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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톤섬으로 간 한글 ②

by 낮달2018 201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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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마까시(고마워요), 한글’ (MBC ‘뉴스 후’) 시청기

▲ MBC 뉴스 후 캡처, 이하 같음.(2009. 8. 20) ⓒ MBC

벌써 한글을 읽어내는 아이들

 

인도네시아의 한 소수민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선택했다는 소식을 전한 게 8월 7일이다. (한글, 인도네시아 부톤섬으로 가다) 어차피 매스컴에 의존한 기사였으니 우리 한글이 문자가 없는 한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 기록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는 내용이 고작이었다.

 

문화방송(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뉴스 후’가 ‘따리마까시(고마워요), 한글’이라는 방송을 내보낸 것은 지난 20일이다. 나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이 프로그램의 후반부를 시청했고, 나중에 토막 시간을 내어 ‘다시 보기’로 그 전편을 시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찌아찌아족이 사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를 현장 취재했다. 그리고 한글의 ‘경쟁력’을 짚어보고 ’한글 나눔 프로젝트‘를 문자 없는 소수 민족에게 성공적으로 전파하려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를 모색하고 있다.

 

한글로 만든 찌아찌아어 교과서도 보았지만, 막상 그걸 배우고 있는 이국의 어린이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고작 2주 전에 한글 공부를 시작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취재진이 쓴 한글을 읽어내면서 한글이 조금 어렵지만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글쎄, 우리가 처음 한글을 깨치던 때는 어땠을까. 시청자들은 찌아찌아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막 한글을 깨치는 자신의 모습을 아련하게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한글 교육을 받고 교과서 편찬도 도운 교사 아비딘은 아이들이 쉽게 한글을 따라 읽고 있다고 말한다. 담임 교사의 반응도 마찬가지. 한번 수업했을 뿐인데 아이들의 실력이 늘어서 읽는 것을 보니까 굉장히 빨리 배우는 것 같다고.

 

‘한글’, 뜻과 발음 변화 없이 전승할 수 있다

 

실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한글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즉 저희의 말을 표기하는 수단으로서 한글이라는 문자(형식)을 선택한 것뿐이다. 교과서에 있는 찌아찌아족의 전래동화 ‘을란도께은도께 마이 을라까까뽈루까(원숭이와 거북이)’는 한글이 이들의 문자 수단으로서 얼마나 유효할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취재진은 부족의 원로들과 부모들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었다. 이들은 억양은 다르지만 그게 자신들의 말로 된 이야기가 맞다고 했고, 부모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자신도 내용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족 원로의 말처럼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어서 전통, 역사, 문화를 기록하지 못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문자가 없는 찌아찌아어는 지금 조금씩 변형, 훼손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어린이들부터 찌아찌아어 단어를 잊어버리고 인도네시아 말을 쓰게 시작하면서 혼란이 온 것이다.

 

결국, 자기 언어의 보존을 위해서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공식문자로 선택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공용어를 표기하는 수단으로 ‘로마자’도 있고 ‘아랍어’도 일부 쓰고 있으나 이들 문자는 찌아찌아어를 제대로 표기할 수 없다고 한다. 찌아찌아어를 인도네시아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찌아찌아 말을 인도네시아어로 썼을 때는 읽는 방식이 다르고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서 후대에 가서 발음이 변하거나 뜻이 혼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글 표기는 이런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다. 교사 아비딘은 한글로 표기하면 뜻과 발음의 변화 없이 후대에도 똑같이 발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한글이 문자가 없는 민족들의 언어를 가장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훈민정음학회가 바우바우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지난해 7월. 올해 안으로 바우바우시에서는 훈민정음학회와 함께 코리아센터를 개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우바우시에서는 앞으로 ‘모든 학교에서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시내의 간판과 교통표지판에도 로마자, 아랍어와 함께 한글을 표기할 계획’이라고 한다.

 

방송은 이처럼 한글이 찌아찌아족의 공식문자로 채택된 저간의 사정을 살피면서 우리가 몰랐던 ‘한글의 경쟁력’을 새삼 확인해 보고 있다.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진행된, ‘문자 없이 말만 있는 언어’ 2900여 종에 가장 적합한 문자를 찾는 유네스코의 연구에서 한글이 최고의 평가를 받은 것은 결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한글, ‘경쟁력’ 있다

 

한글이 정보화 기술시대에 더 강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한글은 입력과 동시에 뜻이 전달되는 소리글자여서 컴퓨터에서도 다른 문자보다 유리한 것이다. 방송에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라는 세 단어 입력 시간을 비교해 본 결과 한글은 일본어나 중국어보다 입력량과 속도에서 훨씬 우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글은 자판을 24번 누르면 되었지만, 일본어는 31번, 중국어는 42번이나 눌러야 했다. 거기다 발음을 영어로 입력하여 이를 자국의 문자로 바꾸어야 하는 일본어와 중국어는 각각 세 번(일본)과 다섯 번(중국)의 변환을 거쳐야 했다.

이는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휴대폰 문자를 영어가 아니라 한글로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물론, 네팔인들도 영어가 아닌 한글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고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역시 별도의 변환 절차 없이 바로 뜻을 전할 수 있는 소리글자의 특성이 빛나는 대목이다.

 

소수 민족에게 한글을 전파하는 ‘한글의 세계화’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이 프로그램이 내린 결론은 곱씹어볼 만하다. 취재진은 ‘우리의 뛰어난 문화유산인 한글을 다른 민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인류적으로 봐도 소중한 도전’이라고 매긴다.

 

한글전파, ‘수출’이 아니라 ‘나눔’이다

 

또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문자로 선택하긴 했지만, 이는 시작일 뿐, 그 성패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본다. 민간단체가 수행하는 사업이어서 향후 소요될 비용이나 현지의 교육, 전문 인력의 양성 등이 숙제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문화, 특히 ‘문자의 전파’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은 전 세계 인구의 1%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는 6천여 종이나 된다. 그리고 2주일에 한 개꼴로 그들의 언어는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문자가 없어서 이들 언어의 사용자가 사라지면 그들의 역사, 정신, 문화도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의 전파는 ‘한글의 보급’이나 ‘한글의 수출’이 아니라 ‘나눔’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하면서 뉴스 후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한다.

 

“우월한 문화 상품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고 한글이 인류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찌아찌아족에 대한 한글전파가 중요한 시험무대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2009. 8.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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