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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22

세상의 모든 ‘자식들’, 모든 ‘어버이’ 찾아뵐 어버이 계시지 않은 어버이날에 낫는가 싶던 기침이 어제부터 다시 슬슬 잦아지기 시작했다. 간밤에 깰 때마다 소리 죽이고 기침하느라 힘이 들었다. 5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다시 병원엘 가야 하나 어쩌나 하고 궁싯거려야 한다는 사실이 좀 짜증스럽다. 지난 어린이날은 방송고의 중간고사 시험날이었다. 더는 어린이가 없는 집에서는 ‘어린이날’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날일 뿐이다. 우리 집뿐 아니라, 주변에 어린이가 있는 친지도 거의 없다. 장성한 아이가 혼인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는 이상 당분간 어린이날을 챙길 일은 없을 터이다. 어버이날도 다르진 않다. 어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랬다. 친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처가에도 장모님 한 분만 살아계시니 ‘어버이날’을 챙기는 게 훨씬 ‘수월.. 2020. 5. 9.
‘짐 되기 싫다’ 목숨 끊는 부모의 길 자식에게 짐이 되길 거부하며 목숨을 거두는 어버이들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되어 세상을 뜨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자식이나 부모는 인간의 삶에서 대부분 거치게 되는 사회적 지위니 그게 대수로울 일은 없다. 그러나 시절이 하 수상하니 그런 지위로 사는 일도 예사롭지 않아졌다. “자식들 짐 되기 싫다”고 하며 말기 암을 앓고 있는 부부가 음독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암에 걸려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60을 갓 넘긴 아버지와 50대 중반의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가 앓고 있는 병도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여기는 이 오래된 부모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어쩐지 스산해지는 기분을 가눌 수 없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헌신해 온 어버이들이 졸지에 자식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경우는.. 2020. 5. 7.
‘부분적 언론자유국’ 대한민국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프리덤하우스의 ‘2014년 언론자유 보고서’ 관련 소식을 들으면서 진부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의 일갈을 떠올리는 것은 그 본연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언론 현실 때문일 것이다. ‘부분적 언론자유국’ 대한민국 드디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세계 순위가 68위로 떨어졌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www.freedomhouse.org)가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언론자유지수는 32점(점수가 낮을수록 자유도는 높다.)으로 세계 순위가 68위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2011년에 잃은 ‘언론자유국’ 지위를 되찾기는커녕 이번에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의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부분적 언론자유.. 2020. 5. 6.
박경리와 홍성원, 두 작가의 부음에 부쳐 박경리 1926~2008. 5. 1. 두 명의 작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일엔 홍성원(71)이, 오늘(5일) 오후에는 박경리(82) 선생이 각각 작가로서, 자연인으로서 당신들의 삶을 마감했다. 물론 그것은 가족이나 친지의 부음처럼 애잔한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박경리 선생이 위중하다는 것을 이미 며칠 전에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던 까닭에 나는 ‘그랬구나……’ 하는 정도로 선생의 부음을 받아들였다. 향년 여든둘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잠깐 아쉬움을 느꼈을 뿐이다. 82세라면 요즘 같으면 얼마든지 건강해도 될 연세이니 말이다. 선생의 부음은 신문과 방송에서 실시간으로 보도하면서 저마다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다투어 기리고 있는 듯하다. 나는 잠깐 그이가 살아낸 80여 년의 삶과 .. 2020. 5. 5.
<짝패>, 작가 김운경의 인물들 김운경 드라마 한동안 TV 드라마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언제부턴가 드라마와 친해졌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드라마의 여제(女帝)’라고 놀릴 만큼 드라마를 ‘끌어안고’ 사는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도 빼먹지 않고 끊임없이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다. (MBC)과 (SBS)을 보면서 아내는 명쾌하게 두 어절로 예의 드라마를 정리해 버렸다. “작가가 미쳤더구먼.” 하기 좋은 말로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를 빌미로 ‘막장 드라마’에 대한 비난을 비켜 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시청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 나라 TV 방송판의 속사정을 고려한다 해도 그건 아니다. ‘피의 비밀’이나 ‘삼각관계’를 버무린 ‘재벌 이야기’ 따위의 공식을 벗지 못하는 책임은 시청자가 아니라 작가가 지는.. 2020. 5. 4.
메르켈과 아베, 혹은 ‘기억의 간극’ 아베의 과거사 인식과 메르켈의 역사 인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이 다시 논란이다. 그의 연설은 제국주의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과 주변국의 식민지배 등에 대한 그의 과거사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무대였는데도 그는 어정쩡하게 이를 피해갔다는 것이다. 아베는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한 과거 도발적 발언은 자제하고 ‘침략전쟁의 사죄와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인식’은 ‘계승한다’라고 했지만, 맥락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 또 ‘식민지배와 침략’이나 ‘사죄’ 등 명확한 용어도 피해 한계를 드러냈다. [이상 연합뉴스 참조] 이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데 그중 눈길이 가는 것은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 2020. 5. 4.
