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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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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사자성어는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 한글 전용 정착으로 ‘올해의 사자성어’도 빛이 바래고 있다 이 선정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기사를 읽으면서 세밑이 가까워졌음을 알았다. 한 해의 간단치 않은 곡절을 네 글자의 한자어로 줄이는 이 기획의 역사는 마침내 20년을 넘겼다. 복잡다단한 한 해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네 자로 줄이는 게 가당찮다는 반론도 있지만, ‘올해의 사자성어’가 화제가 되는 것은 이 말이 머금고 있는 뜻이 예사롭지 않아서다. ‘2021 올해의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 올해의 사자성어는 후보 18개 가운데 예비심사단 심사와 전국 교수 설문 조사를 거쳐서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선정됐다. 묘서동처는 교수 514명(29.2%)의 추천을 받아 인곤마핍(사람과 말이 모두 지쳐 피곤함, 371표·21.1%), 이전투구.. 2021. 12. 27.
경상도에선 ‘욕보시게’도 인사다 ‘공감’의 관계학 ‘욕보시게’ 경상도 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게 몹시 투박하고 거칠다는 점이다. 그것은 선의나 긍정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 한 시트콤에서도 소개된 ‘문디(문둥이)’라는 표현은 그 좋은 예다. 지금은 ‘한센병’, ‘한센인’으로 순화되었지만 ‘문디’는 천형으로까지 불리었던 무서운 병이었다. 당연히 그런 병을 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금기라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경상도 사람들은 그 말을 쉬 입에 올린다. 그 말은 대상에 대한 미움을 드러내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예도 있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표현으로 더 많이 쓰인다. 경상도 말의 ‘문디’ 무관한 사이에서 상대방이 다소 얄미운 말이나 행동을 한다. 그런데도 그게 그리 싫지.. 2021. 12. 26.
이인직, 이완용의 비서로 한일병합 주도 최초의 신소설 의 작가 이인직도 친일 부역자였다 이인직(李仁稙, 1862~1916)은 국문학사를 배우는 우리 중고생들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작가다. 그는 최초의 신소설인 『혈(血)의 누(淚)』(1906)를 비롯하여 『귀(鬼)의 성(聲)』, 『은세계(銀世界)』, 『모란봉』을 쓴 개화기 문학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짝지어 ‘이인직의 『혈의 누』’를 외운다. 『혈의 누』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지만, 정작 그걸 읽어 본 아이들은 없다. 아마 이 점은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0년도 전에 쓰인 낯선 문체와 형식의 소설을 오늘 다시 읽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첫 신체시를 쓴 최남선,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의 주요한, 최초의 현대소.. 2021. 12. 25.
눈, ‘설렘과 축복’에서 ‘불편’과 ‘불결’로 ‘축복’에서 ‘불편’으로 바뀐 눈, 혹은 세월 올 연말은 ‘눈’이 풍성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성탄절 이후에도 드문드문 눈이 내렸다. 이번 주만 하더라도 화요일에 이어 오늘 또 적지 않은 눈이 내렸다. 나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눈길을 걸어서 출근했다. 뉴스 화면을 장식할 만큼의 폭설도 아니었고, 출근길의 교통 마비도 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출근길로 나섰던 것 같다. 남부라곤 하지만 경북 북부여서 중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지역인데도 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은 매우 드물다. 기껏해야 싸락눈이 날리거나 함박눈이 내린다 해도 쌓일 겨를도 없이 녹아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눈, 한겨울의 ‘설렘’과 ‘축복’ 눈 소식에 아이들은 반색한다. 어른들.. 2021. 12. 24.
문학 교사가 만난 작가 현진건 한국 사실주의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대구 출신 소설가 현진건 빙허(憑虛)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의 소설을 처음 만난 게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중학교로 진학한 1960년대의 마지막 해다. 그때 나는 전기 입시에 실패하고 후기인 대명동 ‘야시골’의 산등성이에 있는 공립 중학교에 들어갔다. 하교할 때마다 들르던 도서실에서 닥치는 대로 읽어댄 한국단편문학전집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중1, 교과서에서 만난 현진건 당시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한국문학의 흐름」이라는 단원을 통하여 우리는 시인 작가들의 아호와 이름을 섭렵했는데, 현진건은 그 목록의 앞부분에, 꽤 길게 소개된 작가였다. 소개된 작품은 「빈처(貧妻)」와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이었는데 정작 .. 2021. 12. 23.
