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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과 구미의 이발소 풍경

by 낮달2018 2020.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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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선언’과 티케이 지역의 슬픈  ‘확증 편향’

▲ 지난 27일 판문점선언 후 구미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거리 곳곳에 환영 현수막을 내걸었다.

남북정상회담 뒤, 구미의 이발소 풍경

 

대체로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이나 단체와 교유하다 보니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날것 그대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드물 수밖에 없다. 주변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야 적지 않지만, 이들은 굳이 견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걸 꺼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감 없이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견해를 들으려면 상대가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람들이 여론을 듣기 위해 시장을 찾거나 택시를 타고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까닭이 달리 있겠는가 말이다.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판문점선언이 발표될 무렵에 나는 시내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느라 듣지 못했던 선언의 주요 내용을 단체의 활동가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시민단체에서는 발 빠르게 시내에 내걸 판문점선언 환영 현수막의 문안을 다듬고 있었다.

 

모두 이 놀라운 선언이 주는 감격에 겨워했고 그것은 시내의 한 식당에서 베풀어진 아사히글라스 노동조합의 일일주점까지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하기 짝이 없는 놀라운 반전 앞에서 우리는 시대 상황을 새삼 환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과 시운에도 경의를 표했다.

 

다음날 나는 친구들과 멀리 있는 형님, 서울에 있는 아들 녀석과 잠깐 통화를 하면서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감격을 나누었다. 일촉즉발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던 한때의 팽팽했던 긴장을 일시에 무너뜨린 반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그 뜻을 새기게 해 주었다.

 

오늘 오전에 나는 이발소에 들렀다. 퇴직 학교 근처에 있는 이 이발소는 조그마한 키의 차분한 50대 이발사가 썩 마음에 들게 머리를 깎아주어서 거리를 멀다 않고 찾는 가게다. 구미에 옮아와 집 근처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다가 이발소로 ‘귀환’한 게 2013년이었다. [관련 글 : ‘이발소’로의 귀환]

 

집에서 가깝고, 60대 후반의 이발사가 과묵한 데다 이발 솜씨도 괜찮아서 나는 거기 단골이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1년여 만에 그 집을 떠나 두 번째 이발소로 옮겼다. 그놈의 말썽 많은 종편 탓이었다.[관련 글 : 이발소, 종편, 박근혜

 

어느 날부터 이발소에 주인의 친구들이 모이고 텔레비전은 약속한 듯 종편에 고정되기 시작했다. 머리를 깎는 시간이야 30여 분에 불과하지만, 앵커인지 선동꾼인지 모를 진행자와 수준 미달의 자칭 정치 평론가들이 진행하는 억지와 왜곡, 고성과 비약으로 일관하는 뉴스를 듣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임진각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시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새로 옮긴 이발소에선 종편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공중파의 드라마에 채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 이발사도 영남 성골 지방의 여느 유권자와 다르지 않은 보수 정당 지지자인 듯했지만, 그는 굳이 그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여기서 내가 네 해째 머리를 깎고 있는 이유다. 집과는 꽤 멀어서 차로 다녀야 하지만 나는 두 달에 세 번쯤 이 이발소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발사는 집에서 화초 기르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서 나는 그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곤 한다.

 

“문재인 또 속았다. 엔엘엘(NLL)도 없어질 기라”

 

오늘 9시쯤 이발소에 들어갔을 때 70대 노인 한 분이 머리를 깎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탁자 위의 여성지를 뒤적이면서 틀어놓은 공중파 방송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판문점선언과 관련해 그 의미를 되짚고 이후 상황을 전망해 보는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이발사와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받던 노인도 텔레비전 토론자의 이야길 들은 모양이었다.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 위주의 토론 내용이 거슬렸던 것일까. 노인이 먼저 말하고 이발사가 맞장구를 치는 대화가 시작되었다.

 

“비핵화 한다 어쩌고 하지만 문재인이 또 속는 거 아이가?”
“그래도 온 세계에 약속한 긴데 함부로 또 뒤집기야 하겠습니까?”
“아이고, 그동안 한두 분(번) 속았나? 김대중이 노무현이 때도 온 세계에다 약속했지만 다 헛일이었잖은가? 그라고 저거가 이제껏 만들어 놓은 걸 다 없애지는 못할 거 아이라.”
“하긴 그렇습니다만. 문재인이는 왜 그렇게 북한 못 가서 안달하는지 모르지요.”
“문재인이는 저거 이모 만날라 카는 거 아이가.”

 

문재인 이모? 나는 잠깐 헷갈렸다. 글쎄, 별로 기억에 없는 이야긴데, 영감님이 온갖 걸 다 알고 계시는구먼. 건성으로 잡지 기사를 훑으면서 나는 실소했다.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해 보니 2004년에 문재인 당시 청와대 수석이 제1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북에 사는 이모를 만났단다.

 

검색 결과 중에는 올 2월 방남한 김여정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문 대통령의 이모 소식은 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기사도 달려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건 <조선닷컴>의 기사다. 그런 기사를 시시콜콜하게 보도하는 매체가 있으니 시골 노인도 그걸 중요한 정보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발이 끝나고, 노인은 마지막 한마디로 자신이 꺼낸 이야기의 아퀴를 지었다.

 

“아마, 엔엘엘(NLL)은 결국 없어질 거 같애. 노무현이가 그러더니만 문재인이가 결국 없애는 기야.”

 

노인의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일까. 그는 아마 2012년 대선 무렵에 새누리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엔엘엘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그는 뒷날, 당시 공세를 주도했던 새누리당 의원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엔엘엘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이를 다시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가 확인한 것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재인과 노무현, 김대중에 대한 정치적 혐오를 바탕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영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보수 냉전 세력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떠받치는 슬픈 ‘확증편향’인 것이다.

 

영남 성골의 슬픈 ‘확증편향’

 

평화와 통일에 대한 소망과 인식이 영남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에 비겨 특별히 덜하거나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의 보수적이고 냉전적인 인식은 통계적 수치를 통해서 일정하게 드러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이들은 특별히 더 보수적이거나 냉전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그들의 인식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2018년 2월에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가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대구 경북의 여론은 다른 지역의 그것을 압도한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응답자의 69%가 찬성한 전국 응답률에 비겨 대구·경북의 그것은 확연히 보수적인 반응이었다. 찬성이 52.8%로 과반을 넘기긴 했으나 40%에 이르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머리를 깎으면서 나는 판문점선언에 대한 이 영남 성골 지역의 정서는 이 노인의 그것과 얼마만큼 같고 또 얼마만큼 다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www.nesdc.go.kr) 참조]

 

내일쯤이면 나올 판문점선언에 대한 이 지역 사람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얼마나 더 전향적으로 바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날의 이발소 풍경은 이들이 “말의 성찬에 그친 위장 평화쇼”라거나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것”(홍준표)이라는 등의 어깃장으로 일관하고 있는 제1야당의 주장을 답습하고 있는 듯 보일 뿐이다.

 

박근혜와 이명박의 몰락은 지역 정서를 바탕으로 한 묻지 마 지지로 일관한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의 실정으로 민주주의는 퇴행했고 정치발전은 멈추었다. 그런데도 영남 사람들이 버리지 못하는 보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지지가 해체되어야 마땅할 무책임하고 무능한 수구 정당의 명줄을 이어주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구 냉전 세력에 대한 영남 일각의 지지는 존중받아야 할 정치적 선택이라기보다 자신과 지역의 미래에 대한 자해와 다르지 않다. 정치가 사회적 삶의 진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 선택은 무엇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2018. 4. 2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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