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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징계의 칼춤, KBS 정세진의 ‘선택’

by 낮달2018 2020.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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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편파 방송에 맞선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투쟁’, 언론인의 ‘존재 증명’

▲ 징계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세진은 파업 채널의 앵커를 자원했다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장기하의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태평성대다. 총선을 전후해서 반짝, 주변의 삶과 세상을 둘러보는 시늉만 하고 다시 사람들은 자기의 삶에다 고개를 파묻어 버렸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봄, 텔레비전에서는 땜빵 프로그램이 돌고, 부실했던 뉴스는 더 부실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무심은 그대로다.

 

공정 보도를 위한 언론인의 싸움 이야기다. 국민일보 파업은 100일을 훌쩍 넘겼고, MBC(문화방송) 파업도 100일이 눈앞이다. KBS, YTN, 연합뉴스까지 공정 보도 회복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세상은 놀랄 만큼 평온하다.

 

언론이 세상의 움직임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면 그 거울이 제 노릇을 못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별다른 걱정이 없’고, ‘이렇다 할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정작 파업을 실감하는 이들은 알만한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으로 주말이 한가해진 TV 마니아들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가릴 것 없이 총선 내내 편파방송을 쏟아냈지만, 언론계를 빼면 이 문제는 화제조차 오르지 않는다. 함량 미달의 일상을 다룬 연성 기사가 판을 치는데도 사람들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은 파업하고 있는 언론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뉴스타파’(언론노조), ‘제대로 뉴스데스크’(MBC), ‘리셋 KBS 뉴스9’(KBS) 등의 대안 미디어 덕분일까.

▲ 파업 채널 '리셋 KBS' 팀들은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했다. ⓒ KBS 노조 누리집

시청자들과 독자들이 언론인들의 파업 투쟁을 무심히 ‘강 건너 불’로 지켜보고 있는 동안, 적지 않은 숫자의 기자와 PD들이 해고되거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요즘 언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대한 각 방송사의 대응은 거의 막장 수준이다. 그래도 정치권은 오불관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방송문화진흥회도, 각사 이사회도 ‘각 회사의 노사문제’라는 변명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다.

 

▲ 정세진 아나운서

MBC에 이어 KBS에서도 ‘징계의 칼춤’이 시작되었다. 사장에게 욕설했다는 이유로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최경영 기자를 해고하더니 ‘리셋 KBS 뉴스 9’에 출연한 앵커, 기자 등을 차례로 징계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 뉴스 진행을 자원한 정세진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신선하다 못해 경이롭다.

 

16년 차 선임 아나운서인 정세진은 한때 KBS 9시 뉴스 메인 앵커였다. 날마다 그의 얼굴과 차분한 뉴스 진행을 보면서 그의 칼라가 매우 밋밋하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다. MBC 앵커였던 백지연이 비교적 선이 굵은 스타일이었다면 정세진은 공동진행자인 남성 앵커의 보조자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주곤 했기 때문이다.

 

해외연수에서 돌아온 정세진은 9시 뉴스에는 복귀하지 못했다. 아마 그 무렵 KBS 새 노조에서 파업을 벌였고, 정세진이 여기에 동참했던 것 같다. [관련기사] <미디어오늘>에서 그의 인터뷰 기사(정세진 아나운서 “망가진 KBS 부끄럽고 화나요”)를 읽으면서 나는 언론인들에게 파업은 실존적 ‘존재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이 유례없는 언론인의 투쟁에 대해 현실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미래권력’으로 일컬어지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위원장도 눈을 감고 있다. 당장은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로 자욱하지만, 언론인들의 공정 보도를 위한 이 싸움이 승리로 귀결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짧지만, 우리 방송의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알려주는 진실이고 교훈이기 때문이다.

 

 

2012. 4. 28. 낮달


* 이른바 ‘유배’되고 현업에서 ‘배제’되고 했던 언론노조 KBS본부의 조합원들은 2017년 이후 현업에 복귀했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시즌 1 진행을 맡고 있다가 시즌 2에서는 충전을 위해 자진 하차했다고 한다. 그는 2012년 파업으로부터 8년이 흘렀는데 방송 화면으로 만난 그의 앳된 인상에도 연륜이 묻어났다.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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