“교장이 수업하면 학교가 혼란에 빠진다”고? 경기도 교육청의 관리자 수업 제도화 논란 아침 출근길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라디오를 켜 놓는다. 8시 전후엔 대개 채널마다 뉴스지만 나는 ‘김현정의 뉴스쇼’ 때부터 채널을 로 고정해 놓았다. 며칠 전(18일), 김현정 대신에 박재홍이 진행하는 ‘뉴스쇼’는 경기도 교육청의 ‘교장 수업 논란’을 다루었다.[기사 바로 가기 ☞] 경기도 교육청에서 도입한다는 교장, 교감 등 관리자의 수업 참여 제도에 대해서 나는 흥미도 없을뿐더러 아는 것도 거의 없다. 물론 그런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동기가 무엇인지, 제도가 가져올 학교의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망하지도 못한다. 경기도 교육청, ‘교장 수업’ 논란 뉴스쇼의 초대 손님은 찬성 의견의 현직 초등학교 교장(송병일·고양시 상탄초)부터 나왔다. 5학년 역사 수업과 6.. 2021. 12. 23.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그런다고 전교조가 죽을까? 이명박 정부의 졸렬한 교원노조 정책,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난데없는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어제 지회에서 실시한 2010년도 지회장 선거가 있었다. 조합원 교사들은 쉬는 시간마다 학년 교무실에 마련된 투표소에 잠깐씩 들러 한 표를 행사했다. 예년처럼 단독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였지만, 분회에서는 정작 투표율보다는 함께 진행한 조합비 원천징수 동의서 작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새삼스럽게 조합비 원천징수 동의서가 튀어나온 이유는 참 민망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멀쩡하게 잘 내어 오던 ‘조합비 징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되었는데 이 새 ‘규정’의 핵심은 노동조합비 원천징수에 관한 조항이다. 조합 가입만 확인되면 일괄.. 2021. 12. 22.
민중?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다 2007년 17대선은 끝나고 대통령 선거가 마감되었다. 사상 최저의 투표율인데도 당선자와 차점자의 표차는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만들면서 이 정책과 계급적 이해도 실종되어 버린 ‘민의의 축제’는 끝났다. 당선자가 누리는 압승의 기쁨 건너편에는 패배한 낙선자들의 부끄러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대선의 화두는 ‘경제’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객관적 경제 지표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지난 5년 내내 저조했고 양극화는 깊어졌던 탓이다. 그래서인가, 유권자들은 ‘경제’를 중심에 두고 일찌감치 CEO 출신의 한 후보를 지지했고, 대선 기간 내내 드러난 이 후보와 관련된 여러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당시 가장 유력했던 후보가 낙마한 것은 두 아들.. 2021. 12. 21.
18대 대선 다음 날 아침에 제18대 대통령선거 다음날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선거일 저녁에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서 나는 우리가 부질없는 희망의 덫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예측 결과가 있었지만 나는 8시쯤 자리에 들었다. 부질없음에 다시 부질없음을 더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까무룩 선잠에 빠져 있다가 10시쯤 깨어보니 이미 예측은 사실이 되어 있었다. 딸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아내는 무심한 표정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뉴스 몇 개를 읽다가 아내와 함께 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신문의 선거 관련 기사를 나는 건성건성 넘겼다. 승패가 갈리고 나면 이런저런 관전평, 승부를 가른 원인 분석이 넘친다. 하나같이 날카롭고 논리적인 분석 기사다. 마지막 면에 실린 곽병찬 논설위.. 2021. 12. 20.
박영희, 문학도 이데올로기도 모두 잊힌 문인 달빛이 가장 거리낌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여 달빛으로 쉬지 않고 쌓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빈 나의 마음은 이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한숨과 눈물과 후회와 분노로 앓는 내 마음의 임종(臨終)이 끝나려 할 때 내 병실로는 어여쁜 세 처녀가 들어오면서 —당신의 앓는 가슴 위에 우리의 손을 대라고 달님이 우리를 보냈나이다.— 이때로부터 나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희고 흰 사랑에 피가 묻음을 알았도다. 나는 고마워서 그 처녀들의 이름을 물을 때 —나는 ‘슬픔’이라 하나이다. 나는 ‘두려움’이라 하나이다. 나는 ‘안일(安逸)’이라고 부르나이다.— 그들의 손은 아픈 내 가슴 위에 고요히 닿도다. 이때로부터 내 마음이 미치게 된.. 2021. 12. 19.
‘봉사활동’을 생각한다 점수로 계량된 봉사, 과장과 포장 통계청장이 발행한 ‘봉사활동확인서’가 도착했다. 그 전에 이미 아이들에게서 저마다 개인별로 출력한 확인서를 받았지만 최종적으로 이 국가기관의 장이 아이들의 ‘봉사활동’을 증빙하는 서류를 보내온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 29명 가운데 27명이 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단다. “세월 좋구나. 국가기관에서조차 너희들 봉사활동을 보태주는구나…….” 나는 좀 심드렁하게 말하고 말았지, 기실 기분은 좀 씁쓸했다. ‘2010 인구 주택 총조사’가 진행되면서 통계청이 중고생들의 ‘인터넷 조사 참여 및 홍보’ 활동을 봉사활동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이 조사에 참여한 게 통계청의 일손을 얼마나 덜었는지는 알 수 없다. 5분 남짓에 2시간 봉사 인정? 그러나 아이들이 .. 2021. 12. 18.
공부 못 하면 굶어라? 대입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지원비도 수능 성적 6등급 이상만 지급 아침에 를 읽다가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오늘 자 8면에 실린 기사 제목은 “수능성적 낮다고 ‘빈곤층 생활비’ 끊겠다니…”다. 교과부가 대학에 입학한 기초수급자에게 지원하는 200만 원의 생활지원비는 ‘수능 3개 영역에서 6등급(전체 9등급) 이상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세 과목 모두 상위 77% 안에 들어야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지원비는 정부가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도입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무상장학금(연간 450만 원) 혜택을 전액 삭감하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일반 학생과 마찬가지로 학자금 대출 이자를 연 5.8% 수준에서 부담하도록 한데 따른 제도다. 대신 이들에게는 생활지원비 명목으.. 2021.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