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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팔공산 ‘단풍길’

by 낮달2018 201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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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팔공산 ‘단풍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팔공산 단풍길’ 순례에 나섰다. [관련 글 : 그 숲길, ‘순정(純精)’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역시 수능 시험일인 7일, 동명을 거쳐 순환도로로 들어서면서 예전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퍼뜩 받았다. 역시 그랬다. 시간이 좀 늦은 것이다.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단풍은 조금씩 생기를 잃고 있는 듯해 허전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팔공산 단풍축제는 이미 지난 10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베풀어졌단다. 파계사부터 수태골을 지나 동화사에 이르는 16.3㎞에 걸친 팔공산 순환도로는 이미 수십만 명이 단풍을 즐기며 지나갔다는 뜻이겠다. 한발 늦은 탐방객들은 그래도 순환도로 곳곳에 차를 세우고 연도의 단풍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빴다.

 

대구의 진산 ‘팔공산’

 

팔공산은 삼국시대 이래 ‘공산’, 또는 ‘중악(中岳)’으로 기록되어 온 영남의 명산이다. 오악(五岳) 가운데 중악이라는 것은 곧 팔공산이 통일신라의 중심지적 위치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 신령스러운 땅은 불교가 수용되면서 자연스레 신라 불교의 성지가 되었고 신라 하대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원찰지로서 원찰(願刹) 조성과 원탑 조성 등 융성한 불교 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고려의 초조대장경이 부인사(符仁寺)에 봉안되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은해사(銀海寺)가 인종 태실 수보 사찰로, 파계사(把溪寺)가 영조의 장수를 비는 원찰로 조선 왕실의 보호를 받는 등 후대에도 이어졌다.

 

팔공산은 영산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방 세력의 거점이었기 때문에 신라·고려·조선 등 왕조를 달리하면서도 계속 왕실의 호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팔공산의 위상은 군위 삼존 석불을 비롯하여 동화사와 은해사 등 도처에 남겨진 불적(佛跡)과 사찰들에서 그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높이 1,193m, 총면적 122.08㎢에 달하는 팔공산(八公山)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 군위군, 칠곡군, 경산시에 걸쳐 있다.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대구의 진산(鎭山)은 산자락에 국보 2점, 보물 5점을 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아직 팔공산에 입문조차 못 하고 있다. 물론 나도 갓바위에 올랐고, 동화사와 파계사쯤은 둘러보았다. 어느 해 봄 서둘러 팔공산 자락을 한 바퀴 돈 게 다였다. [관련 기사 ‘팔공산 자락의 숲길’]지금은 순환도로를 돌아나가지만 언젠가 저 팔공산의 깊은 속살을 한번 더듬어 보리라고 마음먹으며 나는 11월의 팔공산, 그 스러지고 있는 단풍길을 떠났다.

 

 

 

2013. 11. 1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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