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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민중?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다

by 낮달2018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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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7대선은 끝나고

▲투표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통령 선거가 마감되었다. 사상 최저의 투표율인데도 당선자와 차점자의 표차는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만들면서 이 정책과 계급적 이해도 실종되어 버린 ‘민의의 축제’는 끝났다. 당선자가 누리는 압승의 기쁨 건너편에는 패배한 낙선자들의 부끄러움과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대선의 화두는 ‘경제’였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객관적 경제 지표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지난 5년 내내 저조했고 양극화는 깊어졌던 탓이다. 그래서인가, 유권자들은 ‘경제’를 중심에 두고 일찌감치 CEO 출신의 한 후보를 지지했고, 대선 기간 내내 드러난 이 후보와 관련된 여러 부패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철회하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당시 가장 유력했던 후보가 낙마한 것은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 때문이었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도덕성 여부를 지지의 주요한 잣대로 삼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후, 유권자들은 ‘의혹 따위는 어쨌든 그는 우리 경제를 살릴 거’라는 불투명한 전망에 모두를 건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는 의혹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묻지 마 지지’로 나타났다.

 

일부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서 이 ‘이상 지지’에 관한 푸념들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성싶다. 그 푸념은 ‘국민 노망론’이나 ‘가짜 유권자론’을 거쳐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론으로 귀결되곤 했다. 그게 하 답답한 나머지 내뱉는 흰소리임은 틀림없지만, 마냥 흰소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감정의 일단은 쉬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새삼스럽게 이 저무는 2007년에 쉬 풀리지 않는 화두가 되어 사람들에게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대체 ‘민중’은 누구인가.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전적 정의는 거칠게 그것을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가리킨다고 정의한다. 물론 ‘민중’이란 개념의 스펙트럼은 훨씬 다양하고 중층적이다.

 

‘역사를 창조해 왔지만,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지배층에 의해서 억압되어온 사람’으로 민중을 이해하는 것은 다소 소극적 인식이다. ‘근대사회 이후 특수한 역사적 과정에서 자신의 억압되고 훼손된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을 보인 사람’이라는 정의는 그보다 훨씬 적극적인 정의로 볼 수 있을까.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민중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의 오류를 지적한다. 민중을 불우한 존재로 바라보든, 지나치게 신성시하려든 그것은 다른 형태의 감상주의라는 것이다.

 

‘감상’이라는 태도로 민중을 바라보는 한, 민중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의 지위를 벗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을 역사의 주체라고 추키면서도 늘 자신과 그것을 구분하려는 태도의 다른 표현인 까닭이다. 늘 ‘과학적 사고’를 되뇌면서도 우리는 늘 그 감상주의의 언저리를 빙빙 돌고만 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지나간 세기 이 땅은 민중의 시대였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그들은 격동하는 역사의 당당한 주체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통해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등 시대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민중은 변혁의 대의명분이었고, 그 주체이면서 변혁의 과실을 가져갈 객체이기도 했다. 지난 세기 이 땅에서 타오른 모든 저항과 투쟁에서 민중은 ‘고갱이’였고 알파요, 오메가였다. 민중이 주축이 되었던 4·19 혁명과 6·10 항쟁은 이후 억압적이고 권위적이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거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러나 혁명 1년 후에 박정희가 감행한 군사 쿠데타는 4·19를 미완의 혁명으로 만들어 버렸고, 6월항쟁의 성과로 얻은 직선제 헌법은 또 다른 쿠데타의 주역에게 권력을 헌납하는 걸로 귀결되었다. 저마다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꿈꾸었던 이들이 만난 것은 과두(寡頭) 지도 체제가 초래한, 적전 분열이라는 불행이었다.

