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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풀꽃 이야기

가을, 코스모스, 들판

by 낮달2018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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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안동댐 부근에 코스모스밭이 있다 해 찾아갔다가 허탕을 쳤다. 어제 오전에 잠깐 교외로 나갔다. 봉정사로 들어가는 길 양쪽에 코스모스가 성기게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심한 사이 어느새 가을이 성큼 깊었나 보다. 들판에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줌과 망원, 단렌즈를 바꿔 가면서 코스모스를 사진기에 담았다. 사진을 찍게 된 지도 꽤 되었건만 나는 여전히 조리개를 많이 열어서 배경을 뭉개는 사진을 선호하는 편이다. 애당초 촬영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서겠지만 사진에 관한 생각은 여전히 초보의 그것을 벗지 못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접사로 찍으니 조리개를 죄어도 배경이 흐려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차피 사진은 ‘뻥’이다. 인간의 눈을 대신할 수 있는 렌즈 따위는 없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풍경을 담아도 사진은 은근한 울림을 갖는다. 그것은 피사체가 프레임에 갇히면서 환기해 주는 느낌과 인간의 맨눈이 담아내는 풍경의 차이다. 렌즈로 키우거나 정밀하게 묘사한 피사체는 낯설고 낯선 만큼 아름답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노랑과 녹색의 대비가 매우 강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을의 들판은 이런 빛깔의 대비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하늘빛과 분홍, 하양, 빨강의 코스모스 색깔의 조화는 맑고도 싱그럽다. 코스모스의 해맑은 꽃잎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들한들'이라는 부사어가 오직 이 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며칠 전에 읽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에는 ‘코스모스’ 얘기가 꽤 흥미롭게 담겼다. 저자는 옛 문인들은 국화를 즐겨 노래했지만 “현대인에게 국화 대신 가을날 서정을 북돋워 주는 것은 코스모스이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오래전부터 가을의 여정(旅情)을 일으키는 우리 국토의 표정으로 되었다.”고 주장한다.

 

동감이다. 숱한 봄꽃 가운데 진달래나 개나리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듯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코스모스는 손색이 없다. 어릴 적 등하굣길의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가에 줄지어 피어 있던 코스모스……. 수십 년이 훌쩍 흘렀어도 신작로가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을 뿐 거기 바람이 불 때마다 해맑게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물결은 그대로다.

 

유홍준은 코스모스가 외래종이라는 이유로 ‘이국적’이라고 폄하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그는 ‘300년 역사의 고추가 우리 음식의 상징이 된 것처럼 코스모스도 어느새 어엿한 귀화식물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물론이다. 나는 코스모스가 외래종이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으로 만나는 이 꽃의 가치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위키백과>에서 찾아보니 코스모스(Cosmos bipinnatus)는 멕시코 원산의 한해살이풀이다. 우리 고유어로는 ‘살사리꽃’이라 부른다는데 나로서는 금시초문이다. 미심쩍어서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살사리꽃’은 표제어로 당당히 올라 있다. 이럴 경우, 내가 말글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건 별 소용에 닿지 않는 일이다.

 

가을에 피는 꽃으로 알려졌지만, 기실, 이 꽃은 ‘6월부터 10월까지’ 핀다. 초여름에 일찌감치 핀 코스모스를 보며 ‘시절이 하 수상하다’느니 ‘날씨가 변화무쌍하니 꽃들도 헷갈리는가 보다’고 떤 너스레가 결국은 흰소리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위키백과>에는 ‘문학 속의 코스모스’라며 문태준 시인의 시 <흔들리다>의 일절을 소개하고 있다. 시 전문을 인터넷에서 찾아 읽었다. 1970년생. 이제 불혹을 갓 넘겼지만 내로라하는 시문학상을 석권(!)한 이 젊은 시인은 꽃을 바라보며 ‘중심과 주변의 넘나듦’을 노래한다.

 

<어부사시사>에서 고산 윤선도는 “무심한 백구는 내 좇는가 제 좇는가”하여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해 여름날의 한정을 노래했다. 이른바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다. 그러나 21세기의 젊은 시인이 그것을 노래하는 방식은 당연히 훨씬 ‘모던’한 것이다.

 

코스모스(Cosmos)는 우주를 뜻하는 그리스어 ‘κόσμος’에서 온 단어이다. 그래서 코스모스는 ‘카오스(Chaos, 혼돈)’와 대립하는 ‘질서, 조화’ 따위로 새기기도 한다. 유홍준이 윗글을, “이제 우리 강산의 가을날에는 산에는 들국화, 뜰엔 국화, 길가엔 코스모스로 어우러지며 ‘코스모스(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매조진 것은 그런 까닭이다.

 

10월로 가면서 온도가 많이 떨어졌다. 조만간 코스모스도 조락(凋落)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쇠잔, 이 가을의 ‘상실’은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이 보상할 터이다. 여름내 태풍과 장마를 이겨낸 낟알들의 인고가 장차 이 들판에 가져올 넉넉한 수확으로.

 

 

2011. 10.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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