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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삼식(三食)이의 ‘가사노동’

by 낮달2018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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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생활자의 일상

▲ 퇴직 이후, 아내의 가사노동을 돕는 일이 제법 늘어났다.

퇴임한 지 얼추 1년 반이 지나며 연금생활자로의 일상은 얼마간 길이 났다. 퇴임 직후에만 해도 이런저런 생활의 변화를 몸과 마음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부조화가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제 몫을 하는 게 인간의 적응 능력인 것이다.

 

퇴직자 가운데서는 직장사회와 동료들과 교류가 끊어지면서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 나는 그게 괴롭지는 않다. 마지막 학교에서 근무하던 네 해 가까이 나는 스스로 고립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떠나는 연습을 거듭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다고 하기보다는 곤혹스러웠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10여 시간을 보냈던 학교를 떠나면서 이전에는 사적으로 쓰기 쉽지 않았던 낮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그런데 더는 ‘일’하지 않아도 되면서 온전히 내게 주어진 시간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퇴직 동료들은 꼼짝없이 혼자서 지내야 하는 이런 시간을 죽이는 걸 어려워했던 것 같다. 주변에 비슷한 처지인 이웃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10시간 내지는 12시간을 홀로 갈무리해야 하는 게 누구에겐 고역이었던가 본데, 내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아돌 것 같았던 시간이 기실 쓰려고 들면 모자라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삼일에 한편 꼴로 이런저런 글을 쓰는 일상은 퇴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출근해서 근무하면서도 유지했던 일상이었는데, 퇴임 후 시간이 늘었는데도 오히려 신문이나 책을 읽는 시간을 내는 게 버거울 때가 많았다는 얘기다.

 

어떻게 소일하고 지내냐는 주변 지인들에게 ‘백수가 과로사한다지 않느냐’고 되받는 까닭이 여기 있다. 물론 ‘과로사’는 농이다. 그것도 과한. 그러나 어떻게 자투리 글이나 쓰면서 소일하는데도 정작 시간이 모자라는 느낌에 쫓기는 이 미스터리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넘치는 시간, 모자란 시간의 미스터리

 

노년에 남편은 사회적 관계가 축소되는 반면 아내는 오히려 사회적 관계를 확장해 간다고 했던가.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나는 늘 집에 머물지만, 아내는 빠끔한 날이 없을 만큼 바쁘다. 걸려오는 전화도 심심찮고, 밥 약속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아내가 외출한 빈집을 혼자 지키는 날도 많다.

 

“설거지 내가 할게. 외출 준비하오. 청소도 해 놓을게. 빨래할 거 있는가?”
“있어요. 검은 거는 따로 돌려야 되는 거 알죠?”

 

아내가 서둘러 외출하는 날이면 나는 아침을 먹고 알아서 설거지를 한다. 그리고 아내가 나가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까지 마친다. 흰 빨래부터 먼저 돌리고, 이어 검은 빨래도 계속한다. (세탁기 작동법도 퇴직 후에 배웠다.)세탁기가 도는 동안,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나는 이태 전에 겨우 60을 넘겼지만, 우리만 해도 좀 낡은 세대다. 가부장적 세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지난 30년 넘게 일했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생계를 책임졌고 아내는 육아와 가사를 전담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가사를 거의 돕지 않았다. 집안일을 돕는 것은 거의 가물에 콩 나듯 했고 어쩌다 아내의 귀가가 늦어질 때 연락을 받고 밥을 넘겨 놓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어떤 문제의식도 갖지 않았다.

 

30대 초반에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고 힘들여 살게 되면서 비로소 가부장적 세계관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타고난 가부장 의식을 벗기는 쉽지 않은 것이어서 장성한 딸애는 어릴 때 본 아비를 역시 가부장의 모습으로 기억하곤 한다.

 

복직을 하고 마흔, 쉰 고개를 넘기면서 몸과 마음에 끼어 있던 힘을 좀 빼게 되었다. 가사노동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고, 가정에서의 여성의 지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은 그 시절에 쓴 ‘가사노동’ 관련 글이다.

 

· 주말 노동(2007/01/22)

· 아내들에게 바침, 문정희 <작은 부엌 노래>(2009/10/02)

· 가사노동,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2013/02/10)

 

빨래를 베란다 건조대에 널고 나서는 산을 오른다. 70분이나 80분쯤 걸리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정오가 가깝다. 씻고 나서 비록 ‘혼밥’이지만 점심상을 차려야 한다. 물론 이런 상황이 날마다 반복되는 것은 아니고 대체로 비슷한 패턴으로 하루가 흘러간다.

 

얼마 전 퇴직 동료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이런 일과를 주워섬기고서 ‘마땅히 남아야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때가 많다’고 했더니 한 선배 여교사가 그랬다.

 

“봐요. 집안일을 하니까 오전이 그렇게 속절없이 깨어지는 거야. 그게 종일 일해야 하는 전업주부들의 일상이라고요.”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근하고 나면 남편은 아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집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리라고 믿었던 아내가 종일 일에 치여 지낸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일이라고 며칠 전부터 청소기를 밀거나 걸레질을 할 때 오른팔 이두박근 쪽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하필 거기가 왜 아픈가 했더니 오른손잡이인 내가 청소기나 봉 걸레를 잡고 힘을 주는 데가 거기였다.

 

가사노동 흉내로 팔이 아파왔다

 

글쎄, 그게 말하자면 가사노동으로 인한 통증인 셈이다. 나이 들면서 여성들이 호소하곤 하는 여러 통증의 근원은 결국 여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출산이나, 육아, 가사노동 따위다. 평생 일을 하신 우리 어머니는 만년에 손가락 관절염으로 몹시 고생하셨다. 그게 어찌 비단 우리 어머니만의 일이겠는가.

 

집이 지저분해지지 않았는가 하는 걸 살피는 게 요즘 버릇이 되었다. 지저분한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지내던 과거완 달리 요즘은 이상하게 그게 한눈에 들어온다. 정작 깔끔을 떨던 아내는 외려 대범해졌다. 노화로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지면서 남녀의 마음도 바뀐 걸까.

 

일찍이 고정희 시인은 그의 연작시 ‘여성사 연구’ 가운데 한 편인 ‘우리 동네 구자명 씨’를 통해 여성이 떠받치는 한 식구의 안식을 노래했다. 여성의 희생은 아직도 잘 눈에 띄지 않는 팬지꽃으로나 비유되는 21세기 한국에서 이제 겨우 나는 이론으로 기억하던 가사노동을 가슴으로 느끼기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밥 지을 쌀을 물에 담가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세탁기 앞의 세탁물 바구니를 들여다보다가 빨래할 시기를 가늠해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다.

 

 

2017. 7. 2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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