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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일, ‘나라’가 ‘국민’을 ‘버린 시간’

by 낮달2018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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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2년’, 혹은 ‘야만의 시간’

▲ 용산참사의 유족들. 이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 때문에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늘로 각각 180일, 60일이 지났다. 용산 참사와 평택 쌍용차 파업 농성 이야기다. 올 1월 20일에 벌어진 참사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는 뜻이다. 참사의 희생자 다섯 분-이상림(72), 양회성(58), 한대성(54), 이성수(51), 윤용현(49)-은 지금도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서 장례를 기다리고 있다.

 

180일 동안, 무려 180번의 추모문화제가 베풀어졌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집전하기 시작한 미사가 100일을 넘기면서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은 ‘남일당 본당’이라고 불리게까지 되었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이 문제 해결을 정부에 촉구한 이래 각종 시국선언마다 용산 문제는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용산 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의 지적처럼 정부는 ‘법의 방패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180일은 ‘나라’가 ‘국민’을 ‘버린 시간’이다. 정부가 자신의 직무를 유기한 시간이다. 한편으로 이 시간은 이명박 정권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웅변으로 고백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서민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돌보라는 소명이 주어진 것”이라 했다고 한다. 이른바 ‘서민 행보’의 일부다. 그러나 그 발언과 행보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용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스스로 풀어가야 한다는 여론에도 그는 여전히 귀를 닫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서 고작 떡볶이집이나 시장 방문 등으로 ‘친서민 이미지’를 만드는 데 그치는 한 그의 ‘서민 행보’는 구두선(口頭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제 국민은 그런 이미지에 섣불리 현혹될 만큼 어리석거나 순진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제 서울역 앞에서 열린 ‘민주회복 민생 살리기 2차 범국민대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만났다. 강기갑, 이정희 의원 사이에서 상복 차림의 두 부인은 대회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는데 그들의 숙인 고개가 나는 못내 가슴 아팠다. 그러나, 연단에 오른 유가족(고 이성수 씨 부인, 사진 오른쪽)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180일이 되는 내일(20일) 관을 메고 청와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몰려온 보도진의 카메라가 연신 유가족들의 모습을 담았지만, 그게 사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랴. 나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나마 집회 참가자들이 마음으로 아픔을 나누는 게 그들에게 힘이 되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범대위는 20일 오후 희생자 주검 5구를 밖으로 옮기는 ‘천구 의식’을 치르고 서울광장으로 나가 분향소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의 봉쇄를 뚫고 서울광장으로 이동하는 게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저돌적 임무 수행을 자랑하는 이 땅의 경찰은 망자와 그 길을 어떤 방식으로 예우하게 될까.

 

쌍용차 문제도 마찬가지다.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는 ‘제2의 용산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는 ‘노사 문제’라며 발을 빼고 있다. 마치 정부는 파국으로 향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권력’에 기대 순리를 거역하는 한 파국은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쌍용차 가족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지금 쌍용차 사태는 악화일로로 있다. 사측은 ‘불관용’ 원칙 밝히면서 물과 가스 공급을 중단했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쌍용차 노조 간부의 부인이 자택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파업 후 사망자는 모두 4명이 된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죽고, 해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더니, 이제는 가족마저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 21세기, 이른바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2년’은 가히 야만의 시간이다. 자본과 권력은, 마치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야 인간은 더 강해질 수 있는가를, 뒷짐을 진 채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이 나라를 문명국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2009. 7.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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