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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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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복역한 독립운동가는 왜 ‘양복 수선공’으로 남았나 뤼순감옥 ‘장기수’ 독립운동가, 박희광 선생 50주기를 추모하며 구미 금오산도립공원으로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금오지(金烏池)가 끝나는 길목에서 금빛 동상 한 기를 만날 수 있다. 저수지를 등진 채 금오산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들고 있는 입상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하다. 더러 박정희로 오인되는 박희광 선생 동상 동상 아래 세로로 새긴 한자 휘호가 있지만, 으레 그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여기는 구미사람들도 적지 않다. 휘호를 쓴 이는 박정희지만, 동상의 주인공은 박희광(1901~1970) 의사다. 그는 일제강점기 펑톈성(奉天省)에서 보민회(保民會)와 일민단(日民團) 등 친일 부역자 숙청작업을 담당한 독립운동가다. 박희광은 박정희(1917~1979)보다 16년이나 연상이니 동년배라고 하기는 어렵다. .. 2020. 1. 25.
이문열, 다시 ‘홍위병’을 불러내다 작가 이문열의 지겨운 ‘홍위병론’, 철 지난 현실 인식 작가 이문열이 다시 ‘한 건’한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오늘 오전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 출연해 또 그 특유의 신념과 현실 인식을 피력한 것이다. ‘홍위병’과 ‘의병’에 이은 제3탄인 셈이다. 그의 현실이나 역사 인식의 범주라는 게 늘 거기서 거긴 것처럼 이번 발언도 ‘홍위병’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이번 발언의 요지는 옛 ‘홍위병들이 권력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해 각 분야에서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국회에서 MB악법 저지를 외치며 농성하고 있는 야당이나, ‘권력의 방송 장악’을 저지하기 위해 파업에 나선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은 모두 한통속에 불과하다. 민경욱 네. 참 어려운 질문을 제가 좀 드리겠습니다. .. 2020. 1. 24.
화가 이중섭, 서귀포의 기억 제주도 서귀포시 이중섭 미술관 답사기 도시는 어떤 형식으로 예술가들을 기억하고 기릴까. 괴테나 쇼팽이나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을 낳은 유럽의 도시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작가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상업적이고 천박하지 않은가 싶다. 지방자치 이후 각 지자체는 지역 출신의 예술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예술가의 이름을 딴 각종 문화제나 예술제 등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이를 관광자원으로 인식한 경제적 관점의 산물이었던 듯하다. 출신 예술가를 관광 상품화하여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의 이해는 눈에 보이는 기념관 등 건물을 짓고 격에 알맞지 않은 동상을 세우는 등의 사업으로 나타난다. 결국, 주변 풍경과의 조화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2020. 1. 23.
<도가니> , 야만의 세상, 혹은 성찰 실화 소재의 영화 며칠 전, 인근 복합상영관에서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영화 를 보았다. 그러려니 했지만, 시작 시각을 기다리는 내내 영화관 앞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예상을 웃도는 열기에 딸애와 나는 마주 보며 정말, 동의의 눈짓을 나누었다. 거기서 영화를 보러 온 지인을 두 사람이나 만났으니 가히 ‘도가니’의 열기는 뜨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간대(밤 8시)이긴 했지만 168석의 자리를 거의 채운 채 영화는 시작되었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관객으로 가득 찬 실내는 금방 후덥지근해져서 우리는 겉옷을 벗어야 했다. “안동에 오고 처음이네” “ 때도 아마 이 정도는 들어왔을걸요?” 영화가 ‘뜨고 있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다.. 2020. 1. 22.
고 박병준 선생을 추억함 교육 동지 박병준, 그는 너무 빨리 떠났다 죽음이 삶의 대립 항인 이상 그것은 언제나 낯설어야 마땅하다. 2·30대 팔팔했던 시절에는 ‘죽음’은 늘 ‘강 건너 불’ 같은 거였다. 때때로 만나는 지인의 부음도 지극한 ‘우연’일 뿐, 그것은 일상과는 무관한 특별한 무엇에 그쳤다. 그러나 40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죽음’을 비로소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돌연사’가 주변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인들의 부음을 ‘심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우울한 50대에 접어든다. 안부를 묻는 게 ‘건강’을 묻는 인사로 대치되고, 오랜만의 만남에서 나누는 것은 주변의 죽음이다. 아무개는 혈압으로 아무개는 심장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아직 ‘괜찮은 내 .. 2020. 1. 21.
