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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by 낮달2018 2020.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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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벌레와 교감하는 시인, 그러나

▲ 병들고 벌레 먹은 우리 고추. 병은 파프리카에도 옮아갔다.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말대로 열 근은 좋이 딸 수 있는 농산데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게 썩 내키진 않는다. 그러나 굳이 농약을 치고 법석을 떠는 것은 애당초 이 농사에 걸맞지 않다. 유기농 흉내를 낼 일은 아니지만, 여느 농사처럼 똑같이 약을 쳐 댈 바에야 차라리 고추를 사서 먹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우리는 병든 녀석을 골라 따내기로 했다.

 

가볍게 이랑을 한 바퀴 돌았는데 금방 비닐봉지 하나가 꽉 찼다. 아예 하얗게 말라 죽은 놈이 있는가 하면 누렇거나 벌겋게 빛깔이 바뀌며 시들고 있는 놈도 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홀쭉해져 가는 고추는 마치 속이 빈 거푸집 같다. 그건 한편으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몸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병든 놈들과 함께 아내는 다시 집에서 먹을 성한 고추를 따냈다. 좀 덜 익은 듯한 파프리카도 따고 알이 밴 옥수수도 하나 땄다. 그새 파프리카 열매 하나에도 병이 옮았다. 비실비실 마르고 있는 가지도 몇 개, 좀 거칠어지고 있는 오이도 하나 따자 금방 헝겊으로 만든 장바구니가 그득하다.

 

땅의 축복은 공평하다. 한 차례 병들고 시든 놈들을 골라내고 나면 싱싱하게 살이 오른 고추를 만지는 기쁨을 고스란히 선사해 준다. 다 같이 자란 고추지만 어떤 녀석은 병충해에 그만 주저앉고, 어떤 녀석은 거기 아랑곳하지 않고 무럭무럭 자란다. 작물의 성장도 사람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박경리 선생은 살아생전에 텃밭에 온 벌레들을 손수 잡아주면서 작물을 길렀다던가. 그이는 ‘모든 생물 벌레나 식물까지도 모성, 생명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이가 가꾼 원주의 텃밭은 ‘15년 동안 천연 비료만을 써서 만든 땅’이었다.

 

밭을 떠나면서 나는 나희덕 시인의 시 ‘배추의 마음’을 잠깐 떠올렸다.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나는 내리 세 해 동안 가르쳤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깨달은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는 이 소박하고 정갈한 시를 통해 나는 나희덕 시인을 처음 알았다.

 

시인은 어디서 배추 농사를 지었던가, 아니면 우리처럼 텃밭에 배추를 길렀던가. 시인의 섬세한 마음은 배추와 이야기를 나눈다. 배추뿐이 아니다. 배추 속에서 배추를 ‘반 넘어’ 먹은 배추벌레도 그와 교감한다. 그 교감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외경’이다.

 

시인은 배추 속에 사는 벌레가 갇힐까 봐 배추를 동여매지 못하고, 배추도 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을 ‘순결한 잎’으로 채운다. 시인은 그런 사람의 마음이나 배추의 마음은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느끼고 여미는 순간, 마침내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드는 ‘자연과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눈 밝고 귀 여린 시인의 감성은 배추와 배추벌레 사이에서 물아일체, 자연과의 합일을 찾아냈지만, 사나흘에 한 번씩 텃밭에 들르는 게 고작인 얼치기 농사꾼에겐 그건 언감생심이다. 생명에 대한 연민은 고사하고 가을에 거둘 수확에만 골몰하는 자신에게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만다.

 

그야말로 ‘왜 사냐건 웃지요’이다.


▲ 피망(왼쪽)과 파프리카(오른쪽)

‘피망’과 ‘파프리카’

 

아내는 ‘파프리카’로 알고 한 포기에 1,500원씩 주고 샀다. 그러나 딸애는 우리 텃밭의 파프리카는 ‘피망’인 것 같다고 한다. 그 둘의 차이를 나는 나눌 재간이 없다. 이 단고추에 대한 농업진흥청의 설명에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래는 그 둘의 차이에 대한 글이다.

 

<농진청, 피망과 파프리카의 식품학적 특징 비교>

 

농촌진흥청(청장 김재수)은 파프리카와 피망의 차이에 대한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기본적인 품질 조사와 기능 성분 및 가공적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Capsicum annuum을 개량한 고추들이 피망이나 파프리카로 불려지며 원산지는 중남미이다. 피망(pimientos)은 프랑스어이고 파프리카(paprika)는 네덜란드어로 유럽에서는 파프리카와 피망은 동일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단고추로 통일할 수 있다.

 

주로 유통되는 피망 품종에는 뉴웨이브(피앙세)가 있고, 파프리카 품종으로는 스페셜(빨간색 계통), 피에스타(노란색 계통), 프레지던트(주황색 계통) 등이 있다.

 

신선편이 농산물 가공업체들은 홍피망 원료가 부족할 때 적색의 파프리카를 대신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데, 이에 대한 자료가 없어 파프리카와 피망의 차이를 폭넓게 이해하고자 분석을 실시하였다.

 

파프리카는 과피의 두께가 피망보다 두껍고 둥글지만, 피망은 길쭉한 것이 특징이며, 파프리카가 아삭아삭함과 당도가 1.5~2배 정도 높고 좀더 선명한 색을 가진다. 180~200℃에서 조리했을 때 피망이 파프리카보다 수분이 많이 나오고 당도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조리 후 씹히는 질감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농촌진흥청 채소과 이혜은 연구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시중에서 파프리카와 피망으로 유통되는 단고추의 품질 특성을 고려하여 적합한 식자재로 이용한다면 원료 수급 상황에 따라 서로 대체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를 통해 항산화 활성이 높은 파프리카와 피망의 소비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였다.

 

/순천시농업기술센터 누리집

 

 

2010. 7.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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