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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2134

동네 한 바퀴 ② 살구와 명자 지고 사과꽃 피다 4월도 중순, 사과꽃 피다 동네에 핀 꽃을 둘러보면서 쓴 첫 번째 글에서 ‘우리 동네 꽃 지도’ 어쩌고 하면서 건방을 떨었다. 그게 ‘건방’이란 걸 알게 된 것 이즘 들어서다. 늘 다니던 길 대신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꽃나무를 여럿 만났기 때문이다. 고작 그 정도를 둘러보고 ‘지도’를 들먹였으니 건방도 그런 건방이 없다. [관련 글 :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늘 주변을 살피며 다닌다고는 하지만 우리 눈이란 그리 믿을 바가 못 된다. 겨우내 헐벗은 나무를 보면서 그게 피워낼 꽃을 알아보는 데에는 내공이 필요하다. 새 숲길로 다니던 나는 겨우내 이쪽 길은 아무래도 생강나무가 전의 길만 못한 것 같다고 여겼다. 우리가 참꽃이라고 불렀던 진달래도 어쩌다 눈에 띌 뿐이었다. 처음에.. 2020. 4. 19.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를 보내며 1927년 3월 6일 ~ 2014년 4월 17일 어제 오후에 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8~2014)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림프암으로 투병해 왔고, 2012년부터는 치매 증상으로 집필을 중단한 바 있었다. 마르케스는 멕시코시티의 자택에서 아내와 두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7년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작가로선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노벨상을 받았고, 우리 나이로 치면 여든여덟, 미수(米壽)를 누렸다. 우리 식으로 보면 호상(好喪) 중의 호상이니 의례적 수사는 생략하자. 나는 그의 대표작 을 만났던 스무 살 무렵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번역본으로는 민음사에서 펴낸 (조구호 옮김, 아래 )이 널리 알려졌지만, 내가 처음 만난 은 김병호가 옮기고 육문사.. 2020. 4. 18.
‘몇일’은 없다 ‘며칠’은 있어도 ‘몇일’은 없다 어형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에 ‘부정회귀(不正回歸)’가 있다.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어형을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오히려 바른 어형까지 잘못 고쳐버리는 것’을 이른다. 이 현상은 주로 우월한 방언(주로 서울 방언)에 대하여 그렇지 못한 지역과 사회 방언의 사용자가 말을 고상하게 하려고 방언이나 비속어 냄새가 나는 말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예가 ‘길쌈’이다. ‘길쌈’의 옛말은 ‘질삼’이다. 그러나 ‘질’은 주로 방언에서 쓰이는 소리(길 : 질, 기름 : 지름, 길다 : 질다)여서 사람들은 이를 ‘길’로 되돌린다. 결국, 멀쩡한 ‘질쌈’은 사투리로 떨어지고, 잘못 돌이켜진 ‘길쌈’이 표준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 2020. 4. 18.
‘과반수(過半數)’를 넘는다? ‘과반수(過半數) 넘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날 서면을 통해 인권위에 오는 24일 열리는 심포지엄 불참 통보를 했다. 심포지엄 발표자는 10명으로 발표를 거부한 인사가 과반수를 넘는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언론에 실린 뉴스다. 문장 끝부분의 ‘과반수를 넘는다’는 표현은 잘못이다. 과반수(過半數)의 ‘과’에 이미 ‘넘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표현은 불필요한 ‘중복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의결의 정족수를 말할 때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라고 쓰지, ‘과반수 이상’과 같이 쓰지 않는 이유도 같다. 우리말에는 외국과의 접촉을 통해 한자어나 서양에서 온 외래어, 그리고 일본어가 꽤 많이 들어와 있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게 ‘한자어와 고유어’, ‘외래어와 한자어’, 또는 ‘외래어와 고유.. 2020. 4. 17.
‘고대 마을 시지(時至)’, 수천 년 잠에서 깨어나다 [달구벌 나들이] ④ 대구박물관(2) ‘마침내 찾은 유적 고대마을 시지(時至)’ 전시회 개관한 지 20년이 훨씬 지난 대구박물관을 처음 찾으면서 나는 조금 설레고 있었다. 내가 그린 ‘퇴임 후의 그림’에 없었던 박물관에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박물관에 가면서 유난을 떤다고 나무라지 마시라. 박물관이 일상이 되는 문화적 경험이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올해 나는 매월 두 차례씩 실시되는 동네 도서관 주관의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5인승 버스를 타고 두세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주변 지역의 절집, 문학관, 박물관, 도요(陶窯) 따위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빠듯한 시간에 숙제하듯 치르는 행사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오가는 데 시간 대부분을 쓰고 불과 .. 2020. 4. 16.
이발소와 종편 채널, 그리고 ‘박근혜’ 동네 이발소를 피해 먼 이발소를 이용하는 까닭 가까운 미용실을 이용하다가 아니다 싶어서 인근의 이발소를 다니게 되었을 때다. 60대 후반의 이발사는 과묵한 데다 이발 솜씨도 좋아서 한 1년쯤 거기서 머리를 깎았다. 어느 날부터 이발소에 주인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은 늘 종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관련 기사 : ‘이발소’로의 귀환] 종편과 이발소 머리를 깎는 시간이야 30여 분에 불과하지만, 앵커인지 선동꾼인지 모를 자칭 언론인들이 진행하는 억지와 왜곡, 고성과 비약으로 일관하는 뉴스를 듣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 어느 날 나는 그 가게에 발을 끊었다. 50대 초반의 얌전한 이발사가 드라마나 틀어놓는 학교 앞 이발소로 옮긴 것이다. 가끔 종편이 박근혜 정권을 떠받치는.. 2020. 4. 16.
