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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아흔셋 친손자는 왜 1인시위에 나섰나

by 낮달2018 2019.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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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허위 선생 손자 허경성 부부, 왜 “신임 구미시장이 독립운동가 기리는 걸 방해하나”

▲ 오늘 구미시청 현관 앞에서 왕산선생의 친손자인 허경성 내외가 왕산루의 명칭 변경에 항의하는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

20일 오전 11시 30분부터 구미시청 현관 앞에서 90대 노부부가 펼침막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손수 마련해 온 펼침막에는 국한문을 섞어 쓴 "장세용 시장은 주민공청회로 확정한 왕산공원 명의를 일부 주민들의 진정을 핑계로 시장 임의로 변경한 만부당한 처사를 즉시 철회하시요 – 유손 허경성"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허위 친손자의 구미시청 1인 시위

 

이들 노부부는 구미가 낳은 독립운동가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5~1908)의 친손자인 허경성(93, 대구시 북구 산격동) 옹 부부다. 이들은 구미시가 전임 시장 때 주민공청회를 거쳐 결정한 국가산단 4단지 확장단지 10호(구미시 산동면 신당로) 내 근린공원에 조성한 누각 '왕산루'와 '왕산광장'의 이름을 바꾼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관련 기사 : '거꾸로 가는' 구미… 독립운동가 동상은 왜 창고에 방치됐나).

 

이름 변경의 이유는 '지역 민원'이었다. 지역의 몇몇 주민단체가 '왕산이 구미의 독립운동가이지만, 지역 정서에 맞지 않다'고 하면서 진정서를 제출한 것을 이른다. 구미시는 이를 받아들여 '왕산루'를 지역 이름을 딴 '산동루'로 바꿨다. 이후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강력한 항의를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아래 민문연)는 "산동은 구미시 지역이 아닌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추모 시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역 정서'의 정체는 무엇이냐?"라고 항의하면서 명칭 변경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구미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왕산루·왕산광장의 이름 변경을 장세용 구미시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주장한다. 구미경실련은 또 이름 변경의 명분이 없어지자, "구미시가 나서 산동면 주민협의회와 양포동 통장협의회, 인동장씨 대종회 등을 부추겨 수자원공사에 진정하도록 했다"라고 주장하면서 구미시장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아흔 노구를 이끌고 대구에서 온 허경성 부부는 입을 다문 채, 현관 앞에 힘겹게 서 있었다. 허 옹이 처음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할아버지를 기리는 일을 왜 신임 시장이 가로막는가?"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현관 주변에는 민문연 회원들과 시청 공무원들이 나와서 시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무 부서인 방성봉 건설교통국장은 구미시의 입장을 묻자, "이미 지난 7월 3일, 공원 이름은 '산동 물빛공원'으로, 누각은 '산동루'로 확정됐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현재 변경 철회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전병택 구미 민문연 회장은 "지금까지 시청은 물론, 지역 정당 관계자, 주민들에게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면 아무도 반박하지 못한다"면서 "한 마디 어떤 명분도 없는 '독립운동가 지우기'"라고 역설했다. 그의 말이다.

 

"왕산의 친손자께서 노구를 이끌고 이렇게 목숨 바쳐 독립운동한 할아버지와 가문의 14분을 기리는 일을 구미시장이 가로막는다고 1인 시위를 하게 된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특히 올해는 임정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현 정부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역사의 주류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구미시와 구미시장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왕산기념관을 운영하는 왕산기념사업회는 어떤 입장인가 물었다. 전병택 지회장은 "그들은 아무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기념관 운영을 위해 조직된 것으로 보이는 왕산기념사업회는 정작 유족을 배제한 채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애당초 왕산 일가의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그 독립 의지를 추모하고자 시작된, 예산 56억 원이 투입된 사업은 시장이 바뀌면서 그 원래 취지를 빼앗겨버렸다. 지금 독립운동가 14분의 동상은 제작회사 창고에 방치돼 있다. 구미시는 이를 임은동 왕산기념관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 일인시위에 나선 허경성 옹은 목숨 바쳐 독립운동하신 할아버지를 기리는 일을 왜 시장이 가로막는가?라고 항변한다.

결과적으로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보다 큰 2층 누각 왕산루 옆에서 2420평(8000㎡)의 왕산 광장을 바라봐야 할 동상이 임은동 산 중턱 비좁은 왕산기념관으로 들어가게 된 셈이다. 이를 '독립운동가 지우기'라고 규탄하는 게 과하다고 볼 수 없을 듯하다.

 

시장 면담에서 고성, 부인은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시위가 끝나가던 오후 1시께 출타 중이던 장세용 구미시장이 돌아와 허경성 부부를 시장실로 모시고 들어갔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구미 시민단체 회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장세용 구미시장은 고성으로 "더 잘해 드리려는데 왜 이러냐"라며 허경성 부부와 말다툼을 했다고. 말다툼 끝에 이창숙 옹(87, 허경성 옹 부인)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119구급차로 차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고 한다.

▲ 시장과 면담에서 내외는 시장으로부터 고성의 비난을 받고 부인이 몸을 가누지 못해 119구급대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 전병택

시민단체 회원들은 '전임 시장 때 결정한 사업을 후임 시장이 임의로 변경해 그 취지를 훼손한 것이 어떻게 더 잘해드리는 일이냐'며 어이없어하는 반응이다. 또한 '정작 주요한 현안들, 선거 때 공약한 새마을 테마공원이나 박정희 역사자료관 문제는 지역 정서와 보수층의 반발을 핑계로 내버려 둔 채, 멀쩡하게 잘 진행된 사업을 뒤집는 게 개혁 시장의 모습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반발과 독립운동가 선양의 명분 앞에 장세용 구미시장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못 이기는 척 반발을 수용해 사업 변경을 철회할까. 아니면 이미 결정된 것이라며 오불관언, 자기 뜻을 관철하려 할까. 그 선택에 따라,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지금껏 유보해온 장 시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9. 9. 20. 낮달

 

 

 

독립운동가의 아흔셋 친손자는 왜 1인시위에 나섰나

왕산 허위 선생 손자 허경성 부부 "왜 신임 구미시장이 독립운동가 기리는 걸 방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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