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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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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여행]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 스시가 전부는 아니더라 [겨울 홋카이도 기행 ②] 오타루(小樽)와 비에이(美瑛)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북해도 여행의 둘째 날, 열시께 오타루를 향해 차를 몰았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데엔 제이알(JR: Japan Railway)로도, 승용차로도 한 시간 남짓이다. 길가는 물론, 눈은 중앙분리대를 성큼 높였고, 도로 위에도 양탄자처럼 깔렸다. “아빠, 어깨 좀 봐. 아주 굳으셨어”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가는데 뒷좌석의 딸애 눈에도 잔뜩 긴장한 내 모습이 확연했던 모양이다. 3박 4일 동안 운전대를 잡았으나 나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국내와 달리, 속도와 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카메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과속할 이유야 전혀 없었다. 그.. 2024. 2. 2.
[홋카이도 여행] 삿포로에서 만난 최고의 끼니는 편의점 도시락 [겨울 홋카이도 기행 ①] 삿포로 가족여행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2014년 설 대목 밑 가족 여행지로 삿포로를 선택한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딸은 대만을 또 다른 선택지로 제시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삿포로를 짚었다. 꼭 삿포로가 아니어도 좋았다. 거기가 홋카이도(北海道)라면 아무래도 좋았으리라. 나는 아마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중편소설 을 떠올렸을 것이다. 가와바타의 을 찾아서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 신호소(信號所)에 기차가 멎었다.” 일본 근대문학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의 첫머리다. 1968년 작가가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나는 초등학교 졸업반이.. 2024. 2. 1.
[오늘] 1933년 오늘-히틀러 총리 등장, 홀로코스트의 서막과 <나의 투쟁> 재출간 [역사 공부 ‘오늘’] 1933년 1월 30일, 나치당 아돌프 히틀러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1933년 1월 30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1929년의 경제 대공황 이후 큰 타격을 입은 경제와 민주 정당들이 속수무책인 가운데 나치당이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떠오르는 등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나치는 1926년 총선에서 선전, 괴벨스와 괴링 등 12명을, 1932년 총선에서는 전체 득표의 1/3을 차지하여 230명을 국회에 진출시켜 제1당이 되었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히틀러는 동유럽을 정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생존권을 동방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공산주의를 혐오하.. 2024. 1. 30.
‘피습 피의자’와 ‘피습범’ : 혹은 ‘습격 피의자’와 ‘습격범’ 방송에서의 맞춤법 오류도 꽤 심각하다 새해 벽두인 1월 2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부산에서 정치적 테러를 당했다. 살해 의도를 품고 이 대표에게 접근한 60대 남자(김씨)가 준비해 온 양날형 검에 목이 찔린 것이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이에 관한 보도가 줄을 잇던 때의 일이다. 웬 ‘피습 피의자’에다 ‘피습범’까지 함께 차로 이동하다가 관련 라디오 뉴스가 나오자, 후배 교사가 “뉴스마다 ‘피습 피의자’라고 한다”라며 ‘습격 피의자’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 맞아, 그렇구먼. 무심히 듣고 있다가 나는 동감을 표시했다. 보도의 ‘관행’ 때문일까. 방송은 무심히 이 상호 모순되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피습(被襲)’은 말 그대로 “습격을 받음”이니 이재명 대표의 상황이다, 그런데.. 2024. 1. 29.
[오늘] 1915년 연해주 13도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15년 1월 29일, 연해주 13도 의군 도총재 유인석 순국 1915년 1월 29일, 중국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국내외 의병의 단일 지휘계통을 지향한 연해주 13도의군(十三道義軍) 도총재를 지냈던 의병장 의암(毅菴)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895년 을미의병의 최고 지도자로 호좌(湖左) 의병진(陣)을 이끈 지 꼭 20년 만에 그는 망명지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향년 74세. 의암 유인석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그는 일찍이 위정척사(衛正斥邪)사상의 원류인 화서(華西) 이항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화서학파의 정통 도맥(道脈)을 이은 위정척사론자였다. 그는 화서의 문하에서 김평묵과 유중교로부터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을 익혔는데 만동묘 철.. 2024. 1. 29.
낱말의 발견 - 최애(最愛) ‘최애(最愛)’, ‘새말’이 아니라 오래된 낱말이다 ‘가장, 제일, 으뜸’의 의미 지닌 ‘최(最)’ ‘최(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가장, 제일’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최고위, 최우수, 최전방’처럼 쓰인다.(표준국어대사전) ‘최’는 ‘고·저·강·약·선·악’ 등의 한자와 어울려 ‘최고·최저·최강·최약·최선·최악’ 등의 단일 명사로도 쓴다. ‘최(最)’는 ‘가장, 제일, 으뜸’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다른 낱말보다 위계에서 앞선다. 한국 최고(最高)의 산은 백두산이라고 할 때, 백두산보다 높은 산은 없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players)’, ‘최고 중 최고(best of the best)’와 같은 영어식 표현의 영향으.. 2024. 1. 26.