[사진] 천등산(天燈山)의 봄 봉정사 깃들인 천등산의 봄 지난 4월의 마지막 날에 천등산에 올랐다. 거의 이태만이다. 5월로 가는 계절은 소담스러운 철쭉꽃의 행렬과 신록의 물결 속에서 의연하게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산은 늘 거기 있는 그대로다. 거기 드는 사람의 마음이 희로애락의 곡절 속에 헤맬 뿐.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봄은 그득하다. 2008. 5. 3. 낮달 2020. 5. 3.
청소노동자, ‘투명인간’에서 ‘여성’으로 청소노동자의 ‘인간 선언’에 부쳐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스스로 깜짝 놀랐던 것이 화장실에서였다. 사업장 화장실에서 서서 볼일을 볼 때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가 들어와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태연하게 볼일을 마치고 나갔었다. 노동운동을 하고 노동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나서야 그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남자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 흠칫하게 되더라. 그전에는 청소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식하지도 못했던 거다. 소변기, 대걸레, 비품 상자 같은 사물이나 다름없었다.” - 장귀연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니다’(2011.8.30, ‘세상 읽기’) 중에서 한 남성 노동자의 고백이다. 장귀연은 ‘존재해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노동자’로 청소노동자를 이야기한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은 청소를 위해 구부정하.. 2020. 5. 3.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 오늘의 ‘대학생’을 생각한다 바뀐 시대, 바뀐 문화, 혹은 대학생의 역할 # 1. 광주캠퍼스는 74개 학과 중 57개 학과에서, 여수캠퍼스는 30개 학과 중 20개 학과에서 각각 선배들이 신입생과 후배들에게 기합을 줬다. 일부 학과는 선배들이 군대 유격장의 조교처럼 군복에 빨간 모자를 착용했다. 기합은 선착순 달리기와 어깨동무하고 앉았다 일어나기,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돌기, 심지어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은 30분~2시간 동안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대] # 1-1. 최근 이 학교에선 사관학교 생도 못지않은 지나친 신입생 예절 교육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한 신입생은 “복도에서 선배를 그냥 지나쳐 먼저 갈 수 없다”며 “늘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선배님’ 하고 물은 뒤 대.. 2020. 5. 2.
‘죽음의 굿판’에 질식당한 죽음…그래도 행복했다 [추모] 1991년 분신으로 항거한 안동대 김영균 열사 20주기 5월이 오고 있다. 흔히들 ‘계절의 여왕’으로 기려지곤 하는 5월, 그러나 이 땅에서 5월의 의미는 아프고 무겁기만 하다. 사람들은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그 피의 기억들로 5월을 떠올린다. 세월이 흘러도 1980년 광주의 슬픔은 거기서 스러져간 희생의 크기와 무관하게 무겁고도 무거운 까닭이다. 사람들은 광주의 5월만 기억하지만, 5월은 해마다 돌아온다. 광주의 피비린내가 상기도 가시지 않은 1991년의 5월도 마찬가지다. 그해 4월 26일 강경대가 전투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이래 5월 25일 김귀정이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압사하기까지 무려 열세 명의 학생과 노동자 등이 분신과 투신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1970년 청년 노동.. 2020. 5. 1.
징계의 칼춤, KBS 정세진의 ‘선택’ MB정부의 ‘편파 방송에 맞선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투쟁’, 언론인의 ‘존재 증명’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장기하의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태평성대다. 총선을 전후해서 반짝, 주변의 삶과 세상을 둘러보는 시늉만 하고 다시 사람들은 자기의 삶에다 고개를 파묻어 버렸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봄, 텔레비전에서는 땜빵 프로그램이 돌고, 부실했던 뉴스는 더 부실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무심은 그대로다. 공정 보도를 위한 언론인의 싸움 이야기다. 국민일보 파업은 100일을 훌쩍 넘겼고, MBC(문화방송) 파업도 100일이 눈앞이다. KBS, YTN, 연합뉴스까지 공정 보도 회복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세상은 놀.. 2020. 4. 30.
‘판문점선언’과 구미의 이발소 풍경 ‘판문점선언’과 티케이 지역의 슬픈 ‘확증 편향’ 남북정상회담 뒤, 구미의 이발소 풍경 대체로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나 단체와 교유하다 보니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날것 그대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드물 수밖에 없다. 주변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야 적지 않지만, 이들은 굳이 견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걸 꺼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감 없이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견해를 들으려면 상대가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람들이 여론을 듣기 위해 시장을 찾거나 택시를 타고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까닭이 달리 있겠는가 말이다.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판문점선언이 발표될 무렵에 나는 시내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느라 듣지 못했던 선언.. 2020.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