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 생활의 복원] 재활용 쓰레기 배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들거나 재활용 쓰레기를 가득 담은 수레를 밀고 가는 남자들을 만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출근 시간에 쓰레기봉투를 쓰레기장의 폐기물 보관 용기에 서둘러 집어넣고 종종걸음을 치는 젊은 남자를 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제 더는 집안일이 여자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하는 일이 된 것이다.
퇴직하기 전에만 해도 내가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내가 바빠서 손이 모자라거나, 내가 하던 작업을 정리하느라고 가끔 쓰레기장에 들르는 일이 고작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손수 버린 기억은 따로 없다. 뒷날, 아내는 '종일 일하다 들어온 이한테 그거까지 해 달라고 하기가 거시기해서' 차마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그건 전업주부인 아내가 벌이로 고단한 남편을 배려한 것이었을 뿐, 아내가 남편에게 그런 일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가 집일을 돕기 시작하자, 아내는 설거지나 빨래 널기 따위를 딸애보다 내게 요구하는 일이 훨씬 많으니 말이다. 아내의 생각은 단순했지만, 공평했다. 애는 종일 일하고 왔잖우?
시간 많아 아내 수고를 덜고 있다
내가 쓰레기 처리하는 일을 몸에 붙이게 된 것도 청소를 시작할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파트 우리 동의 이웃들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거나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재활용 쓰레기를 수레에 싣고 승강기에 오르는 내 모습을 꽤 자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쓰레기통을 든 늙수그레한 초로의 사내가 데면데면하기는 해도, 제대로 집일을 돕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런 내 모습이 좀 안돼 보였을까, 나보다 연상인 우리 동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는 '용하시다'라며 공치사를 했다. 나는 "아내가 죽 해 온 일인데, 이제는 내가 시간이 많아서 하고 있다"라고 말해 주었고, 아주머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대화일지 모르지만 여기는 아직도 가부장의 권위가 살아 있는 경상도인 것이다.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로 재사용, 재활용 자원을 늘려 가는 것이 폐기물 오염방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또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는 비닐류가 인류에 어떤 재앙이 되고 있는지 등에 문제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단지 현 단계에서 생활인으로서, 우리 몫의 실천이 필요하면 거기 동참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환경운동연합이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배포한 팸플릿에서 나는 담배 필터가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이 수십 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창 줄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라 나는 산에 가 피운 담배의 필터를 떼어내 허리 색(sack)에 담았는데, 하산하면 색이 필터로 가득 차곤 했다.
산이나 들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가져간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것도 오래 몸에 붙인 일이다. 어려서부터 그걸 보면서 자란 아이들도 두말하지 않고 나를 따라주었다. 동료들과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도 우리가 만든 쓰레기를 따로 종이상자에 담아서 내려온 것도 그게 가능한 실천의 범주 안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플라스틱 쓰레기가 생태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먹이사슬을 타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인체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제법 오래전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용기에다 던져두었다가 버렸던 필름류를 싱크대에 따로 걸어놓은 비닐봉지에 모으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생산하는 비닐 쓰레기가 만만찮다는 걸 알았다. 쓰레기 분리배출이 설렁설렁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깨달은 건 그 무렵이었다.
공공선을 위한 사소한 실천
쓰레기 처리 가운데 종량제 봉투에 넣는 일반 쓰레기와 전용 용기에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 배출은 과정이 지저분할 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유리와 플라스틱, 종이와 캔류 등으로 분류하여 지정된 수거함에 집어넣는 거로만 이해한다면 재활용 쓰레기 배출은 쉽고도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만만치 않다. 쓰레기가 말 그대로 '재활용'되려면 그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쓰레기에 분리배출 표시제도에 따른 표시 도안은 이 과정의 '첫 관문'에 불과할 뿐, 그게 분리배출의 필요 충분 조건은 아니다. 재활용 쓰레기는 재질별로 '이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집집이 내놓는 종이상자만 해도 포장 테이프와 발송장 라벨을 제거하지 않으면 재활용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페트병이나 유리병 따위도 내용물은 깨끗이 비우고, 라벨도 재질이 다르면 떼어내야 한다. 종이류도 비닐 코팅된 것이나 기름을 먹인 것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까다롭게 쓰레기를 분류하는 게 일반 시민들로선 꽤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다. 당장 비닐 코팅을 입힌 종이를 구별하는 일도 어렵고, 플라스틱이나 페트병 따위의 오염 정도도 그 기준을 판단하는 게 모호하긴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재질이 다른 유리병의 뚜껑 처리도 애매하고, 분명 유리로 된 물건이지만 화장품 용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헛갈린다. 스티로폼으로 불리는 발포 합성수지로 만든 컵라면 용기 따위는 오염을 제거하라지만, 그게 어느 수준이면 가능한지도 요령부득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면서 가능한 한 제대로 그 요령을 지켜서 하느라고 하긴 해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별로 자신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떤 여자 탤런트가 쓰레기 분리배출을 이야기하면서 스프링노트는 일일이 스프링을 제거하고 내놓는다고 했을 때,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대체로 해 보지도 않고, 저걸 어떻게 하노, 그냥 지나쳐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프링으로 제본된 탁상달력의 철제 스프링을 제거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우송되어 오는 정기간행물을 포장한 비닐의 주소 라벨지도 떼어보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떨어졌다. 요구르트가 담긴 플라스틱병의 포장 비닐도 간단하게 벗겨졌다. 문제는 의지고 요령인 셈이다.