[오늘] 아우슈비츠 해방, 독일과 일본의 역사 성찰의 방식 1945년 1월 27일, 소련군 진주로 아우슈비츠 해방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1945년 1월 27일, 소련의 붉은 군대는 아우슈비츠(Auschwitz)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7천5백여 명의 유태인들을 해방했다. 소련군이 진격해 오던 1월 중순부터 나치 친위대(SS)는 남아 있던 가스 학살 장치를 파괴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각 전선에서 독일군이 무너지면서 전쟁은 끝나 가고 있었고 연합군은 수복한 지역의 집단수용소를 폐쇄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전선 부근의 캠프에 있던 수감자들을 독일 내의 수용소에서 강제로 노역시키기 위해 급박하게 옮기기 시작했다. 수감자들은 처음엔 기차로, 나중엔 먼 거리를 강제로 도보로 행군해야 했다.. 2024. 1. 26.
[순국] ‘마시탄’ 사건의 이의준 순국하다 압록강에서 사이토 총독 공격한 이의준 의사 사형집행으로 순국 1929년 오늘(1월 25일), 1924년 5월, 압록강 중류인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馬嘶灘)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공격했던 참의부 소대장 이의준(李義俊,1893~1929)이 일제의 사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향년 36세. 스물아홉 살에 만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였으나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독립운동가는 사진 한 장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대신 그가 사살하고자 했던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통해 그의 삶을 역으로 돌아볼 뿐이다. 사이토 총독 공격한 마시탄 사건 이의준은 평북 위원(渭源) 사람이다. 성장기와 독립운동 투신 이전의 삶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922년 8월이다.. 2024. 1. 25.
[순국(殉國)] 1930년 오늘 - 청산리의 김좌진, 흉탄에 스러지다 1930년 1월 24일, 김좌진 장군 흉탄에 스러지다 1930년 새해를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활기차게 맞았다. 지난해 7월 김좌진의 신민부가 김종진, 이을규, 이강훈 등의 아나키스트와 연대하여 결성한 재만한족총연합회(한족총련)가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월 하순 어느 날, 그는 중동선(中東線) 산시역 근처에 있던 한족총련 소속의 도정공장으로 나갔다. 중동선 일대의 한인들이 생산한 수만 석의 미곡을 도정하여 위탁 판매하는 과정에서 중국 상인들에게 농단 당하지 않게 설치한 정미소였다. 이 공장에서 김좌진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소속의 한인 박상실의 총에 맞는다. 1930년 1월 24일 오후 4시였다. 향년 41세. 1920년 항일무장투쟁사에 빛나는 청산.. 2024. 1. 24.
[오늘] ‘피의 일요일’ -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불을 당기다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월 22일 차르 체제, 노동자들의 요구를 피로 짓밟다 1905년 1월 22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노동자들의 탄원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 성화 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차르의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평화 행진 유혈 진압 2주 전인 1월 9일에 개최된 청원 행진은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 게오르기 가폰 신부가 주도하여 진행되었다. 이들이 청원하고자 한 것은 노동자의 법적 보호, 당시 일본에 완전히 열세였던 러일전쟁의 중지, 헌법의 제정, 기본적 인권의 확립 등이었다.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제’였다. 이는 착취, 빈곤.. 2024. 1. 22.
[오늘] 청와대 습격, 1·21사태 일어나다 [역사공부 ‘오늘’]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 서울 침투 1968년 1월 21일 일요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 124부대 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하여 서울에 침투하였다. 서울 세검정 고개에 이른 이들은 경찰에게 저지당하자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뿔뿔이 도주했다. 이른바 ‘1·21사태’(김신조 사건)다. 이들 공작원이 정찰국장으로부터 청와대 습격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것은 1월 13일이었고, 황해북도 연산군의 제6 기지를 출발한 것은 사흘 후인 1월 16일 밤 10시였다. 이들은 17일에 한국군 복장으로 수다에프(PPS-43)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의 미군 제2보병사단 구역의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18일에는 꽁꽁 얼어붙어 있던 임.. 2024. 1. 21.
용산참사, 기억의 투쟁 용산참사 7주기, 기억의 투쟁 용산참사 유족들이 참사 당시 경찰 책임자였던 현재 경주 국회의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살인 진압 책임자’라며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내일(20일)이 참사 7주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간 거의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이른바 나는 ‘기억의 투쟁’을 생각한다. 물리적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시간의 경과는 문제의 해결을 담보해 주는 대신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고통과 진실을 바래게 한다. 하여, 기억의 투쟁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실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싸움이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잊어버리라고 권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기억한다고 해서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며 잊어버리고 한다. 희미해지는 기억만큼 그 .. 2024.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