작을 이룬다고 믿기도 했다.

 

한편 입춘날을 받아서 하는 굿을 입춘굿이라고 한다. 이는 한 해의 횡수(橫數), 즉 액이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을 막고 재복(財福)이 왕성하여지라고 하는 굿으로 횡수막이굿이라고도 한다. 입춘굿은 제주도에서 성했는데 뭍에서도 갖가지 방식으로 행해졌다.

 


입춘(立春)
 
백석

이번 겨울은 소·대한(小大寒) 추위를 모두 천안 삼거리 마른 능수버들 아래 맞았다. 일이 있어 충청도 진천(鎭川)으로 가던 날에 모두 소대한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공교로이 타관 길에서 이런 이름 있는 날의 추위를 떨어가며 절기라는 것의 신묘한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였다.

며칠 내 마치 봄날같이 땅이 슬슬 녹이고 바람이 푹석하니 불다가도 저녁결에나 밤사이 날새(날씨)가 갑자기 차지는가 하면 으레 다음날은 대한이 으등등해서 왔다. 그동안만 해도 제법 봄비가 풋나물 내음새를 피우며 나리고 땅이 눅눅하니 밈(아지랑이)이 돌고 해서 이제는 분명히 봄인가고 했는데 간밤 또 갑자기 바람결이 차지고 눈발이 날리고 하더니 아침은 또 쫑쫑하니 날새가 매찬데 아니나 다를까 입춘이 온 것이었다. 나는 실상 해보다 달이 좋고 아침보다 저녁이 좋은 것같이 양력(陽曆)보다는 음력(陰曆)이 좋은데 생각하면 오고 가는 절기며 들고나는 밀물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신비롭게 얽히었는가.

 
절기가 뜰 적마다 나는 고향의 하늘과 땅과 사람과 눈과 비와 바람과 꽃들을 생각하는데 자연이 시골이 아름답듯이 세월도 시골이 아름답고 사람의 생활도 절대로 시골이 아름다울 것 같다. 이번 입춘이 먼 산 너머서 강 너머서 오는 때 우리 시골서는 이런 이야기가 왔다. 우리 고향서 제일가는 부자가 요즈음 저 혼자 밤에 남폿불 아래서 술을 먹다가 남포가 터지면서 불이 옷에 닿아 그만 타죽었다 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술을 먹되 누구와 같이 동무해 먹지 않았고 전등이나 켤 것이지 남포를 켰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는 시비(是非)가 이야기에 덧묻어 왔다. 또 하나는 역시 우리 고향에서 한때는 남의 셋방살이를 하며 좁쌀도 됫술로 말아먹고 지나던 사람이 금광(金鑛)에 돈을 모으고 얼마 전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사들였다는 이야긴데 여기에는 또 어떤 분풀이 같은 기운이 말끝에 채이었다.
 
오는 입춘과 같이 이런 이야기를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시골서는 요즈음 누구나 다들 입을 삐치거나 솜씨를 써가며 이 이야기들을 할 것인데 그럴 때마다 돈과 목숨과 생활과 경우와 운수 같은 것에 대해서 컴컴하니 분명치 못한 생각들이 때로는 춥게 때로는 더웁게 그들의 마음의 바람벽에 바람결같이 부딪치고 지나가는 즈음에 입춘이 마을 앞 벌에 마을 어귀에 마을 안에 마을의 대문간들에 온 것이라고.
 
이런 고향에서는 이번 입춘에도 몇 번이나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하며 입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해도 입춘이 넘으면 양지바른 둔덕에는 머리칼풀의 속움이 트는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만 들면 한겨울 내내 친했던 창애(짐승을 꾀어서 잡는 틀의 하나)와 썰매와 발구(마소에 메워 물건을 실어나르는 큰 썰매)며 꿩 노루 토끼에 멧돼지며 매 멧새 출출이(뱁새)들과 떠나는 것이 섭섭해서 소년의 마음은 흐리었던 것이다. 높고 무섭고 쓸쓸하고 슬픈 겨울이나 그래도 가깝고 정답고 흥성흥성해서 좋은 겨울이 그만 입춘이 와서 가버리는 것이라고 소년은 슬펐던 것이다.
 
그런 소년도 이제는 어느덧 가고 외투와 장갑과 마스크를 벗기가 가까워서 서글픈 마음이 없듯이 겨울이 가서 슬퍼하는 슬픔도 가버렸다. 입춘이 오기 전에 벌써 내 썰매도 멧새도 다 가버린 것이다.
 
입춘이 드는 날 나는 공일무휴(空日無休)의 오피스(office)에 지각을 하는 길에서 겨울이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지 못했으나 봄이 오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는 않았다. 봄의 그 현란한 낭만과 미 앞에 내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약하고 가난할 것인가. 입춘이 와서 봄이 오면 나는 어쩐지 까닭 모를 패부(敗負)의 그 읍울(悒鬱)을 느끼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입춘이 없는 세월 속에 있고 싶다.
 
   * 패부(敗負)의 읍울(悒鬱): 패배에 대한 근심으로 마음이 답답함.

                                                                                                                                     <조선일보>(1939년 2월)


학교에서 아이들과 같이 공부한 백석의 수필 입춘을 새로 읽어본다.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상실감을생활에 얽매인 채 살아가는 현재의 삶에 대해선 무감각함을 느끼고 있는 화자의 모습과 자신을 무심히 겹쳐본다.

 

봄은 ‘희망’인가

 

2013년에 입춘에 관해 쓴 글을 다시 읽으니 기분이 새롭다. 6년 전이라 기억도 아득한데, 그때는 몹시 추웠던 모양이다. 더는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아직도 봄은 멀다라고 썼다. 그러나 20192, 입춘을 코앞에 두고 나는 우정 봄이 멀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겨울이 춥지 않았다는 얘기다.

 

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희망의 전언이기도 하다. 단지 이번 겨울이 춥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오는 봄을 낙관하는 것일까. 아니면 저도 몰래 오는 봄에 대한 다른 기대와 소망을 여미고 있었던 것일까.

 

2019. 2. 3. 낮달

 

[()] 새로 ‘24절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봄 절기

우수(雨水), ‘봄바람새싹으로 깨어나는 봄

경칩 - , 우썩우썩 깨어나다

춘분, 태양은 적도 위를 바로 비추고

청명(淸明), 난만한 꽃의 향연, ‘한식도 이어진다

곡우(穀雨), 봄비는 촉촉이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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