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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교단(1984~2016)에서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그런다고 전교조가 죽을까?

by 낮달2018 2021.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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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졸렬한 교원노조 정책,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 <교육희망> 만평 ⓒ 정평한

난데없는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어제 지회에서 실시한 2010년도 지회장 선거가 있었다. 조합원 교사들은 쉬는 시간마다 학년 교무실에 마련된 투표소에 잠깐씩 들러 한 표를 행사했다. 예년처럼 단독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였지만, 분회에서는 정작 투표율보다는 함께 진행한 조합비 원천징수 동의서 작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새삼스럽게 조합비 원천징수 동의서가 튀어나온 이유는 참 민망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멀쩡하게 잘 내어 오던 ‘조합비 징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공무원보수규정’을 개정되었는데 이 새 ‘규정’의 핵심은 노동조합비 원천징수에 관한 조항이다. 조합 가입만 확인되면 일괄 원천 징수해 주던 노동조합비를 ‘본인이 서면으로 동의할 때만 허용’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향한 정부의 탄압과 도발은 이처럼 매우 졸렬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집권 세력의 사전에 ‘노동’도 ‘노동조합’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모든 사고와 정책에서 ‘자본’과 ‘사용자’의 이해를 우선순위에 두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박멸해야 하는 ‘악’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다.

 

정부는 노조의 각종 활동에 발목을 잡는 것을 비롯하여 통합공무원노조의 위원장을 해임하는 등의 방식으로 공무원노조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 오고 있다.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시국선언 전교조 간부들을 중징계하고 이 징계를 미루고 있는 경기도 교육감을 직무 유기로 고발하는 등 전교조에 대한 압박도 가속화되고 있다.

 

조합비 원천징수를 문제 삼은 것은 어떻게 하면 노동조합 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그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했던 당국이 찾은 묘수인 셈이다. 정부는 ‘공무원보수규정’ 개정 이유를 ‘공무원들의 재산권 침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규정은 모든 공무원 노동조합에 일괄 적용되지 않는다.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겨냥한 졸렬한 탄압

 

▲ <교육희망> 만평 ⓒ 정평한

이 규정은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인 전국체신노조와 국립의료원노조를 대상에서 제외해 이들 노조는 앞으로도 동의서 없이 조합비를 원천 징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입법예고 안에는 없었던, 최종 개정안에 삽입된 특례조항을 통해서다. 결국 이번 개정이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돈줄을 막고 조합원 수를 줄여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력을 저해시키려는 게 본질이라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이 높은 이유다.

 

정부 관계자가 이번 조치로 ‘조합원 20% 감소를 확신한다’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은 것도 이 개정이 교묘한 방법으로 노조를 무력화하겠다는 저의를 담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조치는 단순히 원천징수의 방식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전국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조합원들은 내년 1월1일부터 조합비를 내려면 1년 단위로 해마다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동의서를 써서 내야 한다. 이렇게 조합원이 조합비 납부를 사용자에게 동의서로 제출하게 하는 것은 사실상 사용자에게 매년 개개인의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행정안전부의 입법예고에 대해 낸 의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 보수 규정 때문에 사실상 1년마다 조합비 납부 여부를 다시금 결정하도록 강제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이는 노조 가입 및 활동에 대한 조합원의 의사결정에 사용자가 부당하게 개입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 이는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할 뿐 아니라 노조활동에 대한 부당한 지배·개입으로서 부당노동행위의 소지가 높다.

 

- 조합비 납부 방식은 노조 규약 및 단체협약에 따라 결정될 사항이며 조합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조 가입 시점부터 탈퇴 시까지 조합비를 납부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 의무의 이행 여부는 노조 활동에 대한 평가 등을 근거로 조합원의 자유 의지에 따라 결정될 사항이다.

▲ 동의서와 조합원 가입을 권유하는 선전지

행안부에서 이 보수 규정의 시행령을 공포하고 동의서 양식을 내놓은 게 지난 12월 7일이다. 주어진 시간은 20여 일 정도지만 12월 20일이 넘으면 대다수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니 전교조 각 분회에 주어진 시간은 열흘 남짓에 그친다. 자연 전국 지부마다, 지회마다, 분회마다 기한 내에 동의서 작성하는 일 화급한 과제가 되었다.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실소했지만, 정부의 꼼수가 일부에서는 먹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이 문제가 정부의 기대대로 조합원 수의 현저한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지회와의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소규모 학교 분회는 연결이 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현재,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우리 학교 분회는 100% 동의서를 썼다.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분회도 마찬가지다. 투표와 동의서 작성이 끝난 뒤, 분회장에게 수고했다고 치하했더니 분회장은 반은 농조로 사실은 어젯밤 잠을 설쳤다고 고백했다.

 

학교 단위 전교조 조직(분회)의 활동력이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 분회에서 조합원들은 조직적 동일성을 견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비록 가시적인 공동행동이나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 ‘조합원이 된 이유’는 명확한 것이다.

 

조직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가 그 가속도가 빠지는 시기에 이미 조직적 동일성을 갖지 못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조직에서 빠져 버렸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현재도 조합원의 지위에 있는 교사들은 단순히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조합에 가입한 이들은 아니다.

 

조합원 20% 감소? 누구 맘대로…

 

대부분 평조합원들은 자신이 분회나 지회 등 조직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긴 하지만, 조합원이라는 신분을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전교조가 가진 대의와 그 역사성에 동의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회와 지부 쪽에도 물어봤더니 ‘걱정할 거 없다’고 한다. ‘전혀 빠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우려할 건 없다’라는 것이다. 빠지는 쪽은 ‘승진’을 고려한 이들 일부, 이전부터 탈퇴하려 했으나 기회가 없었던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소수지만 새로 가입하는 교사들도 있으니 조만간 교육부의 ‘20% 감소’론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겠다.

▲ <교육희망> 만평 ⓒ 정평한

전교조는 ‘현실 교육’에 있어서 일종의 ‘역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 현장의 모순이 첨예해질수록, 개혁의 필요성이 증대할수록 전교조의 활동력과 기대가 높아진다. 반대로 교단의 민주화가 일정하게 진행되고 모순이나 문제가 느슨해질수록 그것은 낮아지는 형태로 그 역설은 작용하는 것이다.

 

전교조는 꼭 스무 해 전에도 누적된 교육모순을 뚫고 참교육의 깃발을 올렸다. 2009년 현재, 시장과 경제 논리로 황폐해져 가는 교육모순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비슷한 경로로 진행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이 변했다 해도 ‘사랑과 믿음과 배움의 공동체’로서의 학교를 꿈꾸는 교사들의 지향은 쉬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9. 12.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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