 

권부 입성을 목전에 둔 듯한 일종의 의사(疑似) 현실 속에서 단일화 요구가 설 자리란 어차피 없었다. 새로운 권력을 자기 지역의 힘으로 동일시한 유권자들의 선택은 결국 7, 80년대 내내 강고하게 싸워 온 이들을 일종의 정신적 공황 속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 원치 않았던 결과 앞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눈[目]을 콕 찔러 앞을 못 보게 하면 되는 게 백성[民]’이라는 농지거리는 비뚤어진 자조였을지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싸웠는데 당신들은 그걸 이렇게 갚아주는가’ 하는 억하심정일 수도 있겠다.

 

10년 후, 그 ‘백성’들은 호남과 충청의 지역 연합에 힘입은 것이긴 하지만, 묵은 빚을 갚아 주었다. 헌정사에서 처음으로 정당 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시 5년 후, 그들은 대법관 출신의 주류 사회의 대표에게 거듭된 패배를 안겨 주었다. 일시적으로 퇴행하는 것처럼 보였던 역사는 끝내 제 흐름을 잊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고찰도 짓눌린 현실 앞에서 무력하다. 850만 명에 이른다는 비정규직과 400만 농민들, 그리고 대형할인점의 그늘에서 허우적대는 시장의 영세 상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왜 눈앞의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서 애써 눈을 감을까. 왜 저 의혹투성이의 부정직한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는가.

 

‘세상을 바꾸자는 민주노동당’의 절규는 왜 고작 3%, 70만 명에게만 들렸을까.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치닫는 마음은 자연스레 억하심정으로 발전한다.

 

“경제? 그게 사람이 바뀌면 금방 벌떡 일어서는 거야? 아마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사람들은 다시 ‘자르고 싶은 손목’ 타령을 하게 될걸.”

“목을 매고 바라보는 그놈의 ‘경제’가 마침내 자신들의 삶을 꼼짝없이 옥죄어 오는 부메랑이 되고 말걸?”

 

때로 이들은 ‘집단 최면’에 빠진 몽매한 우중(愚衆)으로 격하된다. 정작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구체적 이해도 없으면서도 ‘경멸과 증오의 문법’부터 학습한 ‘지역’의 정치적 선택에 ‘부화뇌동’하는 무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정 부분 분노와 허탈을 위로해 주기는 한다.

 

그러나 냉정히 한 걸음을 물러서면 나는, 우리는 모두 정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결코 일시적 감정이나 여론의 쏠림 따위로 떠다니는 부나방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실의 가장 냉정한 해석자이고 관찰자다. ‘나의 이해’를 중심에 둔 단순히 덧셈과 뺄셈의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탄핵 정국에 불같이 일어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이 정권을 지킨 이들이다.

 

“그 허상의 주변을 서성이며 민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실패가 설령 그들 각인(各人)의 의식과 역량의 부족에 연유된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그들 개인의 한계에 앞서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자체의 역사적 미숙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인식과 역량은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획득물이기 때문입니다. ”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2007년 겨울, ‘민중’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은 여전히 미덥지 못하고 목마르다. 나를 그들 속에 두지 못하고 가르는 습관의 벽도 여전히 높다. 그것은 쇠귀의 말대로 ‘민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실패’이며 동시에 우리의 ‘한계’이면서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역사적 미숙’인 것이다.

 

쇠귀는 또, ‘어떠한 사회이든 대중은 다수이며 동시에 선량하고 지혜롭’다고 말한다. 그것은 17대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전국 곳곳에서 비탄과 분노의 술잔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걸 무심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예기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혀 원하지 않았던 ‘현실’의 압력과 무게가 너무 높고 무겁다.

 

필요한 것은 시대와 역사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우리 자신과 ‘그들’ 사이를 가른 ‘금’을 지우는 일이다. 여전히 그들을 계몽하고 지도하려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습적 사고에서 자유로워지는 일도 필요할 터이다. ‘장구한 역사 속에 점철된 수많은 성공과 실패, 그 환희와 비탄의 기억들’은 화석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내연’하고 있으리라는 굳건한 믿음도 마땅히 필요한 일이겠다.

 

 

2007. 12.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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