강화도, 안개, 사람들 강화도에서 열린 시민기자 연수 1. 강화도 지지난 주에 강화(江華)를 다녀왔다. 초행이었다. 웬만하면 수학여행 따위로도 인연을 맺을 만한 동네였는데 나와 강화는 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화문석(花紋席)과 강화도 조약으로 불리는 병자수호조약, 전등사와 마니산, 왕실의 몽진과 고려대장경, 몽골의 침입과 삼별초, 외규장각과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 정족산성과 병인·신미 두 양요(洋擾), 운요호사건 등의 근대사의 일부로 강화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우고 그림이나 텍스트로 이해한 이미지일 뿐이다. 강화에서 전개되었던 역사적 사실도 구체적인 공간과 관련지은 이해는 아니며 ‘꽃무늬 돗자리[화문석(花紋席)]’도 마찬가지다. ‘강화’란 지명은 꽤 울림이 좋다. 멀쩡.. 2020. 1. 18.
<다이빙벨>, 나는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리뷰] 이상호·안해룡의 , ‘거대한 벽’과 ‘압도적 진실’ 사이 ‘다이빙벨(diving bell, 잠수종)은 바다 깊이 잠수하는 데 사용하는 단단한 챔버(chamber, 방)’다. 이 장비는 수중으로 내려갈 때 소수의 다이버들이 기지로 사용하거나 이동할 때 이용한다. (이상 ) 다이빙벨은 잠수사들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오랜 시간 수중 작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원리의 수중 구조 장비가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골든타임 72시간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다가 304명의 승객을 수장시킨 여객선 침몰사고의 실종자 구조에 다이빙벨이 가장 유용한 장비로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다이빙벨’로 드러난 ‘사실’과 ‘진실’ 4월 2.. 2020. 1. 17.
‘항구와 마도로스’, 기억 속의 노래들 1960년대의 대중가요와 유년 시절 생전 처음으로 유행가라고 듣고 배운 게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었다는 얘기는 일찌감치 한 바 있다. (☞ 바로 가기) 나는 그걸 삐삐선으로 공급되는 이른바 ‘유선 앰프 라디오’의 연속극을 통해서 배웠다. 애절한 이미자의 노래가 환기해 주는 남도의 정서 앞에 나는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남녀 혼성반이었던 학급이 남녀로 갈렸다. 새로 구성된 학급은 낯설었다. 인근 마을 아이들로 구성되었던 4학년 때까지의 학급과 달리 그보다 훨씬 먼 마을의, 키도 크고 인상도 다분히 고약한 사내아이들이 한 반이 된 것이다. 벌어진 잇새로 침을 갈기거나 거친 욕설을 예사롭게 쓰는 이 새 동무들 앞에서 나는 좀 긴장했던 것 같다. 낯선 5.. 2020. 1. 16.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을 보내며 1941 ~ 2016년 1월 15일 쇠귀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다. 나는 어젯밤 늦게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난 직후였던 듯하다. 아,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어.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아내가 연세가 어떻게 되우, 하고 물었었다. 일흔다섯인데……, 하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당시 창간된 의 지면에서였다. 선생이 옥중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글은 그때까지 내가 읽은 어떤 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기품과 향훈을 그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에는 지혜(이성)와 감성이 가장 완벽하고 조화롭게 만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드넓은 인식의 지평은.. 2020. 1. 14.
새해에 듣는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조해일의 노랫말, 해바라기의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2011년 새해 첫날, 1면에 실린 사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연평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한 할머니가 천주교 연평도 성당에서 주름진 두 손으로 드리는 기도의 사진이다. 그 기도는 물론 평화와 안전을 비는 것이었을 것이다. 35면 사설은 “평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피워야 한다”였다. 소제목까지 붙인 이 사설에는 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염원이 오롯이 실려 있었다. 천천히 사설을 읽어 가는데 1면의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올리는 기도의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듯했다. 사설은 지난해 연평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이후 계속되는 대치와 위기상황을 지적하면서 시방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남북 간 평화와 화해라고 힘주어.. 2020. 1. 12.
소설과 삶 - 작가 ‘공선옥’ 읽기 소설가 공선옥,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넉넉하고 거짓 없는 시선 작가 공선옥에 관한 글을 한 편 쓰겠다고 결심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아마 소설집 2020. 1. 10.
병역거부, 우리 안의 ‘편견’과 ‘낯섦’을 넘어 [서평] 민용근의 해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선 600∼700명의 젊은이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고 있다. 성년에 이르기까지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온 이 청년들이 감옥으로 가는 것은 이들이 이 나라의 병역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 또는 소집 기일부터 각호의 기간이 경과하여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불응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그들을 감옥에 가두는 근거다. 보통 입영이나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는 ‘병역 기피’로 불린다. 그러나 이 청년들은 극구 자신들의 행위를 ‘병역거부’로 표현하며 그 앞에 굳이 ‘양심에 따른’이라는 구절을 덧붙인다. 이들이 말하는 ‘양심’은 ‘자신의 내.. 2020.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