우리 집에선 평균 2~3일 간격으로 네모난 부직포 가방에 가득 찬 재활용 쓰레기를 수레에 실어 내놓는다. 우리 집에서야 2~3일에 한 번이지만, 600세대가 넘는 우리 아파트의 두 군데 쓰레기 수거장에 쏟아지는 재활용 쓰레기의 양은 또 얼마일까.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은 야적하는 종이류 수거 공간이 한 칸, 비닐, 스티로폼, 캔·고철, 공병류 등의 수거함과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는, '톤백'이라 불리는 대형 마대를 둔 공간이 한 칸이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주민들이 분리수거에 잘 협조해 준다고 하는데도 종이상자 중, 수거 요령대로 포장 테이프를 제거한 물건은 어쩌다가 눈에 띌 정도다.
포장 테이프와 송장 라벨을 제대로 제거하여 접은 종이상자를 상자 더미에 얹으면서 가끔 나는 이게 실제 재활용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접지 않은 종이상자 안은 눈여겨 들여다보면 온갖 이물질로 가득 차 있는 것도 많다. 이렇게 해서 유지되는 재활용은 그래도 안 하느니보다는 나을까.
한국정보화진흥원 공공데이터 포털에서 제공하는 통계 자료 가운데 '재활용 가능자원 이용현황(2015)'을 보면 철강업체, 제지업체, 유리 용기 업체의 재활용 가능 자원 이용률은 각각 33.5, 72.8, 77.3%다. 글쎄, 거두절미하고 우리가 버리는 폐지 가운데 72.8%가 재활용된다는 뜻으로 봐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의지와 요령 문제… 그러나 강요하긴 어렵다
매일 들러서 폐지를 수거하는 업체 대표에게 재활용률을 물었더니 그는 정부에서는 80%쯤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자신은 수거만 한다고 했다. 수거한 쓰레기는 바로 재활용하기에는 불완전하지 않냐고 했더니, 그걸 고려해서 단가를 정한다고 했다. 재활용업체는 수거된 쓰레기를 매입할 때, 그 상태에 따라 값을 매긴다는 얘기다. 이래저래 재활용의 과정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혹시 주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느냐고 하니, 그는 포장 테이프를 제거하지 않더라도 상자 안에 음식물이나 오염된 쓰레기만 넣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괜히 내 일도 아니면서 만약 제발 깨끗하게 정리해 내놔 달라고 하면 어떡하나 했던 쓸데없는 걱정을 덜었다.
재활용 쓰레기 배출은 시민의 '법적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그걸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받거나 특별히 비난받을 일도 없다. 그것은 노인을 배려하고 존중하여야 한다는 도덕률과는 또 다른, 생활인인 시민에게 요청된 공공선을 위한 실천일 뿐이니까.
그러나 앞서 얘기했듯 이 재활용 과정은 복잡하고 까다롭다. 예컨대 종이팩은 일반 폐지와 달리 고급 천연펄프와 코팅된 PE필름, 알루미늄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재활용을 위해서는 별도 선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종이팩은 일반 폐지와 섞여서 수거되므로 재활용할 수 없는 실정이란다. 이쯤 되면 책임은 시민이 아니라, 더 정교하고 세분되어야 하는 쓰레기 수거 시스템에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다. 초로의 은퇴자가 공연히 이 나라의 쓰레기 재활용 문제를 시시콜콜 고민(?)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나는 자신을 다독인다. 저마다 고민해 분류한 쓰레기를 내놓는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스프링과 포장 테이프를 제거하지 않아도 최소한, 종이상자에 온갖 쓰레기를 담아 내놓지만 않는다면 종이류의 재활용률을 얼마간 높일 수 있다는 격려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간격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확인하곤 한다. 음식물 쓰레기도, 일반 쓰레기봉투도 차는 건 시간문제다. 오늘도 산에 다녀와 씻고 나서 빨랫감을 내놓으면서 베란다의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부직포 가방과 현관에 포개놓은 택배 종이상자 따위를 살피며 나는 그걸 언제쯤 내놓을지 시간을 가늠해 보고 있다.
2020. 7. 1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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