진달래와 나무꾼, 그리고 세월…… 참꽃과 진달래, 돌아보는 세월 온산에 진달래가 한창이다. 산등성이마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진달래는 그예 도심까지 들어왔다. 강변에 조성된 소공원마다 선홍빛 진달래가 넉넉하다. 이제 막 꽃잎이 지고 있는 은빛 왕벚나무 물결 끄트머리에 불타는 선홍빛은 외로워 보인다. 내게 ‘진달래’는 여전히 ‘참꽃’이다. 봄이면 온산을 헤매며 탄피와 쇠붙이 따위를 주우러 다니던 시절, 만만찮은 봄 햇볕에 그을려 가며 허기를 달래려 보이는 족족 입에 따 넣던 꽃. 산에서 내려올 즈음엔 조무래기들의 혓바닥은 꽃잎보다 더 진한 보랏빛이었다. 참꽃, 그 아련한 동화 참꽃은 내게 아련한 동화(童話)다. 시골서 자란 이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것은 머물러 버린 유년의 길목을 아련하게 수놓는 추억의 꽃이다. 무덤들 주위에 다소곳이 피어나던.. 2020. 4. 15.
[사진]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 불법사드 원천무효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 [사진] 사드 말고 꽃! 꽃길 따라 평화 오소서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3·18 소성리 범국민 대회’(3월 18일)에 이어 어제(4월 8일)는 ‘불법사드 원천무효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 행동’이 소성리 일대에서 베풀어졌다. 1차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는 후배와 함께 소성리를 찾았다. 국방부가 사드 일부분의 한반도 전개를 발표한 이후 지역 주민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사드 발사대 2기가 들어와 칠곡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보관 중이고 사격통제 레이더도 들어왔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사드 배치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어 버린 거 아니냐고 말했고 후배는 미국이 .. 2020. 4. 15.
백담사, 만해 한용운과 독재자 전두환 백담사에 남은 독재자의 자취 - 자랑일까, 치욕일까 지난 주말에 설악산을 다녀왔다. 속초 인근의 한 콘도미니엄에서 열린 자형의 칠순 가족 모임에 참석한 친지들과 함께였다. 설악산은 고교 수학여행(1973)으로, 수학여행 인솔(1985·1997)에 이은 네 번째 방문이다. 그전에는 외설악의 관광코스를 돌았지만, 이번에는 내설악의 백담사를 들렀다. 백담사(百潭寺)의 기원은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아미타 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창건한 한계사(寒溪寺)다. 그 뒤 이 절집은 1752년(영조 51)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백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설에 따르면 백담사라는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못이 100개가 있는 지점.. 2020. 4. 15.
벗의 도화원(桃花源), 그 연분홍 안개 의성 초전리 오막재를 찾아서 의성 탑리의 외진 시골 마을, 완만한 산자락에 조립주택과 황토방 하나씩 짓고 사는 친구가 제 복숭아밭에 복사꽃이 절정이라고 전해 왔다. 3월을 맞아 잔뜩 심란해져 있을 때, 안부를 물어온 친구에게 나는 복사꽃이 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금요일 퇴근해 집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길을 떠났는데도 근처 시장 거리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초전리(草田里) 그의 집을 찾았을 때는 어둠 살이 내리고 있었다. 황토방 너머 그의 복숭아밭, 복사꽃은 부윰한 빛을 내면서 어둠 속에 아련하게 떠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니까……. 복사꽃을 만나는 일에 서두를 일은 없었다. 그의 황토방에서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몇 병의 소주가 동나자, 그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누룩으로 발효한 술을 증류시켜.. 2020. 4. 14.
‘이발소’로의 귀환 다시 이발소로 찾다 어제 이발을 했다. 여느 때처럼 동네 미용실에서가 아니다. 동네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도서관 앞 골목에 있는 이발소에서다. 거기 그런 이발소가 있는 줄 몰랐었다. 꽤 반듯한 슬래브 건물에 간판도 얌전하게 달렸다. ‘○○이용소’. 마치 잊고 있었던 이웃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줄지은 다섯 개의 빈 의자 저편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주인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들릴 듯 말 듯 인사를 했다. 과묵해 뵈는 인상의 60대 이발사였다. 의자에 앉자 그는 익숙하게 내 목에 수건을 감고 보자기를 씌웠다. “오래……, 하셨습니까?” “예.” “손님이 많은가요?” “뭐, 그럭저럭.” ‘이발소’로의 귀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역시 이 양반은 말수가 적다. 나이가 나이니 별로 친절하.. 2020. 4. 13.
‘작열’과 ‘작렬’ 사이-우리말 발음 이야기 우리말 발음 - ‘작열’과 ‘작렬’ 창피한 이야기다. 오래전에 온라인 서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살육(殺戮)’을 ‘살륙’으로 쓴 적이 있다. 명색이 국어를 가르치는 처진데 그런 잘못을 저질러 놓고 틀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이웃이 ‘초면에 미안’하다면서 ‘살육’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덕분에 잘못을 바로잡았다. ‘살육’과 ‘도륙’ ‘사람을 마구 죽임’의 뜻으로 쓰는 ‘살육’에 쓰인 한자는 각각 ‘죽일 살’, ‘죽일 육’이다. 여기서 ‘戮(육)’은 원음이 ‘륙’이다. 살육에선 ‘육’으로 읽지만 ‘사람이나 짐승을 함부로 참혹하게 마구 죽임’의 뜻을 가진 ‘도륙(屠戮)’의 경우에는 ‘륙’으로 읽으니 잠깐 헷갈렸던 모양이다. 인터넷 지면에 흔히 쓰이는 낱말 중에 ‘작열(灼熱)’이 있다. ‘사를 .. 2020.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